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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목 같은 기억들

검정 비닐봉다리

by 따뜻

겨울이 다가오는 어스름한 저녁,

무뚝뚝한 아빠 손에 들려있는 검정 비닐 봉다리가

유난히 반가웠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검정 봉다리 안에는 어떤 날은 군고구마,

어떤 날은 통닭 한마리, 그리고 붕어빵이 담겨 있었다.

아직도 온기가 가득한 봉지 안의 그것들이

우리 가족을 둘러앉아 모이게 만들었다.

그 날 만큼은 우리도 화목한 가정처럼 느껴졌다.

작지만 따뜻했던 아랫목 같았던 기억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겐 이 아랫목 같은 기억들이

새겨져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부분 필요한 것들이 집 앞 코앞까지 배달 되는 요즘, 아빠의 퇴근길 검정 봉다리가 궁금할 일은 없어져 버렸다. 궁금은 커녕 아빠가 퇴근해 집에 들어와도 게임 삼매경에 빠져서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

가끔 아빠 퇴근길, 편의점 아이스크림을 주문해서 기다릴 때 빼고는 아이들의 기다림은 인색할 뿐이다.

아이스크림이 녹는 것처럼

금세 사라져 버린 따뜻한 기다림.




아빠의 검정 비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 하던 나의 어린 시절처럼

매일밤 궁금하고 특별하고 따뜻한 하루로

이불을 덮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톰하고 부드러운 극세사 담요 같은

보드라운 겨울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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