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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Feb 17. 2022

숨은 참아도 춤은 참지 마

2022.02.16.(수)


10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넓은 강당에 오와 열을 맞춰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모두 우리 학교 학생들은 아니었고 여러 학교가 섞여 있었던 것 같다(확실하지는 않다. 실제로는 50명 정도일 수도 있고 우리 학교 학생들만 있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창피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방청객들이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으니까). 강당의 천장은 높았고 내부는 어색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친구 한 명과 눈에 띄지 않도록 어중간한 위치에 앉았는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찌나 어색한지 제일 친한 이 친구와도 서먹해질 지경이었다.


중학교 간부수련회(당시 나는 간부라는 단어가 입에 잘 붙지 않았는데 TV드라마에서 나오던 간부 캐릭터들이 썩 좋은 이미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간부수련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굳이 기성세대의 단어를 가져와 학생들의 세계를 갈라치기 해야 하는지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의 저녁 프로그램은 레크레이션이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레크레이션 강사가 전후좌우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도록 예의 그 레파토리를 시작하였고(앞사람 어깨 주물러주기, 간지럽히기, '연가'를 부르며 좌우의 사람과 박수치기 등등) 나는 '어른들은 정말 이런게 효과가 있다고 믿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강사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까지만 하길 바랐다.

간부수련회라고 뭔가 특별한 걸 하지 말고 그냥 비간부(?)수련회처럼 딱 거기까지만 하길 바랐다. 하지만 이 강사는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사실 너무 멀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 그 미소를 봤다고 믿고 있다) 이렇게 말했다.


"역시 여러분들은 간부라 그런지 끼가 충만한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댄스 실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간부, 끼, 댄스 그리고 실력이 어떤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이 강사의 꼭두각시가 된 우리는 조금씩 긴장을 하기 시작했고 앞줄을 점령한 인싸 간부 무리들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듯 슬슬 몸을 풀었다.


"자, 1학년 4반 남자 반장 올라와 주세요!"


인형술사의 명령에 각 학교의 1학년 4반 남자 반장들이 무대에 올라 당시 유행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고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으나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학년 4반 남자 반장들의 현란한 몸사위가 고조될 무렵 들린 인형술사의 외침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다음은 2학년 5반 남자 반장 올라와 주세요!"


이럴수가. 등차수열적으로 미래를 예측해보면 그 다음 꼭두각시가 될 사람은 자명했다. 3학년 6반 남자 반장. 바로 나였다.


그때부터 호흡이 가빠지고 사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내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험한 꼴을 당하는 건 피해야 했다. 춤을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는데다가 몸치인 나는 이 구경꾼들의 희생양이 될 것이 뻔했다(춤이라고 할 수 없는 이상한 몸부림을 하고 있던 1학년 4반, 2학년 5반 남자 반장들의 모습이 곧 다가올 나의 미래처럼 느껴졌다). 화장실로 숨을까? 그러기엔 뒤에서 지키고 있는 교관들이 두려웠다. 자는 척을 해볼까? 이 소란 속에서 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나는 결국 앞줄의 인싸 간부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그 순간에도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오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내가 호명이 된다면 나의 춤출 기회를 너희 중 한명에게 주고 싶은데...라는 말을 건네기 위해.


내가 기억하는 건 여기까지다. 그 이후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무대에서 춤을 추지 않았고 무대에서 남들에게 창피를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아마 그 강사가 3학년 6반 남자 반장을 호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 확률상으로는 3학년 3반 남자반장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군중의 의표를 찌를 줄 아는 인형술사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 한껏 움츠리고, 아니 쪼그라들고 말았던 내 모습이 트라우마에 가까운 창피한 기억으로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영화 <조조 래빗>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시기에 꼬마 나치 소년과 유대인 소녀의 만남을 다루고 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전쟁이 끝났음을 확인한 소년과 소녀는 서로 마주보며 슬쩍슬쩍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조금씩 동작의 반경을 넓혀간다. 마치 자신들의 세계에 도래한 자유를 온몸으로 조금씩 확인하려는 듯이. 그리고 그 몸짓은 춤이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껴본 사람, 자신을 짓누르던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몸을 갖게 된 사람은 역시 제일 먼저 춤을 출 것이다.

니체는 춤을 추듯 살아야 한다고 했고 BTS는 춤은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고 노래했다. 이들에 따르면 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춤을 출 수 있는 세상과 춤을 출 수 없는 세상은 다르다. 다시 말해 춤을 출 수 있는 사람과 춤을 출 수 없는 사람은 다르다. 중력은 물체뿐만 아니라 삶에도 고스란히 작용해 온갖 고민들이 우리를 짓누르며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데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은 이 중력을 거부하는 사람인 것이다.


간부수련회에서 춤을 추게 될까봐 두려워하던 내 모습이 여전히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건 처음으로 내가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시선, 스스로에 대한 기대 어느 것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존재에 불과하면서 간부수련회라는 시공간에 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이제는 정말 춤을 추고 싶다. 스우파의 댄서들처럼 전문적인 춤을 추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전국노래자랑'의 맨 앞줄에서 어떤 노래가 나오든 몸을 흔들어대는 분들, 그런 분들을 닮고 싶다(이 지점에서 1학년 4반, 2학년 5반 남자 반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가볍게 아주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춤을 춰야할 때 춤을 추는 사람. 어떤 용기도 허락도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리듬을 타는 몸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되보고 싶다.


NCAA 2연패에 실패한 대학교 2학년생 마이클 조던은 미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범미주경기대회에 참가한다(책의 1/4 지점이다). 외국 선수들에게 미국이 농구 종주국임을 보여줘야 한다며 투쟁심을 불태우던 조던을 중심으로 미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손에 넣게 된다. NBA파이널 우승 여섯 번, 올림픽 금메달 두 번을 거머쥔 이 농구 황제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The Last Dance' 이다.


자, 이젠 춤을 추자.


- 요즘 듣고 있는 음악 : 꿈에(박정현)

- 요즘 마시고 있는 것 : 서촌 내자상회의 커피

- 요즘 읽고 있는 것 : 스틱!(칩히스, 댄 히스), 웃음(앙리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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