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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Jan 26. 2024

 난무하는 폭력

   한강 <채식주의자>

 첫 페이지부터 바로 빨려 들어갔다. 지극히 세속적이면서 이기적인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ㅡ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개성 없고 신선하거나 세련되지 않은 무난한 성격이 편안했다. 박식한 척할 필요가 없었고 데이트에 늦지 않기 위해 뛰지 않아도 되었고 위축될 까닭도 없었고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ㅡ p10


 자신이 불편하지 않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로 보이는 그녀와 결혼하는 남자. 그의 아내는 그가 고르고 고른, 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였다. 말없이 시간 맞춰 밥을 차려 주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재택 아르바이트로 가계에 보탬을 주는 아내. 그  아내를 고맙게까지 생각하는 남자.


 남자는 여자에게 기대하거나 소망하는 것이 없었다. 그녀를 집안에 갖추어 두어야 할 하나의 가구 같은 존재로만 인식할 뿐 사고와 정서를 나누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격체로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삶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는 아내, 그것은 아내에게 가해지는 남편의 정서적 폭력이었다.


 그녀가 부당한 아내로서의 삶에 순응하고 있는 것은 그 앞의 또 한 남자에게서 경험한 폭력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아버지다. 배려의 말 따위는 어울리지 않고 월남전 참전으로 받은 무궁 훈장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며 목소리가 크고 그 목소리만큼 대가 센 아버지의 둘째 딸로서 열여덟 살까지 종아리를 맞으면서 자라난 주인공 영혜.


 아버지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이성적인 폭력은 또 다른 약자인 짐승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딸의 다리를 물어뜯은 개, 몸집이 크고 잘 생기고 영리하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던 흰 개를 나무에 매달아 불에 그슬리고 오토바이에 묶어 개를 질질 끌며 동네를 다섯 바퀴, 여섯 바퀴 달려 입에 거품을 물고 줄에 걸린 목에서는 피가 흐르고 목이 아파 낑낑대며 질질 끌리며 달리다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하고 죽게 만든다. 달리다 죽은 개고기가 더 부드럽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쁜 놈의 개, 나를 물어?'

 꼿꼿이 서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어린 소녀 영혜. 그날 마당에서는 온 동네 아저씨들이 다 모여들어 잔치가 벌어진다. 거품 섞인 피를 토하며 쳐다보던 흰 개의 두 눈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순간. 여자의 마음속에는 연약한 동물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잔인한 폭력에 한 치의 저항도 없이 같이 동참한 가해자로서의 자책감이 마음 속 깊이 각인된다. 미처 의식하지 못한 트라우마, 커다란 상처다.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은 화를 내며 재촉한다.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남편이 서두르면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대는 아내, 그것은 폭력 앞에 불안해진 아내의 반응이다. 배려와 존중이 없는 상대의 폭언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 실려 있다. 더 빨리 서두르다 식칼의 이가 빠졌다. 불고기를 씹다가 칼 조각을 뱉어내고 일그러진 얼굴로 고함을 지르며 날뛰는 남편.

 "그냥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죽을 뻔했잖아!"

 밀려난 칼날에 베인 아내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맺혀 나오고 있다.


 순간 여자는 관계에서 단절되어 막막한 공허 속으로 던져진다.

ㅡ문득 썰물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끄러지듯 밀려 나갔어. 나와 내가 앉은 의자만 무한한 공간 속에 남은 것 같았어.ㅡ P 27.

 그 어디에도 먹고 숨 쉬며 영혼을 살찌울, 제대로 된 사랑이 없다.


 다음 날 새벽, 여자는 처음으로 꿈을 꾼다. 눌러 놓았던 무의식이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어 만나 달라는 신호를 보내온 것이다.

ㅡ어두운 숲 속에서 길을 잃고 얼어붙은 계곡을 건너 발견한 헛간 속. 기다란 대막대에 매달려 있는 시뻘건 수백 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기 덩어리들. 그 헛간에서 주워 먹은 떨어진 고깃덩이. 헛간 바닥 피 웅덩이. 거기에 비친 얼굴. 피 웅덩이에 비친 얼굴, 내 눈.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다. 아니 내 얼굴이 아니었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얼굴. ㅡ P 19.


