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에 스며있는 부모의 흔적
심리학자와 결혼 시리즈를 연재하려고 마음먹고 손품을 팔아 나름의 시장조사(?)를 시작했다. 브런치에서 검색해 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해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결혼만큼 많은 이야기가 이혼이었다.
사람들이 육아만큼 다양한 방식이 있다고 여기는 것이 결혼이다. 부부의 일은 두 사람만이 아는 것이고 그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글을 읽다 보니 정말 모두의 결혼 생활이 개인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결혼, 엄밀히 말하면 사랑 찬양론자이다. 어떤 형태이든 두 사람이 만나 진정으로 교감하고 이해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과정을 지향한다. 아주 다행히도 나는 그런 결혼 생활을 하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관계를 통해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길 바란다.
결혼이 누구나 하는 쉬운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결혼할 사람과 결혼식을 치를 돈과 둘이 함께 살아갈 적당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심리학자 입장에서 결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윗어른들로부터 눈, 코, 입 모양, 머리카락의 결이나 두께, 체형, 지능이나 타고난 재능 같은 외적인 것들을 많이 물려받는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훨씬 많은 것들을 유산처럼 물려받는다. 가령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나의 부모님이 서로 관계를 맺은 방식, 그리고 나의 엄마가 외할머니와 맺는 방식, 나의 아빠가 당신의 아버지와 맺는 방식은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그 관계의 방식이 나와 배우자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자녀들과 관계 맺는 방식에서도 드러나는 것이다.
나와 결혼하는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물려받는 유산은 내가 물려받은 것과 또 다르다. 각자의 가족이 물려준 유산을 손에 들고 우리는 결혼을 한다. 그 유산 안에는 관계를 맺는 방식뿐만 아니라 개인의 상처와 환상도 함께 들어있다. 이 상처와 환상이 부부관계에서 문제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 관계 안에 있는 당사자들은 대부분 이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각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결합하는 일은 생각보다도 훨씬 어렵다. 이 과정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포기하게 되며, 결국 관계를 끝내게 된다. 나의 결혼이, 나의 부부 생활이 평탄하게 흘러가길 바란다면, 내가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