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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20. 2024

엄마, 게임이 안 돼요

 핵개인시대, 육아와 경쟁력

 "엄마 이번 일요일 시간 되세요?"

아들이 전화로 조심스레 물어 왔다.

 "그럼, 되고 말고. 너희들이 0순위야, 언제나, 항상."

 "육아를 하면서는 독신인 동료들과 경쟁이 안 돼요. 학회 한 번을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거든요. 그날 학회가 있어요. 논문도 읽고 공부도 더 해야 는데 ᆢ"

 결혼 5년 차, 서른다섯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아들의 하소연이 이어진다. 쉽게 부탁을 하거나 푸념하지 않는데 많이 힘든가 보다.


 2년 2개월에 접어든 딸과 태어난 지 17일 만에 산후조리원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신생아 아들.

 출생 때부터 함께한 입주 아주머니와 다정한 외할머니의 섬세한 보살핌이 대신해 왔지만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다 무려 보름도 지나 만난 엄마와 딸. 어린 딸은 잠시도 엄마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조금만 서운해도 당장 떼를 쓰는 목소리, 금세 눈가도 촉촉해진다. 쳐다보기만 해도 마음이 짠해지는 말간 눈물이 순식간에 눈에 가득 찬다. 불면 꺼질 듯 조심스럽기만 한 갓난아기에게도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장난감, 목욕용품, 책, 기저귀, 수유용품, 아기 침대 등등 아기들 용품이 가득 들어차 쉴 새 없이 정리정돈 손길이 필요한 집안은 종일 초긴장 상태다.


 일요일 아침,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아들네 집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내가 도착하면 아들은 동네 카페로 나가 줌으로 학회 강연 발표를 듣겠다고 했다. 도착 시간을 중계 방송해 가며 아침 이른 시간에 아들네 집에 도착했다. 두 손주와 산모인 며느리, 아들, 네 가족이 함께 있는 아파트 안은 훈훈하고 가족이라는 온기가 물씬 풍겨져 왔다. 집이 가득 찼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주말이라 귀가하시고 먼 거리임에도 거의 매일이다시피 달려와 도와주시는 사돈댁은 오늘이 시아버님 기일이라 어제 밤에도 도와주시고 아침에 출발하셨다고 한다.


 내가 도착했는데도 아들은 외출할 생각을 않고 이것저것 집안일을 도운다. 우유병을 소독하고 식기 세척기를 가동한다. 결혼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모습이다. 학회 강의는 그냥 일단 녹화해 두기로 했다고 한다. 수고하는 아내를 두고 도저히 집을 비울 수 없는 모양이다. 며느리도 최선을 다하고 아들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그대로 느껴졌다.


 먼저 두 어른들의 먹거리 챙기는 일을 서둘렀다. 일단 과일부터 깎아 주고 준비해 간 생선을 굽고 따뜻한 밥을 해서 아침 식탁을 차렸다. 냉장고 속 준비되어 있는 밑반찬들로 충분했다.


 둘 다 공부하고 시험 치는 일만 하다 같은 학번 동창끼리 결혼을 했고 어언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두 아가들의 뒤치다꺼리에 차려주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계속 무릎 위를 타고 오르는 큰 녀석을 안아 주고 울음이나 낑낑대는 소리로 신호를 보내는 신생아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한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게 식사 도중 벌떡벌떡 일어나 갓난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등을 토닥여 트림을 시켜 주는 아들의 손길이 섬세하고 능숙하다. 이런 모습과는 거리가 먼 아들인데 언제 이리 어른스러워졌을까? 신통하고 대견스럽다.

 곱고 여리기만 한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손끝에 물 한 번 묻히지 않고 공부밖에 모르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 이리 큰일을 맡고 있으니 말이다. 서로 믿고 아끼는 모습이 고맙다.

 아가의 조그만 몸을 포대기로 꼭꼭 여며 감싸 주며 이것저것 나에게 아가 다루는 요령을 알려주는 아들이 신통하다.


 몇 차례 세 시간마다 130 CC 우유를 먹이고, 안고 토닥이고, 기저귀를 갈아 주고 하는 사이 어느덧 창 밖이 어둑해졌다.

 어머님 덕분에, 엄마 덕분에 잘 먹고 하루를 잘 지냈다는 둘의 인사를 들으며 두 손 가득 쓰레기봉투와 재활용품들을 챙겨 들고 현관을 나섰다. 차비 쓰시라고 며느리가 내미는 봉투는 강력하게 사양하였다.

 "차비는 무슨 차비, 지하철이 공짠데. 그리고 너희들 살림 모든 곳에 돈이 들어가는데 ᆢ."


 돌아오는 전철 속에서 꼬물꼬물 어린 녀석의 귀여운 얼굴이 되살아난다.

 녹화해 둔 학회자료는 또 어떻게 무리를 해서라도 시간을 내어 잘 듣겠지. 월요일인 내일은 또 의젓하게 출근하여 사회인으로서 한몫을 잘해 내겠지.

 공부하고 책 읽으며 계속 전문 지식을 넓혀 가야 하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 두 아이의 육아를 잘 감당해 낼 수 있기를 뒤에서 기도하고 응원한다.


 육아에 헌신하는 모든 젊은 부모들에게 응원과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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