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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수 Feb 23. 2023

남일대 수평선

(고향 앞바다를 주제로 한 수필)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시인이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노래로 묘사하는 시인의 삶을 그저 막연히 동경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우리 꼬맹이들에게 바다만큼 멋진 놀이터도 없었다. 여름방학이면 동네 아이들이 작당을 해 온갖 과일과 과자로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우고는 오 리 가까운 길을 걸어 남일대 해수욕장을 찾았다. 땡볕에 살이 익는 것도 모른 채 꼬맹이들은 바다를 신나게 만끽했다. 돌아올 때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에다 온몸은 고구마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꼭 한두 녀석은 고무신을 한 짝씩 잃어버려 남은 짝을 밀어주자며 내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도 나는 이따금씩 바다 저 멀리를 바라보곤 했다. 아이의 눈에 고즈넉하게 들어선 남일대의 수평선. 아름다웠으리라, 당연히. 하지만 좀 달랐다. 너무 익숙해진 아름다움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은 듯... 분명 멋진 광경을 바라봄에도 내 가슴에는 약간의 두려움과 이해 못할 갑갑함이 밀려들었다.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데다 색깔마저 짙푸른 바다의 위엄에 압도되었는지도... 익숙해진 아름다움에다 고압적인 바다의 풍모와 비교하면 차라리 그 옆에 새로 들어선 화력발전소의 높디높은 굴뚝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 거대한 굴뚝이 아이 눈에는 마치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기 위해 곧 하늘을 뚫고 솟구쳐 오를 로켓처럼 보였다. 새로운 멋짐이 익숙한 아름다움을 압도해버렸다.


대학에 다니던 어느 가을,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경포대를 찾았다. 성인이 되어 낭만을 즐기기 위해 찾아간 동해안의 바다, 거기서 나는 남일대의 수평선을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미묘하게 다른 감정의 흔들림을 경험했다. 섬이 없는 수평선, 그랬다. 어렸던 나는 수평선과 친구처럼 늘어선 많은 섬들을 보지 못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섬이 사라지고 나니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탁 트인 수평선의 적막함보다 섬과 옹기종기 이웃한 남쪽 바다 수평선의 다정함이 내게는 훨씬 친근한 것을... 그때 느꼈던 갑갑함도 섬에 가려진 먼 바다를 확인할 수 없음에서 오는 일종의 반발이었음을... 하지만 그 모든 갑갑함이 사라진, 뻥 뚫린 수평선을 바라보며 나는 추억의 한 켠을 채운 그 아기자기한 수평선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도시에서 20년을 살았다. 아니, 버텼다는 단어가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거처를 옮겼다. 친구들과 놀던 그 갯바위에서, 이제는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고마웠다. 나는 그를 썩 탐탁지 않게 여겼음에도 그는 조금의 서운한 기색도 없이 나를 받아주었다. 그의 가슴은 더없이 포근하고 따뜻했다. 갯바위를 탐색하느라 여념이 없는 두 꼬맹이와 아내를 잠시 내버려두고 나는 옛친구와 기쁘게 재회했다. 이제는 새끼를 낳았는지 세 개가 된 발전소 굴뚝들이 우리를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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