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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벳최 Apr 24. 2024

펫푸드 리콜의 역사 - 1

아래 내용은 제 블로그 및 트위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브런치: vetchae.com

트위터: https://twitter.com/vet_chae/photo



집사님들, 'Pet Fooled' 라는 다큐를 아시나요?



2016년에 개봉한 이 작품은 펫푸드 산업의 부정적인 측면과 리콜 사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다큐는 제가 수의 영양학 전문의의 꿈을 갖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은 초유의 고양이 집단 폐사 사태로 큰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사망한 고양이 대다수가 같은 공장에서 생산된 사료를 먹었기에, 가능성 중 하나로 사료가 언급 되고 있습니다.


정부 조사 결과를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펫푸드 리콜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과거 리콜 사례들을 검토한 후, 크게 네 가지 범주로 분류하여 정리해 보았습니다.

1. 불순물 혼입 (독성 물질 등)

2. 병원균 (곰팡이, 살모넬라 등)

3. 영양소 불균형 (제조 실수)

4. 원인 불명


그리고 마지막에는 한국 펫푸드 리콜의 역사 및 시사점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불순물 혼입


멜라민 파동


불순물 혼입 사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2007년에 발생한 멜라민 파동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반려동물들이 갑자기 식욕 부진, 구토, 다뇨 및 무기력증을 보이다 신장병으로 사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사 결과, 사망한 반려동물들이 모두 같은 회사의 사료를 먹고 있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알고 보니 이 회사(메뉴푸드)에서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밀가루에 독극물인 멜라민이 섞여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더 싼 원료인 밀가루를 밀 글루텐으로 속이기 위해 멜라민을 첨가하였습니다. 밀 글루텐은 밀에서 추출한 단백질 성분인데, 단백질은 구조적으로 더 많은 질소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료 매입 시 단백질량을 추정하기 위해 질소량을 검사하는데, 이때 눈을 속이기 위해 고질소 화합물인 멜라민을 섞은 것이지요.


                             [멜라민의 화학적 구조. 멜라민의 66%는 질소로 이루어져 있다]


FDA에서 사료를 회수하여 검사한 결과, 멜라민 뿐만 아니라 시아누르산 등도 검출되었습니다. 사실 이때만 해도 멜라민이 반려동물에게 크게 독성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향후 진행된 연구에서 멜라민과 시아누르산이 결합해서 폭발적인 독성을 일으킴이 증명되었습니다. 멜라민 1% 또는 시아누르산 1%가 들어간 사료를 먹은 고양이는 이상이 없었지만, 각각 0.2%씩 들어간 사료를 먹은 고양이들은 2일 이내에 급성 신부전에 걸렸습니다. 이는 두 물질이 신장 내에서 결석을 형성하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충격적인 것은 메뉴푸드에서 자사 제품이 신장병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도, 3주가 지나서야 FDA에 보고했다는 사실입니다. 무려 3주 입니다. 이 멜라민 파동은 역사상 최다 리콜 횟수를 기록하였으며, 가장 많은 반려동물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기도 합니다.


[Pet Fooled 발췌. 메뉴푸드는 자사 사료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주 후에 FDA에 보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FDA의 사료회사 감독 역량이 강화되었습니다. 2007년에 새로운 법안이 생겼는데, 이 법안의 골자는 사료회사에서 리콜에 해당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 24시간 이내에 FDA에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보호자가 직접 FDA에 의심 사태를 보고할 수 있는 창구도 마련되었습니다. 많은 반려동물이 목숨을 잃은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펫푸드 리콜의 제도적인 틀을 갖추게 된 것은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한국에서도 2003년에 멜라민에 의한 신장병이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최소한 2003년부터 이러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펜토바비탈


펜토바비탈은 핑크색을 띄는, 보기에는 예쁘지만 수의사한테는 달갑지 않은 약입니다. 우리 댕냥이들이 무지개 다리 건널 때 쓰는 안락사 약이기 때문이지요. 혹시 안락사 당한 동물 사체가 사료 원료로 쓰인다는, 음모론 같은 얘기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사료 관련해서 유명한 책인 '개 고양이 사료의 진실' 에도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실제로 2004년에 사료에 개, 고양이, 말 등이 원료로 쓰였는지 여부와 펜토바비탈 함량을 검사한 연구가 있었습니다. 31개 건사료 중 16개에서 펜토바비탈이 미량 검출되었지만, PCR 검사 결과 개, 고양이, 말의 DNA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즉, 안락사 당한 동물이 펜토바비탈 검출의 원인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러나 펜토바비탈은 사료에 조금이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성분이며, 어떻게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아쉽게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2017-2018년에는 캔사료에서 펜토바비탈이 대량 검출되어 리콜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당시 네 마리의 퍼그가 이 캔사료를 먹은 후 몇 분 내에 경련을 일으켰고, 그중 한 마리는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FDA는 즉시 3개 공장에서 생산된 5종의 캔사료에 대해 리콜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사례에서도 펜토바비탈이 어떻게 사료에 유입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퍼그가 먹고 죽은 펜토바비탈 함유 캔사료]


FDA에서는 안락사 당한 동물이 사료 원료로 쓰이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습니다. 펜토바비탈이 종종 사료에 들어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안락사한 동물 사체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루머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외에도 염화 콜린, 암모늄 화합물, 갑상선 호르몬 등의 불순물 혼입 사례가 있었지만, 지면상 다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사료 내 병원균으로 인한 리콜 사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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