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시간(Mountain time)에서 보내는 짧은 일상 일기
혹시 콜로라도 주를 아시나요? 저는 미국의 많은 주들 가운데 콜로라도 주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한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여기는 많이들 알고 계시는 서부 캘리포니아나 로스앤젤러스, 동부 뉴욕과는 많이 다르거든요. 저 또한 이곳에 오게 되기 전까진 콜로라도 주를 지나가다 들어만 봤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답니다.
콜로라도주는 미국 중부에 위치해 있어요. 세로축으로 봤을 때 미국의 한가운데, 가로축으로 봤을 땐 한가운데에서 조금 서쪽에 위치해 있지요. 좀 더 알기 쉽게는, 학창 시절 한 번쯤 들어본 로키산맥을 끼고 있습니다. 저는 그 로키산맥의 바로 오른쪽에 살고 있습니다.
캐나다부터 미국까지 이어져있다는 로키산맥에 걸친 주라 그런가 콜로라도의 대부분은 매우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습니다. 콜로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덴버는 "마일 하이 시티(Mile High City)"로도 유명해요. 덴버의 해발도고는 5280ft, 즉 1 mile이기 때문이죠. 미터법으로는 1600m 정도의 해발고도로 한라산 백록담의 해발고도가 1900m인걸 생각하면 정말 높은 편이죠? (제가 사는 곳은 5400ft 정도가 나오네요.)
현실로 고산병을 걱정해야 하는 곳입니다. 제가 한국에 갔다가 콜로라도의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일주일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계속 잠이 와요. 시차적응과 고도적응이 함께 오니 두배로 피곤하곤 합니다. 한국에서 하던 운동도 여기서는 금방 숨을 헐떡이게 돼요. 이 지역에서 조깅하고 사이클 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답니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는 콜로라도가 미국 다른 지역에 비해 비만 인구의 비율이 많이 적고, 콜로라도 출신 올림픽 선수가 다른 주보다 많다고 하더라고요. (사실인지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운동하면 정말 강철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야외활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콜로라도로 모이기도 하구요.
이곳은 아웃도어 활동의 천국입니다. 집 밖을 나가면 어디든 하이킹할 수 있는 트레일이에요. 여름에는 계곡에서 래프팅을 하고,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산이 멋지죠. 겨울에는 눈이 정말 많이 오기 때문에 겨울 스포츠로도 유명합니다. 물론 저는 스키도 안 좋아하고 위험하고 무서운 건 딱 질색이기 때문에 제가 누릴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이지만요. 하지만 하이킹할 수 있는 멋진 곳이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어드벤처를 나름 잘 즐기고 있습니다.
날씨얘기를 해보자면 여긴 정말 극단적입니다. 고도가 높으니 해가 좀 더 가까운가 봐요. 해가 정말 뜨겁습니다. 여름엔 물론이고 겨울에도요. 여름에 처음 잠깐 왔을 때 근처 마트에 가기 위해 15분 정도 걸었는데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항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돌아올 때는 30분에 한 번 있는 버스를 기다려 타고 왔어요. 그리고 다음 날 두피가 묘하게 따가워 거울을 보니 정수리가 빨갛게 익었더라구요.
겨울엔 좀 더 특별합니다. 일단 산맥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이라 그런지 눈이 자주, 그리고 많이 옵니다. 올해 첫눈이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지난주에는 거의 내내 눈이 왔어요. 이제 눈 오는 건 좀 지겨워요. 처음엔 지상에 있는 무료 주차공간을 쓰다 눈을 몇 번 치우다 보니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이젠 매 달 90달러쯤을 내고 유료 지하주차장을 씁니다. 아 그리고 여긴 사륜구동 SUV가 국룰이에요.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낮은 승용차는 눈에 파묻혀 주차장에서 나가는데 오래 걸립니다. 또 사륜구동이 아니면 아마 자주 미끄러지고 말 거예요.
