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끝자락에 월세사기를 당하다

by 흙표범

"월세 60만 원에 부가세 10% 더해서, 총 66만 원이에요"

"부가세요? 아까 그 얘기는 없었잖아요?"

"부가세 없는 게 어디 있어요? 당연한 거지"




30대 끝자락에 처음 해보는 월세계약이었다.

1년짜리 서울 파견근무를 신청해 놨는데, 결과를 그렇게도 안 알려주더니

결국 열흘뒤에 서울로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복사기에 종이가 떨어지면 바로 종이를 채워 넣고,

필요한 문구용품을 과 서무에게 말할 때조차

한껏 눈치를 보는

이 하급직원의 인사가 극비일 리는 없고

업무처리는 직원복지가 우선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급하게 집을 구해야 했다.


어쨌거나 열흘 안에 서울로 이사를 하고, 출근을 하기 위해

내가 구할 수 있는 집은,

전에 살던 사람이 나갈 때까지 뒷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텅 비어있는 집 중에 골라야 했다.

그중에 제일 뷰가 좋은 월세 60만 원 집으로 바로 계약을 하기로 하고,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이었다.


"어? 66만 원이요? 좀 전에는 60만 원이라고 하셨잖아요?"

"월세 60만 원에 부가세 10% 더해서, 총 66만 원이에요"

"부가세요? 그 얘기는 없었잖아요?"

"부가세 없는 게 어디 있어요? 당연한 거지"


부동산 중개인은 부가세가 당연한 거라고

당당하게 얘기를 하고,

집주인은 임대사업자가 내야 하는 세금이 너무 많다며 앓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현장의 분위기와 빨리 집을 구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결국 나는 그 찝찝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야 말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건지...

서울에서 계약을 하고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도 그 찝찝함은 계속 남아있었고,

결국, 서울 보다는 그래도 솔직할 것 같은

집 근처 부동산에 들어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역시나였다.

"주거용 월세에 왜 부가세를 받아요?"


확인사살을 마치고 부동산에서 나오자마자,

서울 중개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월세 66만 원짜리 계약한 세입자인데요,

제가 확인해 보니 주거용 월세에는 부가세를 받는 게 아니더라고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그렇게 친절하던

중년의 중개업자는 온 데 간데없었다.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내 귀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큰 소리로 외쳤다.

"아가씨가 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그리고, 계약 다 했잖아.

할 말이 있으면 계약하기 전에 말해야지,

다 끝나고 나서 왜 그래?"




매달 66만 원을 송금할 때마다 가슴속 저 깊숙한 곳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느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찌 되었건 내가 도장을 찍었고, 부동산과 집주인은 한통속일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4개월 월세를 내고, 혼자만의 조용한 연말을 보내고 있던 저녁,

뉴스를 보며 드디어 뭔가 될 것 같은 해답을 찾았다!

온 나라가 부동산 얘기로 들썩이던 2020년 겨울,

'부동산 거래질서 교란행위 신고센터'에 대한 뉴스였다.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국토부에서 운영하는 신고센터에

'거짓언행으로 부동산 거래질서를 교란시키고 있다'라고

먼저 신고를 했고,

신고센터를 검색하며 알게 된,

공인중개사협회 홈페이지 내 신고센터에도 같은 내용으로 신고를 했다.

사실, 이렇게 신고서를 쓰는 것조차

얼마나 후련했는지 모른다.


< 좌. 국토부 부동산거래질서 교란행위 신고센터,

우. 공인중개사협회 홈피 내 신고센터>




"저희가 딱히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요"

공인중개사협회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내 신고내용을 보았지만, 협회 측에서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던 그 직원에게 나는 한 가지를 부탁했다.

" 그럼 해당 부동산에 이것만 전해주세요.

어차피 국토부에도 신고를 했으니 그쪽에서 연락이 갈 것이라고요, "


드디어 며칠 뒤 용산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민원처리는 해당 지자체에서 한다며, 간단히 본인을 소개하는 전화목소리만 들어도, 뭔가 민원해결의 달인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 민원내용은 다 읽어봤습니다.

보통 신고를 하시는 분들은 마음속에 원하시는 게 있더라고요.

표범님은 어떤 걸 원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가슴이 쿵쾅거렸다.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눈앞에 왔으니 말이다.

"규정상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페널티를 줄 수 있다면 영업정지나 자격박탈 같은 유형을 원합니다.

고의로 그랬다면 직업윤리가 없는 거고,

몰라서 그랬다면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것이니,

저 같은 피해자가 또 발생하면 안 될 것 같아요 "



"나이 드신 분이라 잘 모르셨나 봐요"

용산구청과 전화통화를 한 다음날,

집주인의 전화가 왔다.

동네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 중개사를 걱정하며,

나이 드신 분들이 모르고 그랬으니 한 번만 봐달라는 내용이었다. 영업정지라도 당할까 봐 노인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본인에 대한 얘기는 일절 없었다.

자기도 규정을 몰랐다는 등의 핑계조차도 말이다.


이틀을 고민했다.

내가 고민하는 이 시간 동안 그들이 초조함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그 부동산에서는 사과전화 한 통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집주인에게 나도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처지임을 자각하고, 그동안 더 낸 6만 원 ×4개월치를 돌려받는 걸로 마무리했다.




이번일을 거치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야생에서 자라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온실(구멍은 좀 뚫린) 속에서 자라왔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장 처음 들었다.

처음 독립을 했던 이대 앞 원룸은 정말 좁아서 친구 2명이라도 재워주는 날엔, 한 명은 발을 진짜 현관에 놓고 자야 할 정도였지만,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전셋집으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진 세상은 혼자 살아가기엔

녹록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고,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내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하게 되었으니,

나름 값진 경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집주인과 부동산은 한패였다고 생각한다. 서울 해방촌에만 다세대 주택 3채를 가지고 있다는 그녀가 그것을 몰랐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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