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ivian Aug 02. 2022

2월의 봄을 핀란드에서 만나다.

초코파이 '정'을 핀란드에서

곱디고운 백사장 모래를 밟으니 폭신한 감촉이 더할나위 없이 기분좋게 느껴졌다. 저 멀리서 에메랄드 빛에 붉은 태양까지 더해진 복숭아빛 파도가 나에게 나가온다. 한껏 달궈진 내 몸에 시원한 파도를 얹을 생각에 벌써부터 신이 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 머물러 있다. 


점점 다가오는 파도 3, 2, 1. 

악! 나를 덮친 파도는 너무 차가워 금새 내 몸은 얼어붙으며 세상은 암흑으로 변했다. 갑자기 내 몸은 추위로 사시나무 떨듯 파르르 떨려왔고 무의식중에 그대로 꿈이라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 깨달았다. 


' 아 ! 꿈이 아니구나. 정말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추워.'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다 못해 통증으로까지 느껴지며 온몸을 찔러댔다. 


그렇게 나는 하루만에 따뜻한 캐리비안에서 어둡고 추운 2월의 핀란드로 왔다. 2015년 2월, 캐리비안의 뜨꺼운 태양의 힘을 얻어 더할나위없이 선명한 색감을 자랑하는 나무와 풀, 꽃을 보며 호사를 누리던 내 눈앞에 어느새  태양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마음까지 무겁게 바닥까지  어둠으로 가득한 핀란드를 오고가는 극과극을 치닫는 한달이었다. 


2010년, 방글라데시와 인도에서 기온이 뚝 떨어져서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대체 얼마나 추웠길래 사망에 이르렀을까 싶은데, 당시는 우리나라의 가을날씨 정도였다고 한다. 즉 열대지방에는 이 정도 기온도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내 몸은 이미 열대지방에서 2년 6개월의 시간동안 최적화된 시스템이 적용되었는데, 갑자기 한국의 봄이나 가을도 아닌 북유럽의 겨울에 맞추려니 내가 느끼는 추위는 두배, 세배에 달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이었다. 당시에 충격이 컸던 탓인지 꿈에서조차 추위에 시달리고 있었다. 최대한 온기를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는 본능적으로 몸을 최대한 웅크린 자세로 추위를 피하려 용을 써보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핀란드에 도착하자마자 머무르게 된 임시숙소. 대부분의 유럽의 도심이 그러하듯 최소 100년은 넘은 오래된 주택이 주를 이룬다. 내가 지내는 이곳은 마치 꼭대기에 공주가 마법에 걸려 잠들어있는 성처럼 계단이 원을 그리며 올라가는 곳이었다. 책이나 만화에서처럼 로맨틱하면 좋아겠지만 현실에서는 짐 옮기는데는 최악의 구조였다. 이민가방 3개, 캐리어 6개, 유모차 2개, 카시트 2개 우리 4가족과 함께 머물게 된 짐의 양이다. 방 두칸짜리에 작은 거실 겸 주방을 겸비한 20평 남짓한 곳에 짐을 들여놓으니 우리가 지낼 공간이 없어 보인다. 첫날은 너무 피곤한 탓에 대충 씻을 것과 갈아입을 옷 정도만 꺼내고는 그냥 곯아떨어져 자느라 집에 대해 세세히 파악을 기운도 마음도 정신도 없었다. 


당시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오래된 유럽 주택의 계단

다음날 하나씩 정리하려고 보니 집만큼 커다란 양의 가방을 꺼낼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내 성격이 차근차근 무엇가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것과는 멀다. 후다닥 빨리빨리 해치워야 속이 시원해질텐데... 속에서는 천불이 나고 몸은 얼어붙을 정도의 추위에 뼈까지 시큰시큰하다.  하.. 본격적으로 이곳에서 생활을 하려고 보니 정말 이 집 너무하다. 


