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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소녀 Feb 21. 2023

겨울바다 사주

2월 15일 오전 9시 27분에 태어난 나는 새벽녘 겨울 바다를 닮은 사주라고 했다.


동트기 전 바다가 가장 어둡듯이 외로울 수도 있는 사주라고 말했다. 거기까지 말을 하고는 안심하라는 듯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인복과 재물복이 있으며, 노후에 말년복도 좋다면서 그녀는 현재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들만 골라서 말했다. 겨울바다를 닮은 사주라 그런가 유난히도 겨울을 싫어한다. 그래서 아마 이 먼 여름나라까지 온 게 아닐까. 나를 닮은 계절을 피해 도망치고 싶었던 걸 거야.


외로움을 잘 타진 않지만 가끔씩 깊게 빠져드는 우울의 구렁텅이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제는 닿지 않을 그리고 닿을 수 없는 인연들의 사진들을 꺼내어본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고 찍은 사진도, 서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표정으로 찍은 사진도 이제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이다. 그 사진이 마지막 사진이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많이 찍어둘걸. 환히 웃고 있는 사진 속 모습이 나에게 기억된 마지막 모습이라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가 전생처럼 아득해 자꾸만 슬퍼진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끊어진 인연들을 떠올릴 때마다 매 순간 이별을 겪는 기분이 든다.


사주를 자주 보지 않지만 어떤 확신의 말을 듣고 싶을 때 사주를 본다. 종교적인 이유로 그런 것들을 멀리하려고 하지만 참을 수 없이 안개 낀 바다 같은 일상들이 지속될 때면 나는 다른 이의 입에서 다 괜찮다는 확신의 말을 들으러 돈을 지불하고 내가 원하는 걸 얻는다.


내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보다가 얼굴을 한 번 힐끔 보더니 그녀는 말했다.


‘생긴 건 천생 여자인데 안에 남자가 들어앉아있네. 성격이 남자다워’


그 말을 듣고 묘하게 용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 성격이 조금만 더 여성스러웠더라면, 그 많은 인연들을 놓치지 않았을까 하고. 어떤 인연은 내 탓이 아닌데도 어느 순간 자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외로움보다는 마음이 시릴 때가 더 많다. 인복이 많다는 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는 건데 그 뒤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셨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나 그만큼 많은 이별들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이별을 겪을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차가운 겨울바다가 되어버린 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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