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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ian Jul 18. 2022

브런치 작가 선정이 독이 될 줄이야...

못 먹어도 go! 정신으로 살기로 했다. 

만난지 3개월만에 결혼한 남자를 따라, 결혼한지 3개월 후, 가족도 친구도 연구원이라는 직함도 내버리고 생전 처음 들어본 나라 트라니다드 토바고라는 나라에서 살게 되었다. 태양이 타오르는 열대 지방에서 탈출을 꿈꾸다 2년 6개월 후 극과 극의 체험을 하기라도 하듯 북유럽의 핀란드로 옮기게 된다. 그러다 그곳의 서늘함과 추위조차 나름 훈훈하게 느껴질 3년차에 또 다시 더운 나라 필리핀 세부로 이사를 왔다.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로, 경남남도 세부시라 불리곤 하는 이곳에서 유유자적 넘실거리는 파도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들이킬 꿈에 부풀어 있을 무렵 코로나가 터졌고, 2년간 집에서 아이들을 케어하게 될 줄을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10년간 3개국에서 살며, 25개국을 여행하며 겪은 온갖 우여곡절과 외로움, 또 외로움, 아이를 낳고 생전 처음 나가본 맘커뮤니티에는 나만 한국인,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영어권 국가 출신,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군분투 끝에 영어로 강의까지 하게 되는 드라마틱한 결실을 맺게 되고, 결국 가족인가 싶다가도 별거 아닌 일로 치고박고 싸우다 또 다시 가족으로 뭉치는 과정을 통해 이제는 진짜 뼛속까지 가족으로 느껴지는 찐가족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떠나기 전, 친구들과 Farewell party

수십번 수백번을 마음속으로 책을 몇권이고 집필하고 이미 혼자서는 베스트셀러를 몇권이고 찍어냈는데, 막상 실행으로 옮기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그냥 정 안 되면 나 혼자라도 읽으면 될 일이라 여기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몇년동안 시작도 못했던 글쓰기가 너무나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2주만에 완성된 몇 편으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까지 하게 이르렀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지론 중 하나가 또 발동한다.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지금 당장 판단하지 말아라.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 수 있다. " 


브런치 작가 신청 합격 이메일을 받고는 주식으로 수백억 벼락부자가 된 것마냥 들떠서 당장이라도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할 거라는 기대와 기쁨으로 며칠을 공중부양하는 마음으로 지냈지만, 현실로 돌아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두려웠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평가된다는 사실은 나를 멈추게 만들었다. 그냥 부담없이 하루에 한편씩이라도 에피소드가 생각날 때마다 글쓰기를 즐기자는 취지하에 시작했는데 막상 인증된 싸이트에 그 글이 올려진다고 생각하니 즐기기는 커녕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등록되어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보니 그들의 수려하고 화려한 글재주와 감성에 압도되어 점점 작아지다 못해 어디론가 숨어버릴 궁리만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 하 ! 이렇게 수준있는 문체와 감성이 가득하다 못해 가끔씩은 폭팔할 지경에 이르는 글도 넘치는 이곳에서 과연 내가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 


그렇게 숨어지낸지 정확히 22일째, 더 이상 숨을 곳도 견딜 힘도 없어 다시 글쓰기를 시작했다. 


예전에 몇 번 끄적여 놓은 글을 보곤 신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기야, 일기는 일기장에 쓰자."


농담이라고 하기에 이 짧은 대답은 너무나 많은 의미를 담고 나에게 돌아와 비수를 꽂아버렸고 도피생활은 몇년을 지속되었다. 어느날 신랑이 책을 추천하기에 몇 문장을 읽다가 한 페이지를 결국 넘기지 못하고 바로 돌려줬다. 


" 왜? 재미없어? "


"응. 완전 흥미 0이야. 대체 이런 어려운 책을 왜 읽는거야? 난 그냥 쉬운 책이 좋아. 별 생각없이 술술 읽어지는 그런 글말야. 일상 이야기도 좋고 여행 이야기도 좋고, 어렵지 않은데 그 안에 느낌이 있고 감동이 있는 그런 글이 딱 내 스타일이야."


"헐, 그런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구나."


"응. 바로 내가 좋아해. 상관없어. 나만 즐거우면 된거야. 마음 편하자고 즐겁자고 행복하자고 나는 책을 읽는거지 책을 공부하는 것처럼 읽고 나서도 어렵고 나 똑똑하다고 체하는 듯한 글은 못 읽겠어." 


순간 깜깜하던 머릿속 전구에 불이 들어왔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는데, 그들이 생각이 얼마나 다양하고 원하는 바 또한 수천 수만가지인데, 그들 중에 설마 나랑 같은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없을까'? 그래. 어떤이는 수준높은 글을 좋아하고, 어떤이는 슬픈글을, 어떤이는 재미있는 글을, 또 어떤이는 내가 해외에서 겪은 일들에 대해 궁금해하고 재미있어 할 수도 있을거야. '


지난 수년간 나라를 옮겨 다니며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간의 스토리를 무슨 본인인증이라도 하듯 떠들어대다 보면 5시간은 거뜬히 넘기곤 했다. 만나는 이들마다 너무 재밌다며 눈을 반짝거리며 계속 풀어내기를 원했는데, 결국 하루치에 풀 수 있는 양의 에피소드를 다 쏟아내고 집에 오는 날에는 곧바로 침대나 소파에 누워 방전된 밧데리 충전하듯이 아무것도 못하고 몇 시간을 누워서 지내야했다. 


'아! 머 어때?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데 멀! 이 글이 그냥 나인걸? 


'나는 그들과는 다른데 어떻게 그들과 글이 같을 수가 있겠어?' 


' 글에서만큼은 남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글 쓰는 과정만큼은 훨훨 날아가듯 가볍게 겉치레를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즐기면 돼. 그 자체로 행복해지자.' 


그래! 책을 내지 않아도 되고 구독자가 나 한명이어도 괜찮아. 그냥 글쓰기 자체를 즐기다보면 행복해지고 하루하루 그날들이 쌓이면 그 자체가 행복한 삶이 되겠구나. 


자~ 오늘부터 못 먹어도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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