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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Jan 19. 2023

일반인 모델과 여성해방주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려면 어느 정도의 지식과 지성이 필요하므로, 이것이 엘리트주의로 변질되어 더 욕을 먹는 부분이 있다. 뭐가 남성 중심이냐, 역차별이다라고 항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자기가 나고자란 틀을 벗어나 바깥을 사유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인데, 이건 확실히 지능과 교육이 필요한 부분이라 학술적 페미니즘이 대중에게 보편적으로 와닿기는 쉽지 않다.


좀 더 감각적이고 유물론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과연 남성중심 사회라는 것이 뭔가, 남성의 쾌락만을 중심으로 한 섹스 담론의 하이어라키는 왜 깨지지 않는가, 섹스토이 담론은 왜 늘 비대칭적인가, 매력적인 여성의 상은 왜 늘 획일적이며,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억압하는가, 이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을 신체의 감각으로 딱 와닿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교육이나 체계가 필요하다. 세상의 구조와 무게 중심이 어떤 모양인지, 담론의 지형이 어느 쪽으로 쏠려 있고 누구에게 유리하게 구성되어 있는지, 누가 그것을 구성하는지 등에 대해, 미러링이든 뭐든 인간의 일차원적인 감각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의 발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단어가 주는 통렬한 감각이 치열한 고민과 사유를 촉발하는 경험을 조금이라도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것이다. 내겐 여성해방주의가 그러하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멍청하고 공격적인 의미로 통용되지만, 이 단어를 엄밀히 사용할 때 이것을 여성해방주의로 번역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 처음 접했을 땐 다소 의아하였는데, 보다보니 매우 적절하다. 나는 이것이 감각 차원에서 정말로 중요하고 유효한 방법론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미를 고찰해 보는 것 자체가 많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 소기업을 막론한 많은 여성 의류나 속옷 브랜드에서 날씬하고 비율 좋은 모델을 배제하고, 평균적인 몸매와 외모의 모델을 광고에 사용하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이는 여성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데, 서구에서는 도브 같은 회사에서 21세기 극초반에 이미 보편화되었고, 빅토리아 시크릿의 경우엔 ‘엔젤’을 앞세운 패션쇼를 폐지한 이후 주가가 폭등한 사례도 있다. 이것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피부색, 체지방률, 주근깨, 금발 혹은 흑발, 가슴 크기나 신체 비율 같은 차이에 대해 미적 우열을 적용하지 말자는 권유이자 운동이다. 예쁘지 않은 걸 예쁘게 봐달라고 우기는 게 아니고, 예쁨이라는 것의 획일적 기준을 해체하자는 것이며, 그 획일적 기준이 인간 존재에게 가하는 유무형의 억압을 철폐하자는 해방의 목소리다. 미의 기준은 각 개인이 스스로 창출해야 하며, 각자의 감각에 집중하고 자신의 미학을 계발하여 윤리적,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되면 이 사회가 감각적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인간 본연의 갈등이나 적대감(즉, 정치적인 것)을 좀 더 세련되고 성숙하게 다루고 더 발전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상론이지만, 현실론만으로는 세상이 조금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이 방향성은 중요하다.


말하자면 전국민이 김태희만 예쁘다고 하는 게 과연 정상이냐는 것이다. 그 미의 기준이 진짜 내 자신의 감각 경험과 미적 판단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매스 미디어와 정치 권력이 주입시킨 것인지 회의해보자는 것이다. 여성 혐오의 근원은 비틀린 성욕이 아니라 모든 남성이 여성의 외모에 대해 통일된 미적 기준을 주입받고, 그것을 서로 상호 강화하며 주체를 형성하는 뿌리 깊은 미학적 전체주의다. 그 미적 기준에서 여성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윤리적, 정치적 판단과 행위의 준거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주의는 그 반작용이다. 일반인 모델이 불편하다면, 잘못된 것은 모델이 아니라 나의 눈과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나와 나의 가족, 친구들은 높은 확률로 대부분 외모적으로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일반인 모델은 여성에 대한 성적 시선을 거두고 여성을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것은 하나의 중대한 해방이다.


세계를 선도하는 화장품 산업과 성형수술 기술력에 대해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획일적 기준에서 벗어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불행한 사회라는 방증이고, 틀에 맞춘 외모에 대해 모두가 정신병적 강박증을 갖게 만드는 미친 사회라는 증거다. 이런 대한민국 사회에 특정한다면,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해방주의보다 더 적절한 번역은 달리 없다. 여성의 해방은 곧 남성 주체의 미학적 해방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죽이겠다는 운동이 아니라, 남성을 구원하겠다는 운동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 크나큰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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