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옷부부 Dec 09. 2023

정수기 물 받는 날

 사랑과 교환

일주일에 하나씩 큰 물통 하나를 마신다. 겨울이 되니 따듯한 차와 커피, 유자차, 율무차, 코코아까지. 마시고 싶은 것들이 많다. 조금 기분이 쳐지는 날은 달달한 것을 주로 마시고 허기가 진 날은 율무차 같이 든든한 차를 고른다. 정수기 앞에 서면 일렬로 선 차를 두고 고민을 한다. 18.9리터의 물은 모두의 고민과 함께 일주일동안 소비된다. 물 한통 값은 5500원인데 우리 마시는 그 물은 뭔가 다르다.


약 보름이면 남편은 물아저씨에게 전화를 한다.

"물 가져다 주세요."

아저씨는  한번에 2통정도의 물을 가져온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른체구,  잘 잡힌 잔 근육은 남다른 다부짐이 느껴진다. 손수레를 끌고 와서는 양손에 18.9리터를 하나씩 들고 내린다.


아저씨의 고민은 이제 부터 시작이다.

"꽃으로 주세요."

그는 빠르게 눈을 굴리며 아내에게 줄 예쁜 꽃을 찾기 시작한다. 지난번에 가져갔던 꽃은 절대 가져가지 않는다. 바쁜 일상을 보답하고싶은 그의 마음을 빠른 눈동자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번에는 핑크장미였으니까..."


고민끝에 고른 한다발 꽃을 내민다. 나는 그 꽃이 얼마던 간에 한단을 더 섞어서 드린다. 그 꽃에 담긴 사랑과, 미안함. 우리가 마시는 물에 담긴 따듯함에 대한 값을 조금더 후하게 칠 수 밖에 없다. 사실 그의 낭만을 보고 내가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매일 꽃을 보며 사는 나는 집에 꽃 한단을 가져가지 않는다. 나의 낭만은 점점 돈에 물들어 가는 중이다. 물을 파는 남자의 낭만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그 낭만에 나와 길상이는 기분이 좋다.


가끔은 그렇게, 꽃으로 낭만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작은 인형, 별 말 없는 편지 한 장, 뜨끈한 오뎅 국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 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금 덜 싸우는 부부의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