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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Jul 01. 2024

보통에 가까운 우리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이 글은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을 이미 관람하였거나, 앞으로 절대 관람할 일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매우 강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넥스트 투 노멀>은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되었으며 언론 계의 노벨상과 같은 위치로 통하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뮤지컬이다. 한국에서는 2011년 초연을 시작으로 2024년에 다섯 번째 공연이 진행 되었다. 약 100년간 퓰리처상을 수상한 뮤지컬은 단 열 편에 불과하다고 하니 어느 정도 작품성이 보장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16년째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는 '다이애나'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탄탄한 스토리, 다채로운 무대 구성, 중독성 강한 음악 덕에 수작이라는 평가를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이애나


  지극히 보편적이고 행복해 보이는 '굿맨 패밀리'의 엄마 다이애나는 오랜 시간 정신병을 앓고 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1년도 채 살지 못하고 죽어버린 아들 '게이브'가 유령처럼 곁을 멤돌고, 다이애나는 죽은 아들이 열여덟살의 청년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남편 '댄'이 완벽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다이애나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6명(1명은 1인 2역을 소화함)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그 중 다이애나의 상황과 감정변화가 주변 캐릭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서 작품을 보는 내내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첫 아이를 잃은 지 18년째, 다이애나는 죽은 아들이 살아 있다고 믿고 있으며 그녀의 일상은 엉망진창이다. 사실 나는 다이애나가 게이브 때문에 청소년인 딸에게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주지 않는 것이 완전히 납득 되지는 않았다. 게이브가 살아있을 때 태어난 딸도 아니고, 그 아들이 죽은 뒤에 태어난 딸이란 말이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둘째를 낳은 건지 다이애나도 댄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2막 후반부의 How Could I Ever Forget?(그날을 어찌 잊어?)이라는 넘버를 듣고 그녀의 슬픔이 어느 정도였을지 훅 다가와서 많은 부분을 납득할 수 있었다.



그날을 어찌 잊어?
아침은 차고 축축했어
밤새 떨다 맥이 풀린 내 아가
겨우 8개월
- 그 날을 어찌 잊어? / 넥스트 투 노멀



  게이브는 다이애나가 열아홉살에 야반도주하여 결혼을 하고, 그때 낳은 첫 아들이다. 아이는 장폐색으로 엄마의 품에 안겨 죽었고, 당시 그 아이는 겨우 8개월밖에 안 된 아기였다. 그 작은 아이가 품에서 차게 식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다이애나가 제정신으로 어떻게 버틸 수 있었을까.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았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이 아닐까? 그런데 정신의학적으로 '정상적'인 애도 반응은 몇 개월 이내에 끝나야 한단다. 계속 슬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루 빨리 완벽한 가족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 당한다.


   다이애나와 댄이 처음으로 함께 게이브의 죽음에 대해 회상하는 내용을 담은 이 넘버는 부부의 슬픔에 대해 노골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불편할 정도로 슬펐다. 그리고 지금도 이 곡을 떠올리거나 다시 들으면 눈물이 난다. 특히나 다이애나의 심리가 어땠을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는데, 만약 내가 다이애나였다면 가장 크게 느낀 감정은 아마도 죄책감이 아니었을까. 고작 열아홉살밖에 안 된 다이애나는 어른들에게 축복받지 못하고 쫓기듯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유분방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일 뿐인데, 갑자기 "부모"가 되었으니 그 책임감이 얼마나 무겁고 또 무서웠을지 감히 상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잠깐이라도 아이를 원망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엄마들은 아이가 재채기 한번만 해도 죄책감을 가진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다 그렇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내가 아는 엄마들은 대부분 그러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들은 자기가 아이에게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해서, 자기가 건강하게 낳지 못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 걷지도 못할 정도로 작은 아기가 죽어버렸으니 그 죄책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아마 다이애나는 자신이 아주 잠깐 아이를 원망했던 것도 아이가 아프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이애나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니 그 끝에는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불만족과 원망, 죄책감이 뒤엉켜 도무지 그 슬픔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다이애나는 어쩌면 시간여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이브가 죽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 슬픔을 감춰버리고 게이브가 살아있는 삶을 선택한 다이애나는 그 환각 속에 사는 게 더 행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댄에 의해 둘째 아이를 갖게 되고, 게이브를 잊지 못하고 딸인 '나탈리'에게는 사랑을 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결국에 다이애나는 살기 위해 댄의 곁을 떠난다. 댄을 떠난 다이애나는 더이상 슬픔을 외면하지 않고, 이제라도 자신이 원하던 삶을 찾게 되지 않았을까.



