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소녀 Apr 01. 2022

나의 길고양이에게


스캇이에게,


오랜만에 네 안부를 물어. 가끔 마음이 복잡해지는 날이면 너를 만났던 날을 떠올려.

이제는 볼수도, 만날 수도 없는 너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해.

어느 여름밤, 나는 군것질을 사러 마트에 가던 중 이었어. 한쪽 다리를 크게 다쳤던 너는 가만히 나를 보면서 울고 있었고 너는 우는것도 힘들어보였지. 나는 너를 가방에 넣고 숙소로 데려왔었어. 그날 큰 가방을 가져갔던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를 길거리에서 안아올렸을 때 너는 단 한번의 미동도 하지 않고 모든걸 순응한 채 나에게 몸을 맡겼었지.

늦은 밤이었던터라 뎁힌 우유와 참치캔을 뜯어서 너에게 줬고 너는 허겁지겁 먹었었지.

안쓰는 이불보를 둘둘말아서 너는 우리집 거실 소파에서 잠을 잤어. 밤새 한번도 울지 않는 너가 걱정되서 나는 자주 거실로 나가서 너를 확인하곤 했어. 날이 밝자마자 동물병원으로 데려가서 너는 치료를 받았고, 입원해있는 동안 나는 바쁜 스케쥴 때문에 자주 들리지 못했어. 꼬박 일주일이 지나서야 너를 만났는데 너는 나를 알아보고 내게 안기려고 했었지. 조금은 우렁차진 울음소리와 생기가 도는 너의 눈망울을 보면서 나는 기뻤어. 내가 만약 숙소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때 만약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너를 한국으로 데려왔을꺼야.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입양을 보냈고 그뒤로 나는 너를 이렇게 상상속으로나마 안부를 물어.

나는 가끔 궁금하곤 했어. 내가 너를 만났던 건, 너에게 복이었을까 아니면 화였을까?


몇일 전에 비행을 하다가 동료 하나랑 크게 싸운적이 있어. 그의 뻔뻔함과 어딘지 모르게 나를 무시하는 태도까지, 10시간의 비행동안 참고 참았던 게 착륙을 바로 앞두고 터져버렸던거지. 비행내내 그는 게을렀었고, 나에게 일을 떠맡겼었어. 처음에는 바쁘다보니 그럴수도 있지 하고 넘기다가 마지막까지 모든 일을 나에게 다 떠넘기려는 모습에서 그만 화가 터져버리고 말았던거야. 스캇아, 상상해봐.

랜딩을 하는 그 순간에 비행기 뒤쪽, 크루들의 공간은 정말 얼음장처럼 차가웠었어.

마지막 순간 나는 그에게 소리를 쳤고, 그를 남겨두고 나왔었거든.

화라는 건 참 무서운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밤을 꼬박 새우고 왔었는데 잠이 오기는커녕 오히려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나를 보면서 내가 이 감정에 잠식되어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나는 내내 몸을 잘게 떨고 있었는데, 그건 아마 내가 그에게 더 심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참으려고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거든.


내가 너를 발견한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구원이 필요했었나봐. 착륙을 하는 내내 나는 창밖을 보면서 네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스캇아, 그런말이 있어.

음은 양을 데려오고, 양은 음을 데려온다고.

좋은 일이 생기면 뒤이어서 나쁜 일을 데려오고,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을 데려온대.

몇일 동안 그 비행을 곱씹으며 알수없는 불쾌감으로 몸서리를 쳤다면, 오늘은 방콕으로 비행을 왔지. 저번비행이 음이었다면, 오늘은 양같은 비행을 했어. 그렇다면 나는 또 음을 기다려야 하는걸까? 나는 마음속으로 빌어봐. 음과양의 법칙은 인간세상에서만 적용되는 규칙이기를, 그래서 너희 고양이 나라에서는 더이상 너에게 힘든일이 안 생기기를. 너는 이미 나를 만나기 전까지 무수히 많은 고생을 했을테닌깐, 앞으로는 행복한일만 가득하기를. 그리고 나는 너에게 양같은 존재로 남아있기를.


어느 날, 너가 또 이렇게 보고싶어지는 날이면 편지를 남길게. 그때까지 건강히 잘지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