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의 나에게 6
"그야 그렇죠. 하지만 알다시피 살다 보면 한쪽 문은 닫혔는데 다른 쪽 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인간관계나 직장, 집, 사는 동네 등이 예전만 못하죠. 어떤 일을 다 마무리했는데 다음 일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 겁니다. 문득 굉장히 불확실한 상황에 부닥친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그럴 땐 도대체 어디에 기대야 하죠? 음… 그럴 때 내적인 믿음이 있다면 유용하지 않을까요?”
-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中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치열하게 싸우고 나서, 제가 얻은 결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었을 때, 그 후련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고작 그 결론 가지고..'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에게 저 한 문장은 제 몇 년간의 고뇌와 경험으로 쌓은 저의 '진리'입니다. 물론 이 당연하고도 간단한 상식을 왜 몰랐을까 하는 통탄스러움도 들었습니다. 한편으론 많은 이들이 저 간단한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즉 자신만의 '진리'가 되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진리를 얻게 되자 지금껏 제가 문제라 여겨온 수많은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바보'가 사실은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바보가 아니라 그걸 바보라 부르기 때문에 바보라면? 나를 거쳐가는 감정과 사건 그 자체는 잘못된 것이 하나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고 정의 내릴 때 정말로 잘못되기 시작하는 건 아닐까요?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감정과 문제가 나를 위해 찾아왔다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오히려 감정과 사건을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고 충만하게 경험할 때 내가 나다워지고 흐르는 강물처럼 살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이것이 정말로 우리가 가져야 할 내적인 믿음이 아닐까요?
20살의 저는 불확실한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다 마무리했는데 다음 일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 헌데 거대한 파도가 계속해서 치는. 이제는 압니다. 그 파도가 모두 다 내 물장구였다는 사실을. 내가 물장구를 멈추기만 한다면, 파도는 잠잠해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나의 감정과 생각, 행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것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됐을 때 파도를 서핑하는 방법은 이와 같습니다.
네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을 문제라 여기지 않고, 그저 충만하게 경험하라.
제가 22살에야 알게 된 구절을 20살의 나에게 2년이라도 더 일찍 알려줄 수 있다면, 저는 꼭 이 구절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삶에 과연 의미가 있느냐 하는 의문과 씨름하는 것 그 자체는 병적인 현상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의 경우, 삶에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 의미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 무엇보다도 실존적 좌절을 겪는다는 것은 그가 지적으로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삶의 의미를 찾아서>, 빅터 프랭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