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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애 Feb 05. 2023

죽음을 앞두고 할 일 – 안녕, 소중한 사람

You will live and I will die out of here

오랜 시간 연인으로 함께 해온 ‘엘렌’(비키 크립스)‘마티유’(가스파르 울리엘)는 죽음에 대해 서로 다른 시각을 보인다. 희귀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엘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려 한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수 없는 마티유는 그녀의 곁에 머무르며 생존율이 낮더라도 치료받기를 권한다. 


 엘렌은 살이 내려 크기가 맞지 않는 옷과 호흡곤란으로 종종 숨을 헐떡이며 어디를 가나 산소 발생기를 챙겨야 하는 현실에 침울해한다. 무엇보다도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는 엄마와 파티에서 죽음을 앞둔 엘렌을 튀어나온 종기처럼 대하는 친구들은 그녀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가장 가까이서 그녀의 수발을 들며 희생을 감내하는 마티유에겐 죄책감과 함께 불안함을 느낀다. 



도시에서 인연을 맺었던 지인과의 관계 속에서 절제된 태도로 불편한 침묵을 지키던 엘렌은 죽음을 앞에 둔 수동적인 인간처럼 보인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조차 자신의 상태에 거리를 두고, 되도록 멀쩡히 살아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다. 


그것이 한 번 무너졌을 때는 폐를 이식받았으나 병상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환자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더한 무력감이 전신을 덮쳤을 것이다. 살 확률이 절반이지만 죽을 확률도 절반인 수술을 끝내더라도 산 사람들에겐 죽어가는 그녀만이 남는다. 지난날 마티유와의 추억과 함께 늙어가는 미래를 이야기했던 과거는 잊힐 것이다. 꺼져가는 숨을 간신히 붙잡으며 삶을 연명할 것이 분명한 엘렌은 자신이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음을 깨닫는다. 



엘렌과 마티유가 서로 깊이 사랑하는 만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 쌓여갈 즈음, 엘렌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미스터’의 블로그를 발견한다.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를 연민하지 않는 미스터의 태도는 자신의 병과 죽음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엘렌에게 ‘선택’이란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에 매료된 엘렌은 노르웨이로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미스터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풍광은 고요하고 장엄하여 엘렌에게 위안을 준다. 엘렌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조금만 걸어도 여전히 헐떡이지만 도시에 있을 때보다 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그저 품고 있던, 밖으로 내놓을 수 없었던 선택을 결정하게 된다. 


 아마도 엘렌은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해서 그려왔을 것이다. 점차 숨쉬기 어려워지며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엘렌의 몸은 꼭 오랜 자맥질로 인해 힘겹게 숨을 뱉는 어느 상상 속의 움직임과 같이 보인다. 낮과 밤이 뒤바뀌며 수면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는 영상 속 시선은 엘렌의 상태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파도에 출렁이던 그녀는 노르웨이에서 직접 강물에 뛰어들며 상상을 멈춘다. 엘렌이 물살을 헤치고 나와 거칠게 내쉬는 숨은 죽음의 증상이자 삶의 증표가 된다. 



 자연 속에서 온전한 자신을 찾으며 산 사람이 아닌 죽는 사람을 위한 선택을 내린 엘렌은 자신의 선택을 마티유에게 전한다. 죽음을 앞둔 그녀는 더 이상 함께 미래를 그리지 못하는 연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 음악의 가사는 그녀의 생각을 대신 전하는 것 같다. 


You will live and I will die out of here

 그대는 계속 살고, 나는 여기서 생을 마칠 거예요

 While I go out with the dying of the sun 

 내가 스러지는 태양과 함께 떠나면

 Please you carry on, my love

 그대는 부디 계속 살아가요, 내사랑

 And please have fun

 즐겁게 살아요

 Growing old, growing old,

 나이 들면서

 Happy and bold

 행복하고 용감하게


엘렌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선택한 것이다. 죽음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품위를 지키며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 엘렌은 타인을 위한 죽음이 아닌 자신을 위한 죽음을 맞이한다. 


삶의 끝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는 인사를 함께 호흡하며 느낄 수 있었다. 




※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 문지애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3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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