신랑 직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얻은 것 같은데 이곳을 얻은 얼굴도 모르는 직원마저 원망스러워진다. 이 집은 얼음으로 지어놓고 드라이아이스로 환기를 하는 걸까? 추운데 건조하기까지 하다. 하하하, 정말 미쳐버리겠다.  수건이라도 빨아서 걸어두면 김가루 으스러지듯 바짝 말라버려 그걸로 얼굴이라도 닦는 날에는 스크레치가 생기는 기분이다. 당시에 내 얼굴은 너무 건조해서 인중과 입가에 칼로 그은거 같은 주름이 갑자기 깊숙이 생겨버렸고, 나는 당장 화장품샵으로 가서 슈퍼 슈퍼 슈퍼 리치한 크림을 달라며  sos 를 외쳤다. 습기가 많고 따뜻한 트리니나드 토바고에 비해서 핀란드가 이렇게 건조할 줄을 꿈에도 몰랐다. 사실 이동할 나라가 건조한지 습한지 그걸 따질 겨를이 없다. 제일 먼저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으며 하는 일이 과연 이 나라가 살만 하느냐 어렵겠느냐 하는 걸 본능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아 정말이지 수많은 변수가 함께 하는게 이 생활이라지만 전에 없던 팔자주름에 칼로 그은것마냥 깊게 패인 내 얼굴을 보니 앞으로 이곳 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함께 엄습해온다. 


한국에는 집마다 바닥에 따끈한 보일러가 돌아가며 공기를 전체적으로 훈훈하게 만들고 내딛는 발바닥 또한 밖에서 추위에 고생하고 왔다 위로하듯 기분 좋게 달궈주는데 이 추운 나라의 집에 있는 난방이라고는 창문 아래 설치된 작은 라디에이터 2대가 전부였다. 30년 동안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구조였다. 


'아니 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추위에 꿈쩍도 않는 대단한 DNA라도 타고난 거야?

아니면 추위를 못 느끼는거야?!'


나중에 생각해보니 둘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게다가 내 옆에는 19개월 딸과 태어난 지 얼마 안된 2달된 신생아를 갓 벗어난 아들이 있었다. 나 하나 챙기기도 벅찬 상황에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곳은 나랑 신랑 뿐이었으나, 신랑은 핀란드 도착 다음날 부터 회사에 출근하기 바빴고 그가 일을 하는 사이 아이들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하... 대체 멀 먼저 해야하는걸까? 우선 가장 급한일은 아이들 옷 구입이었다. 당장 갖고 있는 옷은 한국에서 보내준 얇은 패딩과 길거나 짧은 긴팔이 전부였다. 그런데 여기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이곳에서의 겨울옷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겨울옷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현지 SNS를 통해 알게 되면서 내 고민은 가중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의 옷은 패션보다는 말 그대로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에 중점을 두기에, 소비자들은 심미성보다는 기능성이나 지속가능한 소재를 보고 택한다. 내가 느낀 아이들의 옷차림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모자 : 나이를 막론하고 거리에 나가면 누구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은 동그란 구멍에 눈, 코, 입만 빼꼼히 내밀고 머리부터 목까지 입는 모자부터 쓰는 타입까지 다양한 형태의 모자를 볼수 있다.  

겉옷 : 우리나라 스키장에서 볼수 있는 스키복 형태의 옷을 입고 있다. 기능성으로 눈이나 비로부터 안전한 방수기능은 기본이다. 또한 신발과 연결할 수 있도록 바지단 끝에 고무로 된 줄이 달려있어 착용의 마지막엔 항상 줄을 신발밑창에 연결하여 바지 사이로 눈이 들어가거가 유모차를 타는 동안 바지가 위로 올라가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해준다.   

장갑 : 이 또한 우리가 아는 포근한 양모장갑이 아니라, 혹시 모를 동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특수소재로 된 장갑이다.   

특수신발 : 눈이 많이 오고 쌓이는 이곳은 발목 위로 올라오는 등산화 비슷한 신발을 신는다. 대부분 고어텍스로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눈길에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바닥에는 홈이 파여있다. 대부분의 아이들 바지에는 신발과 바지를 연결할 수 있도록 고무 끈이 달려있다.   

내복 : 오버롤이라 불리우는 스키복 형태의 겉옷을 벗으면 겹겹이 얇은 옷을 입어 추위를 막는다.   


