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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애 May 04. 2023

0-100세+를 위한 그림책– 라키비움J 다홍

“그림책을 읽기에 너무 나이가 들거나, 너무 어린 나이란 없어요.”

어린아이가 읽는 그림책은 마치 빈 캔버스에 연필을 가져다 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순수하고 여린 이들에게 세상의 복잡함을 명료하지만 둥글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말랑말랑한 이들에게 단단한 세상의 무르고 연한 틈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그림책이지 않을까. 책은 우리에게 이성을 키울 수 있는 차가움을 지녔다고 하지만, 그림책은 따듯한 감성을 품고 있다. 


그래서인지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그림책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마냥 즐겁게 봤던 그림책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 놀라웠다. 어릴 적 기억을 다시 꺼내 보면, 그때는 내용보다도 책에 삽입된 그림에 빠져 질릴 때까지 다시 읽었던 것 같다. 그것도 어린아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강렬한 색이나 격렬한 구도, 특수효과를 쓴 것처럼 반짝이고 화려해서 만지고 싶어지는 재질의 그림책을 좋아했다. 



그림책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데, 라키비움J에서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물성에 대한 기사를 다루어 흥미로웠다. 조각도 아닌 평면에서 찾는 물성이 무엇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벌써 6번째 쓰는 기사라니! 이번 호(7호)에서는 에디터님께서 언젠가 써야겠다고 벼르던 주제를 다루었다고 해서 더욱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이번 그림책 물성의 주제는 ‘구멍이 난 책’이다. 다이컷Die-Cut 기법으로 만든 책의 구멍은 내용에 따라 사용 방식이 다르다. 피터 뉴웰은 『The Hole Book』에서 일직선상으로 구멍을 뚫고, 구멍이 생기게 된 사건∙사고를 다루었다. 무려 115년 전 그림책에 구멍을 뚫은 기발함은 이후 작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이 색 다 바나나』(제이슨 풀포드 글, 타마라 숍신 그림/봄볕)의 구멍이 가장 인상 깊었다. 



책의 마지막 장에 낸 구멍 하나로 바나나에 한 가지 색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림책과 순식간에 가까워진 독자는 기존의 “바나나는 당연히 노란색이지.”라는 관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책의 구멍에는 바나나뿐만 아니라 손을 집어넣어 살펴볼 수도 있는데, 이는 바이런 킴의 모노크롬 회화와도 유사해 보인다. 고정된 틀을 깨는데 이토록 단순하고도 명료한 그림책이 있다니. 재미난 물성의 그림책에 더욱 빠져든 것 같다. 



독자 기반의 그림책 잡지인 라키비움J은 그림책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해 주었다. 처음에는 ‘선물로 책을 주는 것도 어색한데 그림책을 읽어 보라니’하는 생각에 꺼려졌지만, 잡지를 읽고 난 후에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린 시절에만 보던 그림책이 아직까지 책장 한쪽에 자리한 이유를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다. 


잡지에서 재미있게 다루는 그림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잔뜩 어질러진 책장 속에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그림책을 몇 권 찾아냈다. 나이가 들면서 몇 번이나 헤어질 뻔한 순간이 있었지만, 꿋꿋하게 책장 한 편을 차지하던 그림책이었다. 책장에 넣어두고 간혹 생각날 때 한 번씩 들여다보는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은 비단 어린 시절의 추억만이 아니다. 때론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얇은 그림책이 지금의 나를 일깨우기도 위로하기도 한다. 


“그림책을 읽기에 너무 나이가 들거나, 너무 어린 나이란 없어요.(You are never too old or too young to read a good picture book.)”는 그림책 저자 코리 R. 테이버의 말처럼 멘탈을 달래줄 수 있는 그림책을 소중히 간직해야겠다. 




※ 본 리뷰는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 문지애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4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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