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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부부 Aug 11. 2022

조금 덜 싸우는 부부의 대화

부부는 왜 싸우는가? 

나와 길상이도 참 많이도 싸우지만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한 커플도 많다. 더한 커플이라 함은 바로 우리 오빠를 말하는데 대체 그 커플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애당초 다른 커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부부의 속사정은 둘말고는 알 수가 없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모든 것을 털어놓기란 고해성사보다 더 힘든 일이다. 


오빠와 새언니(결혼한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새'언니)의 주된 싸움의 원인은 '밥'과 관련된 것이다. 시누이인 나는 오빠의 하소연을 많이 듣지만 최대한 제3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그럼에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새언니는 쌍둥이를 돌본다. 아이 두 명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나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딩크족이라 그런지 쌍둥이를 그저 멀리서 바라보거나 볼을 꼬집고 엉덩이를 팡팡 두드리는 정도만 즐긴다. 오랜 시간 그 둘을 돌봐본 적도 없다. 시도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다. 새언니는 모성애와 책임감으로 그 일을 해낸다. 


오빠는 워커홀릭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은 딴 세상 이야기다. 아마 오빠에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준다면 가게를 지키며 쉬는 편을 택할 것이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노는 법. 평생 일만 열심히 하는 오빠는 일이 없으면 무료해 정신을 못 차린다. 무료함 자체를 사랑하는 우리 커플은 절대 이해 못 할 성격인 것이다. 


에너지가 넘치는 오빠와 애 둘에게 기가 빨린 새언니는 현재 앙숙이다. 먼저 고운 말이 나가지 않는다. 밖에서 일한 오빠는 집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불만이다. '밥'은 대접의 종류다. 고생했다는 말이나 밥을 챙겨줌으로써 인정받고자 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다. 나를 칭찬해 달라'의 표시이다. 

안에서 열심히 기가 빨린 언니는 '밥'은 중요하지 않다. 오늘 집에서 꼼짝없이 감금당한 채 일한 나를 위해 분리수거와 설거지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둘의 공급과 수요는 전혀 맞지 않아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불평불만이 오간다. 신혼초의 기싸움도 아닌 이 공격은 멈출 수가 없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둘이서 하는 비난과 방어, 변명, 책임회피의 대화에 대해 본인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 사실 이것이 첫 번째 문제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얼마나 공격적으로 하는지 모른다는 것. 만약 이것만 알아도 싸움의 절반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알고도 수정되지 않는 화법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의도적인 것에 가깝다. 


나 역시 그렇지만 알면서도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싶어 더 못되게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당한 고통보다 넌 더 고통스러워야 한다!!라는 심리가 깔려있다고나 할까? 어린아이들이 한 대 맞으면 똑같이 한대를 되돌려주되 더 센 한대여야 한다. 그 릴레이 한대는 점점 강해져 울고불고 뜯어말려야 되는 상황까지 가야 끝이 날 수 있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도 '더 센 한방'을 돌려주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으니 몸은 컸으나 마음은 자라지 않았다고 봐야 할까? 아니면 인간은 원래 어리나 늙으나 그런 마음 심보를 가졌다고 봐야 할까?


길상이와 얘기를 해 봤다. 우리는 가족회의 시간이 있다. 길상이와 나 그리고 고양이 세리가 참석한다. 세리의 발언권은 있지만 거의 무시된다. 하지만 자리는 지켜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참의 대화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대화법'의 문제보다 더 큰 것은 대화의 부재다. 평생을 같이 사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대화하는 가의 문제가 많다. 가끔 하는 대화로는 서로를 만족시킬 수 없다. 봐야 하는 스포츠뉴스, 인스타그램, 넷플릭스에 밀려 당장 먹을 메뉴 말고는 하는 말이 거의 없다면 말이다. 대화를 즐기지 않는다는 둥,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둥의 변명이나 핑계는 넣어둬야 한다. 즐겁지 않은 대화, 통하지 않는 대화도 꾸역꾸역 이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통하는 날도 즐거운 날도 생길 것이다. 그려려면 들어야 한다. 내 말보다 상대방의 말이 먼저 들려야 한다. 사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그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이해하고 듣는 것 말이다. 


내 남편 길상이는 말이 없는 편이다. 그래서 말은 주로 내가 하지만 남편에게도 얘기를 해 보라 조르는 날이 있다. 남편의 생각이나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궁금하다고 재차 말을 하면 억지로라도 이야기보따리를 푸는데, 결과는 더럽게 재미가 없다. '왜 나처럼 말을 맛깔나게 못 하는가?'라며 어쩔 수 없이(?) 핀잔을 주게 된다. 그럼 그렇게 재미없어하는 내 반응이 웃기다고 서로 웃고 만다. 길상이가 보살인 것인지 내가 웃음이 많은 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그렇게 대화가 이어진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 사람이 뭘 원하는지. 칭찬과 위로에 약한 사람인지. 작은 선물이면 쉽게 마음을 여는지. 두 개 다가 충족되어야 하는지. 말보다 한번 안아주는 것에 더 큰 힘을 얻는 사람인지. 이것은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이다. 이 테스트는 꽤 정확하게 나를 말해준다. 적어도 내 주변의 테스트 결과로 보자면 굉장한 적중률과 만족도를 자랑한다. 

사랑의 언어 테스트 Love Language Test (love-lang-test.netlify.app)


길상이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이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같다. 그러니 우리 둘을 함께 같은 취미이든 뭐든 같이 붙어있으면 사랑이 충족된다. 실제로 난 길상이가 옆에 없으면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이 인간이 날 두고 대체 어디 갔는지' 속에서 부글부글거린다. 난 내가 또라이인 줄 알았는데 사랑의 언어가 함께 하는 시간이라고 하니 그제야 이해가 된다. 난 길상이와 함께 해야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다고 완전히 느끼는 사람이다. 다행히 길상이 역시 그러하니 우리는 둘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계속 들으며 살아야 행복한 운명인 것이다. 


많은 커플들이 조금 덜 싸우길 바라며 우리 자랑을 늘어놓아 봤다. 

속았다는 기분이 들지 않길 바라며 사랑의 언어 테스트를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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