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산업에 발을 들인 계기와 이직썰, 여행도 커리어가 된다!?
오늘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입사하게 된 계기, 업무 이야기와 이직을 하게 된 이유, 세계일주로 이직(?)한 이유, 복귀 후의 커리어 패스와 감정적인 이야기 등 다소 개인적인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내 10대의 취미생활은 풍물놀이, 장구로 점철되어 있다.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한 장구는 그간 수없이 배우고 때려치웠던 다른 취미와는 달리 꽤 오랜 시간 내 관심을 끌었고 성향과도 그렇게 찰떡일 수가 없었다.
열댓 명의 동료들과 무대에 올라 신명 나게 한 판 놀았는데 상을 받고(상금도 받고) 학교를 대표하여 공연을 하는 짜릿함이란. 그리고 당시 아이돌들의 아이돌, H.O.T를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와 나눌 얘기가 없다던 그 시절 끝까지 버티다가 자연스레 동화되어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고 직접 실행해야 적성이 풀리는 탓에 여러 가지 제약을 뚫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콘서트장에서 살았던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는 취미로 하던 댄스를 대학 가서도 워십댄스동아리에 들어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10대 초반부터 20대 대학시절까지 무대와 공연, 문화에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단 얘기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자연스럽게 서서히 운명처럼 진로가 정해진 것 같다.
다만 이 업계에서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지 지식도 정보도 제한적이었던 때라서 이런 분야에서 일하면 재밌겠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에서 경영학 - 마케팅을 전공했는데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어느 날 한 권의 책(세계를 난타한 남자, 문화 CEO 송승환)을 읽는데 갑자기 심장이 뛰면서 불현듯 아, 난 이거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문화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며 소름 돋았던,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 이후에는 관련 경험을 돈이 되든 안 되는 닥치는 대로 신청해서 했던 것 같다. 이렇게 <문화마케팅>이라는 다소 막연할 수 있는 키워드를 나름대로 정해 관련 회사들을 찾아보고 여러 인턴 경험(국제캠프 기획/운영, 전시회 마케팅 등)들을 통해 적성에 맞는 일, 안 맞는 일을 파악할 수 있었다. 길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막연하고 두려웠던 그 당시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 책을 쓰고 진로를 찾는 학생들이 그 책을 읽고 도움을 받았다는 메일을 받으면 감회가 참 새로우면서도 감사하다.
아무튼. 그렇게 관련 분야의 회사를 찾다가 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낮았지만 당시에 인지도는 높았던 J사의 채용공고를 보고 반신반의하며 지원했는데 전화면접이 있고 1차, 2차 면접이 후루룩 지나가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주 6일 격주 근무가 내가 출근한 바로 전주에 끝났다고 했다. ^^;
음반 기획사는 지원도, 면접도, 일도 처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한 기회이자 운이 아닐 수 없는데(경력/신입을 같이 보는 1명을 뽑는 기획/마케팅 포지션이었고 경쟁률이 셌는지 지인을 통해 식당에서 J사에 불합격했다고 울고불고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말이 돌고 돌아 내 귀에 들어올 정도였다.) 당시에는 잘 모르니 긴장도 겁도 없었고 마음을 비웠던 시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소위 말하는 대형 기획사에 입성하여 이렇게까지 오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아이돌 기획사에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그야말로 다사다난하고 화려했던 약 5년이 넘는 첫 직장 생활의 업무는 기획마케팅이었다. 신입/경력을 함께 뽑는 그런 포지션이었는데 해외업무와 온/오프라인 프로모션, 플랫폼 유통 업무 등 한 팀에 여러 파트가 있고 그중에서도 다양한 일을 해야 하는 포지션의 실무자로 들어가게 된다. 지금처럼 체계적이고 시스템화 되어 있진 않았지만 시스템화를 하려고 노력했던 과도기였고 정말 안 해본 일 없이 적극적으로 일에만 집중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좋은 시기였다.
업무를 하면서 있었던 썰은 다음 기회에 풀기로 하고 같은 회사나 다름없긴 하지만 5년 안에서 이직 아닌 이직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 회사가 당시 본사에서 새로운 형태로 처음 시도했던 서브레이블이었다.
