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대학 1학년, 동아리에서 함께 보았던 라쇼몽을 기억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는 1951년 1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과 이탈리아 영화평론가상을 받았다. 흑백으로 이어지는 영상은 딱 보자마자 지루할 것 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성인이 막 되었을 무렵이니 어리광은 넣어두고 심오한 표정을 지으며 라쇼몽을 봤다.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린 모두 혼란에 빠졌다. 진실. 진실은 무엇인가.
등장인물들은 한 사건을 모두 제각각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르게 기억할 뿐이었다. 우린 그때 이런 공부를 했었다.
'진실은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다르다. 진실은 물과 같아서 본질은 그대로지만 그릇의 형태에 따라 세모가 되기도 네모가 되기도 한다.'
가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나는 라쇼몽을 떠올린다. MBTI가 제각각 이듯이 개인의 그릇에 따라 생각도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그릇이란 참 중요하다.
얼마전 까페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요즘의 상점들은 맛도 모양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인테리어였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따사로운 공기가 가득한 감성카페였다. 순간 그 무드를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캬악 퉤!”
맞은편 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가래가 슬로우 모션처럼 종이컵 안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잘 차려입은 옷과 말쑥한 외모와는 다르게 그의 불쾌한 행동은 거슬릴 수 밖에 없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그릇일까 담겨져 있는 무엇일까. 순간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었다. 마음이 넓고 배포가 큰, 그런 큰 그릇, 옹졸한 종지그릇. 그 크기를 따져 묻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무엇이 담겨있는지는 왜 묻지 않은 것일까?
아무리 큰 그릇이라도 구정물로 채워 진 것 보다 작은 종지에 맑은 물이 가득한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릇의 크기게 집착하기 보다는 사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 그릇인가. 꽃이라면 좋겠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