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육아: T or F
‘T발. C야?’
라고 하더라. 하하. 참 재밌어. MBTI가 유행하고 나서 엄청나게 많은 밈이 생겼는데, 엄마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하는 밈이야. 저 말을 듣고도 기분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사고형이거든.
사고형(Thinking)과 감정형(Feeling). MBTI의 성격 선호 경향들 중에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서로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서로 상처받고, 또 서로 피곤하다고 주장하지. 그도 그럴 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지 기준이 되는 성격 선호 경향이기 때문이야. ‘감각형(S) - 직관형(N)’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렌즈를 제공한다면, 그 렌즈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어떻게 결정하고 판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고형(T)과 감정형(F)이라는 두 가지 유형에 따라 구분된다는 거야. 간단히 말해서 머리로 결정하는 것과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이지.
엄마는 사고형(T)이야. 논리적, 이성적, 사실적, 합리적인 모습이 두드러지지. 엄마는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해결해야 할 때, ‘좋고/싫음’보다는 ‘옳고/그름’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야. 네가 만약 친구랑 싸우고 와서 속상해할 때, 엄마는 네 말을 듣고 사실을 따져볼 거야.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같이 생각해 보겠지.
부모양육태도를 알아보는 검사에는 ‘합리적 설명’이라는 영역이 있어. 아마도 엄마는 ‘합리적 설명’이 높은 편이겠지. ‘합리적 설명’은 훈육을 하더라도 그 이유를 함께 덧붙여주는 거야. 무조건 ‘하지 마!’라고 하는 것이 아닌, ‘왜 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지. 어떤 일의 원인이나 이유를 차분히 말해주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야. 또 너와의 대화를 통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좋아하는 거야. 너와 밥을 먹으면서 하루에 있던 일을 공유하고, 네가 본 책이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엄마의 생각을 말하고, 또 네 생각을 듣는 시간이 정말 즐거울 것 같아. 아빠도 엄마와 같은 사고형(T)이란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 간혹 밤을 새워 이야기할 때도 있지. 엄마는 그런 시간이 좋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는 시간들 말이야. 아빠의 마음을 들으면 아빠를 더 이해할 수 있거든.
하지만 사고형이 강할수록 감정적인 측면들은 약점이 돼. 그건 감정형도 마찬가지이지. 그래서 엄마는 감정을 다루는 것에 서툴러. 네가 친구와 싸워서 속상하고 슬픈 마음을 먼저 다독여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걸 어려워할지도 몰라. 물론 너에게 많은 애정을 표현하겠지만, 그건 엄마가 아주 열심히 노력한 결과이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란다. 엄마는 사실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상대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에게 무자비한 팩트 폭행을 날릴지도 모르겠어. 엄마의 이런 모습이 너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지. 하지만 중요한 건 엄마가 스스로 그 약점을 안다는 것이야. 그리고 최대한 엄마의 감정적인 측면을 끌어내어 사용하도록 노력할 거라는 것이지. 더욱 사랑을 표현하고, 칭찬하고, 공감하는 연습을 해나갈 거야.
감정형(F) 엄마들은 정서적, 친밀한, 관계적인 모습들을 갖고 있어. 사실 육아라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은 애착을 형성하고, 아이를 섬세하게 돌보는 일이야. 아이가 친구와 싸우고 왔을 때, 감정형(F) 엄마들은 아이의 편을 들어주고, 아이의 마음을 알아줄 거야. 공감해 주고, 아이의 속상한 감정을 이해해 주는 거지. 그래서 감정형(F) 엄마들은 사고형(T) 엄마들보다 양육에 유리할지도 몰라. 아이가 사랑을 받고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 주거든. 애착이 형성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충족해 줄 수 있는 거지.
감정형(F) 엄마들은 대체로 부모양육태도 검사의 ‘정서적 교류’ 영역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애정과 친밀함을 충분히 표현하는 거야. 아이들과 신체적 스킨십도 많이 하지. 육아와 가족이라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아. 또 나의 욕구보다는 아이의 욕구를 더 우선시하지. 아이가 행복하다면, 내가 희생하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하지만 자칫 화목한 가정이어야만 하고, 가족 간의 갈등은 없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에 빠질 수도 있어. 아이들과 대립하는 것을 힘들어하지.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거나 엄마가 지나치게 희생할 수도 있어. 사고형(T) 엄마들이 갈등을 두고 첨예하게 의견을 대립하는 모습과는 다르지. 사고형(T) 엄마들은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거나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으로 받아들이지만, 감정형(F) 엄마들에게 가족 간은 갈등은 큰 실패와 좌절로 다가오는 거야. 또 자신이 온전하게 아이에게 관심을 쏟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느껴. 어떤 감정형(F) 엄마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외식할 때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낀다고 해. 아이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며 억지로 갔는데, 나 혼자 맛있는 걸 먹고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엄마가 행복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행복해진단다. 내가 치킨 닭다리를 좋아한다면, 아이나 남편에게 항상 양보하지 말고 내가 그 닭다리를 먹는 날도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 과정에서 아이는 양보와 배려를 배우고, 또 엄마가 닭다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기도 하니까.
애착이 중요한 어린 시기에는 감정형(F) 엄마들이 강점이 발휘되는 반면, 독립성과 성취능력이 발달하는 청소년기에는 사고형(T) 엄마들이 빛을 발하겠지. 아이가 발달하면서 필요한 욕구는 달라져. 엄마의 양육방식도 시기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야 하는 거야. 그래서 나의 성격이 언제 강점으로 나타나고, 또 언제 약점이 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 어쩌면 엄마가 된다는 것은 양육이라는 상황에서 내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면서도 부족한 점은 개발하고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어.
엄마는 엄마의 사고형(T)스러운 모습을 좋아한단다. 어떤 문제가 생길 때, 찬물을 끼얹은 듯이 촤-악 가라앉는 그 모습(?)이 엄마는 좋거든.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빠르게 해결하려고 하지. 문제는 인정하고 다음부터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의 모습을 좋아해. 더 좋은 방법이 있지는 않은지 더 나은 길이 무엇일지 언제나 생각하지. 하지만 이런 모습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차갑고 냉정하게 비추어진다는 것도 알아. 특히 일보다 관계적인 상황에서 말이야. 공감을 바라며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엄마는 사실을 따져 묻고 어떻게 하라고만 말하니까. 엄마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다행인 건 엄마의 주변 사람들이 엄마를 감정형(F)으로 본다는 거야. 뼛속까지 사고형(T)인 엄마인데 말이지. 훗. 엄마의 노력이 어느 정도 통했나 봐. 엄마는 사람들이 엄마에게 상처받지 않길 바래. 농담 삼아 사람들을 잘 속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엄마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칼을 휘두르며 뿌듯해하는 사람이 아닌 두 팔을 벌려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너에게도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