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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무 Jun 08. 2022

외국 살면 언어는 어떻게 해?

원하는 삶은 안전지대 밖에 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맞아 아내와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주차를 하고 식당 쪽으로 걸어가면서 우리는 또 아옹다옹했다.


“자기가 말해"

“아니야, 이번엔 자기가 말해"

“그건 아니지, 자기가 해~”

“알았어 그럼 가위바위보로 정하자”


누가 식당에서 종업원과 대화를 할 건지에 대한 것이었다. 독일에 살 때 생긴 이상한 버릇이다.


독일에서 외식을 하러 가면 우리는 짧은 독일어 때문에 자리를 안내받고 주문을 마칠 때까지 늘 긴장해야 했다. 식당 종업원과 나누는 대화 내용은 거기서 거기라 금세 몇 가지 패턴에 익숙해졌지만, 우리 어휘력을 벗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다 보니 종업원과의 대화는 외식 전에 넘어야 하는 하나의 도전 과제처럼 인식되었다. 이런 독일어 울렁증으로 인해 우리는 항상 식당에 들어서기 전부터 누가 주문을 할지부터 정하곤 했다. 나는 아내가 독일어를 더 잘한다는 이유로, 아내는 내가 사나이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미뤘다. 보통은 번갈아가면서 했지만, 정말 싫은 날에는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결정짓기도 했다.


이 버릇은 미국에 와서도 이어졌다.


우리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식당에 들어섰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슬쩍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아내 뒤에 숨었다. 웃음을 꾹 참았다. 그렇게 입구에서 종업원의 안내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아내에게 뭐라고 말을 걸었다. 아내는 적잖이 당황했는지,


“오우, 아임 고잉 투 엄.. 예아"


라며 뒷말을 흐리고 손짓으로 카운터를 가리켰다. 아저씨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유아 고잉 투 왓?”


이라며 정확한 의사표현을 요구했다.


다행히 아내는 뒷말을 잘 마무리 지었고, 카운터에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후다닥 식당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화끈거려하면서 너무 당황해서 영어가 튀어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식당 종업원과의 대화만 생각하느라 손님이 말을 거는 건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아내는 굳은 다짐을 한 표정으로 “앞으로 모든 대화는 내가 다 할게. 자기는 절대 말하지 마"라고 했다. 내게 심술이 나서 비꼬는 건지 진심인지 몰라서 “응? 갑자기? 왜?"라고 물었다. 아내는 “연습을 너무 안 했더니 영어가 안 나오네. 자기는 회사에서도 동료들이랑 말 많이 할 테니까 이런 건 앞으로 내가 할게"라고 했다. 그리고 대기 시간 동안 공터에서 운전연습을 하자고 했다. 아내는 평소와 다르게 운전연습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 앞으로 엄청 자주 연습해야겠다. 완전히 다 까먹었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와 다른 아내의 모습이 기특했다. 스스로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았다.


영어로 “comfort zone을 넓힌다”는 표현이 있다. 우리말로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다”와 비슷한 맥락이다. 어떤 분야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편안한 영역을 벗어나 도전의 영역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내게 익숙한 영역이 넓어지고, 그 결과로 내가 아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진다. 일도 그렇고, 언어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모든 게 다 그렇다. 성장하고 싶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보고 듣고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이직을 하는 것도 이민을 떠나는 것도 나를 불편한 영역으로 몰아넣는 일이었다.


본인의 의지만으로 컴포트 존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훈련이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점은 첫발을 디디는 것이 어렵지, 막상 한 발 내딛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컴포트 존이 넓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달라도 살다 보면 어느덧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그만큼 우리가 성장했다는 뜻이다.


아무튼 아내가 모든 대화를 맡아서 한다고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영어는 우리가 함께 넓혀나가야 할 공동의 도전 영역이다. 나도 아내에게 맡겨만 놓고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상점 카운터에서 미국인들과 농담 따먹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



* 컴포트 존을 넓혀야 하는 이유와 넓히는 방법에 대한 좋은 포스트

How to Leave Your Comfort Zone and Enter Your ‘Growth Zone’

https://positivepsychology.com/comfort-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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