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샀어야지...

by 흙표범

"올해 문서 잡는 운이 있어"

직장생활을 시작한 20대 후반,

신년운세를 보러 갔을 때 들었던 말이다.

"문서를 잡아요? 그게 뭔데요?"

돈을 번다는 이야기인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집을 살 수도 있고, 회사에 다닌다면

인사이동이 있을 수도 있지.

문서에 도장을 찍는 일이 있다는 거야"


"그럼, 결혼할 수도 있다는 거네요?"

콕 찝어 주는 것도 아니고, 너무 많은 경우의 수에

그냥 끼워 맞추면 다 맞는 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도 '문서운이 있다'는 얘기를

몇 년에 한 번씩은 들었지만 무시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돈을 써서 나온 점괘인데,

좀 새겨들을 걸 그랬다.




인생을 바꿀만한 기회가 있었다.


2012년 초, 전세계약이 만료될 즈음

미국에 사는 집주인의 전화가 왔다.

Rrrrr............

"표범씨, 혹시 지금 살고 있는 집 살 생각 있어요?

계약할 때마다 매번 한국에 나가기도 번거롭고,

이참에 집을 정리하려고 하거든요.

가지고 있으면 확실히 돈은 벌거예요"


재건축되기 전 과천주공 2단지는 5층 건물이었다.

건물보다 나무들이 더 높은 것도 좋았고,

시끄러울 정도의 매미소리마저도 좋았는데...

전세금 1억 2천만 원도 부모님 지원에

내 개인 신용대출까지 해서 마련했는데,

4억 원을 더 마련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출처: 호갱노노)


내가 살던 16평이 공짜로, 아니 오히려 몇 천만 원을 돌려받고

받을 수 있었던 전용면적 59 제곱미터 신축 아파트는

지금은 20억이 넘었다.


그때 과천주공을 최대한 영끌로 샀더라면,

지금의 나는 육아휴직자가 아니라

40대 파이어족이 되었을텐데...


제주도 한달살이도 하고,

치앙마이 한달살이도 하는 그런 삶을 놓치고,

1년 365일, 잠은 꼭 집에서 자는 집순이가 되었다.





"설마, 정기예금 할 건 아니지?"


30대 중후반, 회사에서 보내주는 유학시험에 합격하여,

중국으로 2년간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오피스텔 전세금을 곧 돌려받을 것을 아는

친한 직장동료는 출국 전까지 몇번이나 얘기했다.


"세종시에 아파트나 땅이나 뭐든 사놓고 떠나.

어차피 2년간 그 돈 필요도 없잖아.

돌아와서 본인이 들어가 살아도 되는 거고"


(출처: https://pixabay.com)


나는 안전하게 2년짜리 정기예금을 들어놓고 중국으로 떠났다.


그때 세종시에 집을 샀더라면,

깨끗한 도심속에서 우아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다시 돌아왔더니, 진짜 비싸진 세종시 집값때문에

도심안에서 내 예산에 맞는 전세집은 구할 수가 없었다.

30년쯤 내가 어릴때 봤던 sk텔레콤 파란색 간판이 아직도 붙어있는

면사무소 옆 시골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했다.


옆집은 카자흐스탄, 아랫집은 중국인,

밤12시가 되면 크게 노래를 몇 시간 동안 부르는

이웃이 사는 복도식 아파트였다.

한층에 20가구 정도가 살아서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가 매 층마다 서는것도

짜증스러웠던 2년 이였다.





귀인은 내 옆에 있었다.

돈을 벌기시작한 후 투자를 안한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펀드도 사봤고,

뉴스를 보며 감이 오는 국내주식에 직접투자도 해봤다.

하지만 몇 백만원이지만 실제로 돈을 잃었고,

5분마다 시세를 검색하는 피곤한 성격탓에

안전하고 더이상 신경쓸 필요 없는

예적금으로 갈아탄 후,

쭉 외길인생을 걸어왔을 뿐이다.


30대 후반이 되어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집 한채는 있고,

나는 아직 떠돌이 인데,

안정적으로 정착한듯한 주변인들의 모습에

너무나 뻔한 예금, 적금과는 헤어질 결심을 했다.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언제나처럼 그냥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날이었다.


" 이번 주말에 뭐 하세요?"

금요일 오후, 사수에게 그냥 물었다.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경기도에 올라갈까 하는데.

아는 사람이 추천해 준 아파트가 있어서

부동산에 한번 가보려고"


"저도 같이 가도 돼요?


내 사수는 근무시간내에 집약적으로 일을 하고

정시퇴근을 추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업무적인 얘기를 주로 하는 관계였는데,

주말에 함께 경기도를 간다니!

나중에 사수가 말하기를,

그때의 나는 어지간히 급박해 보였다고 한다.


내가 사적인 말을 꺼낸적이 없어 귀인은 줄 몰랐을 뿐.

알고보니 귀인은 1년 넘게 내 옆에 있었다.

남자인 사수는 키가 나보다 10센티는 작았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당당함의 원천이 흔드림없는 자산때문이었을까?

부동산 책을 100권 이상 읽었다는

귀인의 도움으로 나의 임장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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