  게이브


  사실 이 극을 보게 된 건 게이브 역을 맡은 '홍기범'이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친구가 이 배우를 좋아해서 매일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자연스레 이 게이브라는 캐릭터를 주의깊게 볼 수밖에 없었다. 게이브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한데, 다이애나의 환상 혹은 그녀의 트라우마, 어쩌면 영혼 그 자체일 수도 있는 미스테리한 캐릭터다. 캐릭터의 성격은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미묘하게 차이점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본 게이브는 엄마에게 애교가 많고 장난스러운 아이였다.


  무대의 구성은 총 3층으로 된 철제 구조물로 되어 있는데, 게이브는 천장의 구조물을 한 팔로 잡고 서 있거나, 구조물 사이에 앉아서 가족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봉춤을 추듯히 기둥을 잡고 빙글 돌기도 한다. 그런 행동들이 꼭 어린 아이가 철봉을 타면서 노는 듯해 천진난만함을 더해주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내내 장난스럽고 또 가끔은 섬뜻해 보이기도 했던 게이브가 2막의 마지막쯤 기둥 뒤에서 다이애나를 관찰하는 부분이었다.


  엄마가 현실을 사는 걸 방해하듯 집착하고, 계속해서 '난 살아있어'라고 외치던 게이브가 마지막에는 엄마 잃은 아이처럼 처연해 보였다. 다이애나와 댄이 헤어지는 순간을 한 발 떨어져서 관찰하는데, 그때의 게이브는 엄마를 잃은 8개월짜리 아기 같아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다이애나의 환상 속 존재처럼 느껴졌다면, 후반부에는 죽음의 순간에 멈춰버린 안타까운 영혼 같아 여운이 길게 남았다.



  평범에 가까운 가족


  나는 어릴 때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았다. 평범하다는 건 어딘가 지루해 보였고, 보편적인 것보다는 특별한 게 더 멋져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평범한 삶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평범하고 재미없는 삶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이 아닌가. 나 혼자 평범하게 살기에도 벅찬데 평범에 가까운 가족을 만드는 일은 얼마나 힘들까. 평범에는 암묵적으로 행복과 화목함이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응원하고 사랑해주는 가족, 그러나 가족과 사랑이 있다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정신의학과가 왜 있으며, 왜 크고 작은 사회 문제들이 발생하겠나. 가족 때문에 병 들었는데 가족으로 치유받고자 하면 답이 없다. 힘듦에 처했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데 다이애나는 너무 오랜 기간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수렁에 빠져 있었다. 댄이 그리는 평범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고 억지로 행복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핏 완벽해 보였던 굿맨 패밀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해체된 뒤 비로소 진정한 굿맨 패밀리가 될 수 있었다. 악의 없는 궁지에 몰려 있던 다이애나는 이제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자신도 게이브의 죽음에 묶여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있던 댄은 뒤늦게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부모가 있으나 부모의 부재를 느끼고, 죽은 오빠에게 밀려 스스로를 투명인간 소녀라고 칭하던 나탈리는 이제 부모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 강한 어른으로 자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슬픔 그 자체였던, 또는 실제로 죽은 아이의 영혼이었던 게이브는 앞으로 어디로 가는 걸까. 어쩌면 그 아이는 관객들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랫동안 남아 존재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기억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사라지는 존재인 게이브. 장난기 많고 애정 욕구가 큰 이 아이의 슬픔은 극이 계속되는 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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