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독립운동 사진전 <空의 지금> 관람기
선명한 배경을 뒤로 하고, 어디론가 증발해버릴 것만 같은 인물사진. 해외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모습을 사진작가 김동우는 그렇게 기록했다.
공(空).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단순히 없다고 규정지을 수 없는 공간. 흔적 없는 흔적을 쫓는 해외독립운동 사적지 촬영의 막막한 여정을 그는 그렇게 이름 붙였다.
구한말 사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영혼을 빼앗긴다고 하여 사진 찍는 것을 꺼려했다고 한다. 누구나 고도의 사진촬영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세상에선 웃음거리도 안 되는 미신 같은 이야기.
하지만 잊혀진 100년의 기억을 재현해내려는 작가의 몸부림은, 떠나간 그들의 영혼을 마침내 사진 안으로 불러내었다. 살아남은 후손들의 잔영 너머로, 바다 멀리 고향을 떠나온 이민 1세대들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그것은 셔터 속도와 빛의 조절이 만들어낸 기술이 아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허공을 휘저어 불러낸 진혼곡이다.
“미국, 멕시코 이민 배에 올랐던 디아스포라 1세대 대부분은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다. 그래서였을까. 당신들의 곤곤한 형편을 알았기에 사무치는 그리움만큼이나 이 땅을 잊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들의 디아스포라는 곧 독립운동의 역사가 된다.”
- <뭉우리돌의 바다> 서문에서
‘생존이 곧 독립운동이다?’
단번에 납득되지 않는 명제는 그의 취재기라 할 수 있는 <뭉우리돌의 바다>를 읽다보면 수긍이 간다.
안창호, 서재필, 박용만, 이승만, ... 미주 독립운동사를 이야기 할 때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명망가들. 허나 온갖 천대와 괄시를 받으면서도 한인회를 꾸리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곤궁한 형편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식들의 교육에 신경을 썼던, 수많은 동포들의 참여와 후원이 없었다면 명망가들의 활동이 가당키나 했을까.
그곳이 어디 미국뿐이었겠는가. 멕시코와 쿠바에서도 그랬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에서도 그러했다. 하물며 한반도 가까운 땅, 중국과 연해주에서의 이야기야 말해 무엇 하랴.
망해가는 나라는 살아남기 위해 낯선 땅으로 내몰렸던 이들을 위해 어떤 보호막도 되어 주지 못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35년,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 국호(國號)를 대신하여 그들은 몸으로, 질긴 삶으로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임을 증거했다.
벌써 해방 후 80년에 가까운 세월. 이제 이역만리 디아스포라 4세, 5세, 6세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한민족의 원형을 기대하는 건 난망한 일이다. 그래서 더욱 머릿속에 가시지 않는 질문 하나. “대체 조국은 그들 조상에게 무엇이었으며, 현재 그들에게 조상의 나라는 어떤 의미인가?”
전시회의 부제는 ‘뭉우리돌을 찾아서’다. ‘뭉우리돌’은 백범일지에 등장하는 단어로 김구 선생이 독립정신의 상징으로 표현한 말이다. 사전적으로는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게 큼지막한 돌’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 돌이 저절로 둥글둥글 해졌을 리 없다. 모진 풍파에 모서리가 깎여 나가는 아픔을 딛고 그렇게 만들어졌을 테다. 그 풍파는 말도 통하지 않는 척박한 남의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멀리서나마 조국의 독립을 염원해마지 않았던 간절함이었다. 그 풍파는 우리의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무관심과 망각일 수도 있겠다.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8월 15일 광복절. 우리가 놓치고 있는 또다른 뭉우리돌은 없을까.
* 국외독립운동 사진전 <空의 지금>은 은평구 너나들이센터 1층에서 8월 2일~15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