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3분.
이탈리아 피렌체 기차역.
“어? 6시 5분 기차인데 아직 도착을 안 했나?
”그러게~ 이탈리아도 느긋한가 보네~“
2019년 여름.
여동생과 함께 떠난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목적지, 나폴리에 가는 날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나폴리로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라면 절대 일어나지 않는 시간인
6시 5분 기차표를 샀고,
꼭두새벽에 기차역에 오는 수고로움을 덜고자 기차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의 숙소까지
구하면서 나폴리 여행에 심혈을 기울인 우리였다.
기차 출발시간 2분 전에 피렌체역에 도착한 우리는
역내 전광판의 ‘출발기차’ 목록에서 도저히 나폴리행 기차를 찾을 수 없었다.
”아직 2분 전이라 플랫폼이 안정해졌나? “
”아니야. 30분 뒤에 출발하는 기차도 출발목록에 있잖아. 뭔가 이상한데? “
아직 희망을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나의 말에,
여동생은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을 보여주며 ‘뭔가 잘못되었음’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었다.
혹시 몰라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체크하고,
프린트한 기차표도 다시 보며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던 중에
갑자기 싸한 느낌이 들며 한 달 전에 받았던 이메일이 뇌리를 스쳤다.
영어도 아닌 이해 불가의 언어로 온 이메일.
스팸으로 생각하고 1초 보고 닫아버렸던 그 메일이
지금 이 상황과 뭔가 관련이 있을 것 같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여동생과 함께 그 메일을 다시 열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글 중간 즈음에 만국 공통어인
숫자가 몇 개 쓰여있었다.
‘6.05’.......‘6.00’
왠지 낯익은 숫자에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기차 운행 스케줄이 조정되어 6시 5분 기차가 6시에 출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약 5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나는 2단계의 감정변화를 겪었다.
번역된 내용을 보자마자 나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아니 외국인에게 이탈리아어로 메일을 보내면 어떡하냐 ‘는
투덜거림을 시작으로 이 나라의 배려심까지 들먹거렸고,
그러다가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이 들었다.
’왜 내가 이 이메일을 제대로 안 봤을까 ‘,
’ 해외 여행지에서는 적어도 10분 일찍 도착했어야지,
2분 전에 도착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
어찌 되었든 기차회사는 안내메일을 보냈는데,
마음대로 스팸으로 치부해 버린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나의 이런 행동은 성인이 된 후 십 수년간 변하지 않았다.
내 주변에서 아파트를 산다고 난리가 났어도,
그 수많은 알람을 한 번 듣고 꺼버리기 일쑤였고,
집주인이 내 집을 사달라며 밥을 떠먹여 주는데도,
입만 벌리면 되는 것을 단칼에 거절한 적도 있었다.
직장생활에 진을 다 빼버려서 다른 것에는 신경 쓰기 싫어하던 내가,
과연 아늑한 내 집을 가졌을까?
다음화부터 본격적인 나의 부동산 경험기(대부분 후회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