[본질을 잃은 정쟁의 늪]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신임 위원장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여야의 첨예한 대립 속에 이례적으로 장기간 진행된 청문회는 결국 이진숙 위원장의 선임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정치권과 언론계의 민낯은 참으로 우려스럽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한다고 우려를 표시한다. 그러나 이는 현 상황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해석이다.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이사 선임 의결은 방통위 위원장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방문진 임원 9명 중 6명의 임기 만료 (2024. 8. 12)를 앞둔 상황에서 방통위 로서는 긴급히 이뤄진 조치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무조건적으로 비난하기보다는, 그 필요성과 절차의 적법성을 냉철히 따져봐야 한다.
더불어 현행 방통위법상 위원의 임명 규정의 개정 배경과 그 내용을 주목해야 한다. 2020년 6월 개정된 이 법은 당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현재의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합의로 이루어졌다. 이는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비판이 특정 정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정치권 전반이 언론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활용하려는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방증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의 이면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언론의 본질적 기능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정쟁의 격화, 인신공격, 그리고 언론의 역할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가중되고 있음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적 가치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는 공영방송사의 책임도 크다. 방통위원장 청문회 과정에서 어느 한 언론인의 증언 (민노총 언론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은 '죄인' 취급 받는다는 한 언론인 증인의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언론의 독립성과 공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제4부'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특정 정파나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라 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언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어떻게 하면 언론이 본연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이는 단순히 방통위 구성이나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의 문제를 넘어서는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다.
정치권은 언론을 장악의 대상이 아닌, 건전한 비판과 견제의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 언론계 역시 스스로의 윤리의식과 전문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국민 모두는 비판적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고, 언론의 독립성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공영방송을 둘러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갈등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언론의 본질에서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다. 이제 정쟁의 늪에서 벗어나, 진정한 언론 개혁의 길을 모색할 때다. 그 길에는 정부와 정치권, 언론계, 그리고 우리모두의 지혜와 용기가 함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