북유럽 아이들이 입는 겨울옷 @visitRovaniemi


이건 그냥 겨울옷이 아니었다. 대체 당장 어떤걸 사야할지 머가 제일 필요한지 지금 당장 사지 않아도 되는 건 무엇인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순간 내게 떠오른건 SNS, 특히 한국과는 다르게 해외에서 커뮤니티의 장으로 인기였던 페이스북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결혼전에 연구원으로 지내며 내가 잘한다고 자부하던 게 구글링, 즉 검색이었는데 그 능력을 여기에 발휘하게 될 줄은 몰랐다. 회원간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쓸모있어 보이는 커뮤니티 2-3개를 찾아내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캐리비안에서 살다 며칠전에 왔는데 옷을 사려면 어디로 가야하며, 어떤 옷을 사야하는지 모르겠다. 19개월 딸과, 2개월 아들이 있다고 남기고는 짐 정리를 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온라인 상에서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와 구입 정보에 대한 답글을 남겨주었고. 그 중에 여러명은 괜찮다면 자기의 아이들도 비슷한 또래인데 깨끗하게 입던 겨울옷들이 있다며 나누고 싶다는 글도 눈에 띄었다.  애완동물도 없고, 담배도 안 피우며, 세탁도 해둔 옷들이라며 세세하게 본인들의 생활도 거리낌없이 공유하면서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그들의 마음이 더없이 세심하게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그들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이곳을 탈출할 상황도 방법도 없는지라 그들에게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다고 하자 그들은 기꺼이 신랑 회사로 찾아와 주고 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엥? 머지? 돈을 주고 사는 것도 아닌데 옷을 전해주기 위해서 시내에 있는 우리 신랑 회사까지 찾아오겠다고?? 그것도 두명씩이나? 흔히 아는 핀란드 사람들은 차갑고 다른 사람일에 관여하지 않고, 개인주의를 중시하지 않았던가?? !


나중에 신랑에게 들은 바로는, 그들이 찾아온 날도 어김없이 폭설이 내렸고, 우리 아이들 또래로 보이는 아이 둘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신랑에게 왔다고 한다. 아 가능하구나. 폭설이 내리는 날, 승용차를 운전하기도 힘든데 대중교통을 타고 중간 중간 직접 유모차를 밀고 끌며 일면식도 없는 우리 아이들에게 옷을 전해주러 직접 와주는 게 가능한 일이었구나. 정말 살면서 손에 꼽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순간이었다. 너무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면서 제일 먼저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솟구쳐 올라왔다.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알던 것들이 거짓이 되는 순간이었다. 살면서 타인의 경험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얻지만 사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내가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이고, 내 경험 또한 수많은 변수를 통해 또 다시 수십번 상황이 뒤집히는 것인데, 무지와 편견이 불러온 부끄러움은 아직도 마음 깊은곳 짙은 자국으로 남겨져 있다. 


아! 꺼져가는 불씨에 갑자기 따뜻한 바람이 훅 ~ 들어와 순식간에 불씨를 살려내고 얼려있던 온몸 구석구석을 사르르 녹이고는 데워주었다. 그 순간 정말 몸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그보다 뜨거운 눈물이 이미 두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2개월도 안 된 아이도 벅찬데 19개월까지 아이까지 옵션으로 붙은 상황, 이 둘을 데리고 비행기를 탄다는 건 극한의 공포였다. 열대지방과 북극, 말 그대로 극과 극을 달리는 국가의 이동, 국제이사까지 해야했으나 무의식 중에 버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끊임없이 나를 숨막히게 조여오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의 보호자, 부모로서의 책임감은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에너지를 우주 어딘가에서 끌어오는 듯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는 그 험난한 여정을 치뤄내지 못했을테지..  그렇게 한계치를 넘어선 여정을 마치고 내 몸은 평범하기 그지 없는 보통의 에너지를 가진 상태로 돌아오며, 쌓였던 피로와 긴장감이 폭팔했다. 흔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버티다가 그 일이 성사되거나 끝나고 나서 바로 몸이 병드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당시 나는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의지로 버티고는 있었지만 솔직한 심정은 무겁고 겁나고 그저 힘들기만한 상황에  나에게는 항시 내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었기에 무너질 겨를조차 없었다. 이런 나에게 얼굴조차 모르는 그들이 내민 따뜻한 손길은 그 내딤만으로도 감동스럽다 못해 사랑에 빠진 것마냥 나를 설레이게 만들었다. 당장 짐정리는 커녕 임시숙소에서의 생활을 어찌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해결책도 아무것도 정해진게 없는 절망의 상황이었지만 만나본 적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들이 보낸 쪽지를 읽어내려가며 갑자기 가슴 한켠 몽글몽글 이곳 생활에 대한 무지막지한 기대와 꽤 흥미로운 곳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내 심장은 다시 콩콩 뛰기 시작했다. 


2월의 봄을 그렇게 핀란드에서 만났다. 

작가의 이전글 왜 한국에는 우는 아이가 많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