기존 직무별로 나누어져 있던 형태에서 나눠져 있던 부서들이 한 팀이 되어 일을 하는 형태로 조직이 구성되었다. 이 구조는 업무를 거시적인 관점으로 볼 수 있고 한 아티스트에 집중해서 콘셉트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 다른 부서의 사람들과 한 팀처럼 일할 수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고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점이 장점이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그래도 본사에 남아 있는 게 훨씬 더 낫지 않겠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회사의 인지도나 영향력, 여러 가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환경에서 일을 해볼 수 있었다는 점과 기존의 기획마케팅, 해외 프로모션, 유통 등에 다소 한정되어 있던 업무 범위를 더 확장해서 프로덕션 실무와 신인개발, 매니지먼트 업무까지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거기다가 100% 자회사였기 때문에 본사의 후광효과를 어느 정도 받으면서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대형 기획사의 브랜드를 버리고 과감하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던 시도가 아니었다 싶다. (미국의 워너브라더스, 한국의 하이브 구조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
모든 일에는 항상 나쁜 것만 있지는 않고 항상 좋은 것만 있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은 시기.
여행은 나에게 단순히 어딜 가고, 뭘 먹고, 구경하는 행위가 아닌 진짜 나와 만나는 인생의 선생님 같은 존재다. 단연코 업무 이외에 인생에서 필요한 모든 것들은 학교 혹은 직장생활 통틀어 몇십 년간 배운 것의 몇 배를, 세계일주를 준비하고 돌아와서 다시 정착 하기까지 1년도 채 못 되는 이 기간에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꼭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지 않더라도 현지인과 최대한 가깝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방식으로 여행 스타일도 많이 바뀌었고 세계일주는 남편과 같이 했지만 이후 혼자 여행을 다니는 것도 즐기게 되었다. 익숙한 환경을 떠남으로써 겪을 수 있는 여러 요소들과의 연결성 - 사람,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음식 등 - 에 대해 깨닫게 되기도 했다.
여행은 사실 커리어 측면으로 봤을 때 스킬을 쌓거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소위 말하는 자기 계발 행위는 아니다. 다만 사람의 인생에서 먹고 자는 단순한 사실에 집중할 수 있고 다른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에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평생 얼마나 주어질까를 생각하면 생각보다 가치가 있는 일이다. 행복감을 느끼기에도 최적화되어 있는 환경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거의 없고 적당히 필요한 긴장감만 존재하는. 또한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극복해보는 경험은 짜릿하면서도 성취감이 높다.
작은 배 투어를 하며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각 나라의 결혼문화를 이야기하고 수영해서 다른 배에 놀러 가면 그리스 출신의 할아버지들과 1년째 항해하고 있는 얘기를 듣고 우연히 만난 나이차 많은 프랑스 커플과 둘도 없는 단짝이 되어 함께 여행하고 먹고 자고. 소외되고 단절되어 있던 관계들이 연결되는 날 것의 느낌.
어떤 일을 하는 00. 어떤 회사의 00, 누군가의 상사, 누군가의 부하, 누군가의 00에 누구도 관심이 없고 온전히 내 이름 석자로 불릴 수 있는 그런 이상적 환경.
물론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듯, 무거운 짐을 이고 다녀야 해서 몸이 고되고 하루하루 잘 곳을 걱정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며 곳곳에 예상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자극들이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오세아니아/동남아시아/히말라야/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넘어가 몰두하던 시기, 한국에서 갑작스러운 비보가 날아와 발길을 돌렸다. 당시에는 어렵게 떠난 여행의 끝맺음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는데 지나가 보면 컴백하기에 최적의 시기와 타이밍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의 내가 없었을 수도 있었던 선택의 순간. 그 일을 계기로 인생이 내가 정하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루하루, 현재에 더 몰입하면서 살 수 있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트렌드와 가까이 있어야 하는 엔터 기획자, 마케터에게 이러한 자극은 많은 영감을 부여하며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뇌를 비어주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 영감 중에 어떤 것은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어떤 생각은 간혹 밖으로 나와 열매를 맺기도 한다. 없어지는 것 같았던 그 생각들은 내면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런 것들이 쌓여서 내 생각과 가치관을 형성하며 경험한 것 중의 상당 부분이 아이디어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에 있어서 이 시기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개인적인 커리어에 도움이 되고 결과적으로 업무로도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내 블로그를 처음 운영해보고 사진을 찍고 편지를 쓰는 행위. 