 그 꿈 이후 여자는 모든 육식을 거부한다. 철저한 채식주의자로 살 것임을 선언한다.

 남편은 그런 여자를 혐오한다.  

 ㅡ도대체 저렇게 자기중심적일 수가, 저토록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었다니, 저렇게 비이성적인 여자였다니.ㅡ P 20.

 ㅡ 내가 들어가 보지 못한, 알 길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그냥 계속 야위어 갔다.ㅡ P 25.


 수 없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는 무수한 꿈을 꾸며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인 느낌, 아니면 누군가 나를 살해한 느낌에 시달리며 여자는 점점 시들어 가고 먹지 못하며 채 5분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메말라 간다.


 다른 사람이 내 안에서 솟구쳐 올라와 나를 먹어 버린 그때 입안에 침이 고인다고 고백하는 여자. 여자 또한 타인에 대한 통제와 억압의 욕망, 내 욕구만으로 남의 목숨까지 빼앗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대상을 일방적인 자기중심적 시각만으로 파악하고 다루고 대하는 상대적 강자들.


 "옷은 왜 벗었어?"

 "더워서."

 서른  넘는 감자를 전부 쪄서 먹겠다고 껍질을 벗기며 여자가 말한다.

 "그냥 허기가 져서 그래."

 강한 힘 앞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는 여자는 소극적인 저항 방법으로 자신을 놓아 간다. 의식 저 밑의 무의식 세계로 숨어든다.


 남편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아내의 이러한 변화를 장인과 처형에게 전화로 고자질하여 그들로부터 미안하다는, 면목없다는 사과를 얻어낸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라야 하는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三從之道를 그 여자가 어겼기 때문이다.


 장모의 생일이자 처형의 큰 집 마련을 축하하는 가족모임 식사자리에서 또 한 번의 폭력이 자행된다. 강압적으로 딸에게 고기를 먹이려 드는 아버지. 그러나 딸은 따르지 않는다. 딸을 위해서라는 부성애를 차갑게 거부하는 딸을 용서할 수 없다. 자기의 권위가 인정되지 않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피가 비치도록 세게 딸의 뺨을 갈기고 사위와 아들에게 딸을 붙잡고 있게 하여 젓가락이 아닌 맨손으로 탕수육을 집어 강제로 입 안으로 밀어 넣는다. 아내이며 누나인 그 여자를 양쪽에서 꽉 잡아 그 행위에 동조하고 협조하는 남편과 남동생. 이빨을 악물고 저항하자 다시 한번 딸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 순간 벌어진 입 안으로 탕수육을 쑤셔 넣는 아버지.


 여자는 철저히 무너진다. 본인의 의지는 깡그리 짓밟히고 부당한 폭력의 온전한 희생자가 되어 넘어진다. 으르렁거리며 탕수육을 뱉어내고 교자상 위의 과도를 집어든다.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자기 파괴의 수동적 저항을 선택한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잘못된 사랑도 있다. 배려와 공감과 존중이 없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다. 상대의 현재 상황이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는 거친 사랑, 착각 속에서 나오는 왜곡된 사랑이다.

 병원에 누워 있는 딸에게 어머니가 흑염소 팩을 한약이라고 속이며 먹기를 거듭 강요한다. 마지못해 마신 한 모금을 다 토해내고 남은 것은 버리는 딸. 분노를 내뿜는 어머니. 전혀 정제되지 않은 원색의 원망을 쏟아낸다.  

 ㅡ "너 이게 얼마짜린 줄 아냐? 이걸 버려? 니 애미 애비 피땀이 어린 돈이다. 네가 그러고도 내 딸이냐?"ㅡ P 60.

 칼로 그은 손목에 붕대를 감고 링거액 주머니를 달고 있는 유령 같이 여윈 딸을 향해 퍼붓는 어머니의 언어폭력이다. 딸의 상처, 딸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오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거부당한 욕구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딸이 원하는 모성애, 딸에게 필요한 모성애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어머니 방식대로 어머니 욕망대로 쏟아내는 왜곡된 모성애다.

