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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무아 Oct 12. 2024

보령의 보물

  오서산 숲 속 보물섬, 미옥서원

 추석 연휴 직전 사흘, 9월 11일, 12일, 13일, 동창 E와 H, 나, 셋은 보령 여행을 떠났다. 왕복 기차표를 예매하고 둘째 날은 배를 타고 장고도 섬을 찾아가 본다는 정도의 밑그림만 있었을 뿐 다른 아무 계획도 없었다. 현지에 S 씨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역사를 거의 다 알고 있는 S 씨와의 인연. 남편의 퇴직으로 서울 생활을 접고 보령으로 내려간 지 어느덧 10년이 가까워 온다. 이번 여행의 안내자 겸 숙소 제공자로서 운전까지도 맡아 주었다.


 10시 33분 용산역에서 출발하여 12시 57분 광천역에 도착하는 장항선 무궁화호에 올랐다.

 "기사 대기 중~~~, 홍성 다음 광천에서 내려요."

 톡을 날리고 기다리고 있던 S 씨는 기차에서 내린 우리를 태우고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단호박 먹는 추어탕집.

 수족관에서 미꾸라지에게 단호박을 먹인다는 이 식당은 매스컴에도 소개된 맛집이라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했다. 속 편하고 푸짐한 별미 식단이었다.


 식당에서 나와 친구 E의 요청으로 숲 속 서점, 미옥서원으로 향했다. 보령 사는 지인이 꼭 둘러보라고 추천했다는 곳이다. 꽤 산속 높은 비탈길을 S 씨는 능숙하게 운전하여 우리를 주차장에 내려놓았다. 기품 있는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 속, 한옥과 양옥과 정원이 넓고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에 있는 웅장한 한옥을 지나 양옥 건물로 들어섰다. 서점 본관이다. 향긋한 나무 냄새를 풍기는 목재와 햇살 환한 통유리로 꾸며진 품격 있는 내부. 공간을 가득 채운 책들이 층계 위에서, 바닥에서, 서가에서 눈길, 손길을 끈다. 2만 권이라고 한다.

 바깥에 펼쳐진 짙푸른 자연을 감상하며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탁자들도 여기저기 넉넉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별채에서는 커피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가 무료라고 한다. 나는 작두차를 선택했다. 깊은 맛이 있었다.


 아기자기 잘 가꾼 안마당 정원을 둥글게 주욱 둘러싼 넓은 건물과 그 안을 꽉 채우고 있는 장서들. 정작 책 판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 지나가다 우연히 눈길 마주친 주인장이 얼굴 가득 인자하고 부드러운 웃음을 띠며 잘 구경하고 가시라는 인사를 전했다. 계단에는 주인장이 읽고 밑줄치고 메모까지 남겨 놓은 책들도 눈에 띈다.

 제목에 끌려 책 한 권을 구입했다.

 명로진 지음

 <베껴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더운 날씨, 깊은 산속인데도 방문객들이 꽤 많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많다. 열댓 명 젊은이들이 빙 둘러앉아 책을 펼쳐놓고 담화를 나누는 테이블도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미옥서원을 소개하고 있었다. 40분짜리 유튜브도 있었다.

 서울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여 성공한 주인장이 고향인 이곳에 어머니를 기념하여 지은 서점이라고 한다. 어머님 임미옥 님의 성함에서 따온 미옥서원. 평생 희생하고 헌신한 어머님의 사랑을 향한 아들의 애틋한 마음이 읽힌다. 도서관을 짓고 싶었지만 지역 특성상 허가가 나지 않는 곳이라 서점으로 문을 열었다.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빼어난 건축물이다.

 '같이 책을 읽고 싶다'는 주인장의 서점 운영 철학까지 남다르니 앞으로도 많은 이들의 의미 있는 발걸음이 이어질 것 같다.


 농협 마트에 들러 장을 보았다.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퇴직을 앞둔 서른 명 남짓 공무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오랜 기간 발품을 팔아 마련한 보령의 산속 택지. 그곳에 서른여 가구가 꿈의 씨앗을 뿌렸다. 십여 가구가 집을 지었고 그중 한 가구에 S 씨 부부가 살고 있다. 해발 700m 고지, 집집마다 부지런히 텃밭을 가꾸고 아늑한 정원을 꾸며 놓았다. 그 중앙에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자녀들이나 친지들이 오면 머물 수 있고 또 평소에는 주민들이 함께 모여 담소와 게임을 즐기고 맛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곳이다. S 씨의 배려로 이틀간 이곳에서 묵는다. 숙소에 가방만 던져 놓고 동네 구경에 나섰다. S 씨 윗집, 제일 꼭대기집 이웃 아저씨를 만나 정성 들여 가꾸어 놓은 정원과 텃밭 설명을 들었다. 열 개 남짓 예쁜 대봉을 달고 있는 감나무와 조롱조롱 아직은 푸르고 싱싱한 열매를 달고 있는 대추나무, 집 앞 빈 터에 심어 놓은 배추, 대파, 상치들을 구경하며 우리 셋은 내내 부러운 탄성을 질러댔다. 주인장 아저씨가 S 씨에게 꽤 큰 호박 한 덩이를 주셨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넘어왔다. 저녁 반찬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큰 방이 세 개나 있는 게스트하우스는 무척 넓고 편안했다. 50여 평은 될 것 같다고들 입을 모았다. 성능 좋은 에어컨을 켜고 잘 갖추어진 부엌 시설을 이용하여 저녁을 차렸다. 식용유와 밀가루는 S 씨 집에서 불려 왔다. 뚝딱뚝딱 호박전을 부치고 고구마를 찌고 샐러드를 준비하자 조촐하고 깔끔한 저녁 식사가 금세 완성되었다.


 깊어가는 여름밤, 굵고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세 여자의 수다가 익어갔다. 우리 곁을 스치는 시원한 소슬바람은 남아 있는 한낮의 열기를 저 멀리 어둠 속으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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