재미있는 건 그러다 눈구름이 지나고 나면 바로 다시 쨍쨍해집니다. 공기는 좀 차갑더라도 햇빛은 굉장히 세서 꽤 따뜻합니다. 여기 와서는 선글라스가 거의 매일의 필수 아이템이네요.
콜로라도에는 덴버라는 큰 도시가 있지만 제가 사는 곳은 조금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덴버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여기도 버스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30분에 하나 오는 단 하나의 버스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어딜 간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기선 뭐든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필수예요. 장을 볼 때도, 밥을 먹으러 갈 때도, 카페에 갈 때도요.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나름 쇼핑몰 근처라 건너편에 대형 슈퍼도 있고 15분 거리에 스타벅스도 있습니다. 이 근방에서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을 찾은 게 이 정도랄까요?
저는 한국에서 사는 동안 요리도 거의 안 하고 운전도 거의 안 했지만 여기에선 요리도 운전도 필수입니다. 일단 배달을 시켜 먹으려고 해도 맛있는 식당이 전혀 없어요.. 한국 식당이 많은 곳이 있지만 차를 타고 적어도 50분은 가야 합니다. 당연히 배달도 안되지요. 그래서 항상 집에서 모든 끼니를 해 먹습니다. 처음엔 많이 서툴렀지만 이제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요리를 하다 보니 장도 많이 보게 됩니다. 미국은 슈퍼마다 주력으로 파는 제품이 달라 한번 장을 볼 때 여러 마트를 들러야 합니다. 코스트코에서는 고기를 대용량으로 사고, 작은 농산물은 트레이더조나 집 앞 슈퍼에서 사고, 아시아인들만 먹는 식재료는 한인마트에서 삽니다. 그리고 매일 차를 타고 장 보러 나갈 수 없기에 한번 장을 볼 때 대용량으로 사 오게 됩니다. 장 보고 오면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 놓는 게 또 다른 일이지요.
아직 집에서 김치를 담근 적도 없고 고기를 얇게 슬라이스 하는 미트 슬라이서도 없지만 미국에 사는 다른 한국인/아시아인 분들을 보면 저희도 언젠가 김치도 담그고 미트 슬라이서로 불고기용 고기도 썰어 먹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주 5일 풀 리모트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콜로라도 작은 도시에 있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거의 집 밖으로 안나가게 됩니다. 나가도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요즘은 옷이나 신발을 사기보다는 집 안에서 필요한 것들에 더 관심이 갑니다. 최근에는 홈카페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였는데 정말 최고의 소비였어요. 점점 외적인 것에 대한 욕심이 줄어듭니다. 열심히 일해서 쓰는 재미로 살았던 사람이라 이런 변화가 신기하기도 하고, 또 그런 재미를 못 누리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풀 리모트로 이제 겨우 6개월 일했지만, 저는 나갈 곳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집에서 일하더라도 가끔 나가서 일할 만 한 괜찮은 카페도 있고, 또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 사는 곳과 상황에서는 좀 어렵습니다. 인구가 밀집된 곳이 아니라, 근처 유일한 카페를 가도 거의 혼자이고, 이야기 나눌 친구도 사귀기 어렵죠. 가끔 출근할 오피스가 있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는 미국 주요 도시에 작은 오피스가 있는데, 주 1일이라도 출근해서 콧바람 좀 쐬고 싶달까요. 요즘은 이런 루즈해지는 기분에 변화를 이것저것 줘 보려고 합니다. 뭐 회사 오피스가 없으면 제가 직접 돈을 내서 코워킹 스페이스라도 가야겠어요.
제가 살고 있는 콜로라도라는 지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운 곳입니다. 사람들도 친절하고, 안전하고(차 유리가 깨질 걱정은 한 번도 안 하고 살고 있어요), 항상 멋진 자연을 보고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곳이 나에게 맞는 곳인가...라는 생각을 요즘은 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어떤 환경이 잘 맞을까 고민하다보면 오래 살고 싶은 곳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 오랜만에 콜로라도에서 보내는 짧은 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