 힘들겠지만 여자가 당하는 부당한 아버지의 폭력 앞에 다 같이 연대하여 저항해야 하는 어머니가, 형제들이, 남편이 없다.


 딸은 혼자 생각에 잠긴다.

 '저 여자가 왜 우는지 나는 몰라.'

 모녀라는 혈연의 관계가 끊겨 버렸다. 마음의 커튼이 닫혔다.

 ㅡ '손목은 아무렇지도 않아. 아픈 건 가슴이야. 뭔가가 명치에 걸려 있어. 그게 뭔지 몰라. 한 번만 단 한 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 나가고 싶어.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 쉬게 할 수 없어.'ㅡ P 61.


 남편도 꿈을 꾼다. 아내가 누워 있는 병실의 보조 침대에서 옹색하게 누워서 잔 잠 속에서다.

 ㅡ내가 누군가를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잠에서 깨어난 순간 잊고 말았다.ㅡ P 62.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배우자를 전혀 이해하거나 소통, 공감, 배려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없는 것이며 그것은 상대를 죽이는 정서적 폭력이라는 것을. 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면 그것을 깊이 묻어 두고 돌아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생명이 있는 대상을 일방적인 자기 중심성으로만 파악하고 이기적으로 다루고 난폭하게 행동하는 비열한 강자의 생리이다. 격렬하게 저항하는 아내에게 뜻밖의 흥분까지 느끼며 팔을 누르고 낮은 욕설을 뱉어가며 자신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강자.   

 마치 자신이 끌려온 종군위안부라도 되듯 멍한 얼굴로 어둠 속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내,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철저히 소외당해 숨을 쉴 수 없는 여자의 모습을 보며 남편은 아무런 느낌이 없다. 점점 불편해지는 아내의 변화가 못마땅하고 싫을 뿐이다.


 이른 아침 병실에서 사라진 아내가 병원 뜰, 물이 나오지 않는 분수대 옆 벤치에 앉아 있다. 벌거벗은 상체, 풀어 버린 왼쪽 손목 붕대.

 ㅡ남편은 생각한다.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책임의 관성으로 차마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그녀에게 다가간다.ㅡ P 64.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는 가식적인 행동이며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기애적 행동이다.

 

 상의를 다 벗어 버린 여자는 앙상한 가슴과 상체의 볼품없는 맨살을 그대로 다 드러내고 있다.

 ㅡ'이젠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덩어리가 느껴져. 아무리 길게 숨을 내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아. 어떤 고함이 울부짖음이 겹겹이 뭉쳐져 거기 박혀 있어. 고기 때문이야. 너무 많은 고기를 먹었어.'ㅡ P 60.

 자기중심적인 강자가 휘두른 일방적인 폭력이 고기 섭취로 상징된다. 어릴 적 개고기의 기억.


 남편이 억지로 펼친 움켜쥔 여자의 오른 손아귀에서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가고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 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지는 작은 동박새 한 마리가 땅으로 툭 떨어진다.

 상대의 폭력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피해의식으로 상대적으로 약한 누군가를 나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생명체들이 악순환의 굴레 속에서 한없이 까불림 당한다.

 '수없이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였어.' P 36.


 심각한 얼굴의 남자 간호사와 중년의 경비가 이편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P 64.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그 힘과 배움이 없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폭력과 상처의 악순환, 인간의 연약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기적으로 이용하고 이기적으로 분노하는 사랑, 소통과 공감, 배려가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자기애적인 사랑, 왜곡된 자기 사랑일 뿐이다. 그것은 관계를 맺은 상대에게 고통을 가하고 생명을 훼손한다. 무서운 폭력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너무 무감각하고 비겁한 방관자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2016년 한국인 최초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이 2024년 올해에는 노벨평화상, 노벨 문학상을 받기를 희망한다.

 약한 생명체의 평안과 권리를 박탈하는 비열한 폭력을 고발한 정의로운 , 구성과 묘사가 어난 아름다운 문학작품이므로 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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