글을 쓰고 거기에서 오는 데이터를 받아보고 반응을 보고.. 계급장을 떼고 "윤선미"라는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인의 스토리와 콘텐츠를 가지게 된 최초의 사건. 그렇게 첫 번째 세계일주를 마쳤다. 내 책을 쓰고 싶은 욕구도 사실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 여행 에세이 기획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지만. 이후 경제/경영서로 책을 출간했으니.. 정말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계일주를 중단하고 제안을 받아 정착한 회사는 플랫폼을 기반으로 콘텐츠 사업을 하는 D 사였다. 엔터 콘텐츠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음반기획사와 유사해 보이기도 하고 실제 Kpop 산업에 대한 이해가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입사했지만 같은 콘텐츠를 다루더라도 기획사와 플랫폼사의 사업 전개 방식, 업무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1년 반 정도 근무를 했으나 업무 강도는 한 3년 정도로 보면 되는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조직문화, 새로운 업무 방식,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공부하고 적응해야 해서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실제 업무를 하는 시간도 길었다. 업무량도 어마어마해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경력직으로서의 이직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기획사 입장과 철저한 성과/매출 기반, 콘텐츠가 아닌 플랫폼/서비스를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사업자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본사가 IT 사업을 기반으로 하는 탄탄한 곳이다 보니 당시 기획사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있었다. 문서 작성이나 스킬적인 부분, 조직생활에 있어서는 굉장히 큰 도움을 받았다. 일반적인 회사의 분위기는 이렇구나 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분위기가 문제는 아니었지만 업무적으로 '나는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보다는 직접 무언가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기획사가 적성에 맞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이후 나의 행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에 한창 관심을 보이고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던 시기, 다시 기획사로 돌아가야겠다 라고 마음먹고 있던 중, 중국 내 메이저 전자유통회사에서 투자한 엔터 계열사의 한국지사로 옮기게 된다. 중국에서 음반 시장, 엔터 시장이 엄청나게 성장을 하고 있던 시기라 그 규모와 그들의 시스템은 어떤가 궁금하기도 했고. 막상 들어가서 마주친 중국의 시스템은 상상도 못 한 전혀 새로운 방식이었고 커뮤니케이션부터 업무방식까지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했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을 불러 중국판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아이돌을 제작하기 위해 글로벌 오디션을 여는 등 자본이나 일을 벌이는 규모 자체도 차원이 달랐다. 대규모의 자본과 중국 엔터 시장의 규모를 보고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구나.. 긴장감을 느꼈다.
사드(한한령)가 터지면서 중국 - 한국을 연결하는 업무를 해왔던 회사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비즈니스가 어려워지면서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는 힘든 시기였지만 정치적인 걸 다 떠나서 콘텐츠적인 측면으로만 본다면 중국 자본에 잠식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외부 환경으로 인해 이런 시도들이 완벽히 차단됨으로써 오히려 한국 콘텐츠 시장의 질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라는 짐작해본다. 당시만 해도 대형, 중소형 할 것 없이 거의 중국 시장만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세계 무대로 돌리게 된 계기도 되었고.
만약 그때, 한한령이 일어나지 않고 대규모로 중국 자본이 유입되어 모든 한국 콘텐츠나 기획사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게 되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굉장한 위기에 봉착하지 않았을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무척 어려운 시기이기는 했지만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기회란 있기 마련이다.
잠시 동안의 외도(?)를 거쳐 다시 돌아온 음반기획사에서는 앨범, 아티스트의 콘셉트 기획부터 프로덕션(제작), 유통, 프로모션, 콘텐츠 사업까지.. 기존에 맡아보지 못했던 음악 장르가 다양한 그룹들, 과장 좀 보태서 아침, 저녁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그 감을 다시 찾는 시간이었다. 본질적인 업무나 구조는 비슷하지만 미디어 변화와 함께 너무나 빠르게 변하는 엔터의 트렌드를 다시 한번 체감하면서 여러 가지 콘텐츠를 시도해볼 수 있었다.
관계적으로도 좋은 사람들, 일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운 좋은 시기였고 그 좋은 인연의 일부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건강관리가 중요하다는 당연하지만 평소 인지하기 어려운 팩트를 몸으로 느끼기도 했고 노력한 정도와 결과는 정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한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업무 역량, 회사의 브랜드 파워 등 하나의 요소나 이유만으로 성공 여부를 점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고 있고 팀별로 함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었다. 성공 공식도 좀 더 복잡다단해졌으며 예상치 못한 범주로 가고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 상황만큼 새로 익혀야 할 것들도 늘어나고 약간의 허무함도 느꼈지만 그와 동시에 그간 쌓아왔던 것들을 적용해가며 일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가야 하는지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개인적 삶의 측면으로는 에너지를 많이 소진했고 균형도 그다지 잘 맞추지 못했지만(사실 일하면서 개인의 삶과 균형을 잘 맞추는 일은 평생 쉽지 않을 것 같다.) 업무, 커리어적으로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고 실무자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처음으로 시도해보고 강의를 통해 경험과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가르쳐보는 경험도 했다. 이 프로그램과 연계해서 채용 및 관리를 하면서 스킬 레벨업이 되었다. 기획이란 실행을 직접 해보면서 완성되어 가는 것인가 보다. 아니 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까지가 진정한 기획인가 보다.
#5번째 이직 - 아직도 상상 그 이상이 있다
30대 중반까지 나의 삶은 참 버라이어티 하게 변화해왔다. 일정 부분 자초한 것도 있고 타이밍이 잘 맞았던 것도 있지만 감사하게도 사람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체력이 좀 달리면서 안정을 좀 추구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솔직히 이제 와서 들기도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변화무쌍>인데 내가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이치에 안 맞는 일이 아니었을까.?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ㅎ
아무튼 그렇게 시류에 따라 흘러 흘러 오면서 정말 이상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 특이한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 (내 기준에) 안 좋은 사람들.. 다양하게 만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상상 그 이상"이 존재한다는 것이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존재의 작음을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다.
신인 아이돌 만들려고 스타트업에 위험을 무릅쓰고 많은 걸 포기하고 왔는데 예상치 못한 솔로 아티스트들을 맡아 음원을 내게 되는 일, 겨우 회사의 기본 인프라를 만들고 이제 일 좀 해보나 싶어 사람도 데려왔는데 코로나가 터져 업무의 올스톱을 겪게 되는 일, 정말 더더 이상한 사람들, 일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 삶에 대한 생각과 상식선도 다른 사람들, 또는 공감대가 1도 없고 가만있어도 화를 돋우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본이고 정말 먼 훗날이라고 생각했던 책 출판을 하게 되고, 온/오프라인 강의에 예상치 못하게 초대되기도 하고, 메일로 독자들의 응원을 받기도 하고, 이상하게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오픈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어 SNS도 간간히 하던 내가 출판 후에 느낀 바가 있어 브런치에 이런 장문의 글을 쓰게 되는 일까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뭘 몰랐을 때보다 부끄러운 것도 많고 고민되는 것도 많다.
이 산업에서는 철들면 안 된다, 철드는 순간 떠나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설마 이렇게 철이 들어가는 것인가 싶기도 한데 그건 아직 좀 남은 것 같으니 우선 좀 더 해볼까나.. 한편으로는 나이에 맞는 성숙함을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이것도 그 균형감을 찾는 일이 참 어렵다.
누구도, 아무도 경험하지 못했던 세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지각 변동이 오고 있는 상상 그 이상의 세상인 지금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또 이 시류에 맞춰 흘러갈 수 있을까. 내가 세운 회사도 아니고 월급쟁이 회사원에 불과한데 쓸데없는 책임감만 는다. 인생을 걸고 들어와 잘 따라와 주는 연습생들, 밤낮없이 열정적으로 일해주는 팀원들, 믿어주고 일을 맡겨주시는 회사의 임원분들.. 각자의 필요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일하는 이 업종에 사람의 영향력은 다른 산업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을 의지하는 것처럼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그것 하나로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는 중이다. 아직 현재 진행형인 5번째 회사에서 앞으로 어떤 것들을 또 경험하게 될지는 모른다. "버텨보기"를 연습시키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처음 이 업계에 들어와서 가졌던 초심, 순수함을 끝까지 간직할 수 있기를.
수많은 유혹과 선택지 안에서 좀 더 성숙하고 좋은 어른이 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남아 있기를.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상 그 이상의 세계에서 재미있는 일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를.
이 숨 막히고 어려운 시기에 실무자와 관리자의 중간 입장,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수많은 30대 직장인들에게, 문화 콘텐츠 업계 종사자들에게 아낌없는 응원과 존경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