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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Mar 12. 2022

오타쿠에게 귀를 기울이면_1

2022. 3. 8.


고백하자면 나는 오타쿠였다. '오타쿠'라는 단어가 국내에 정착하기 전부터 이 단어를 알고 있었고 또 사용했다. 그리고 오타쿠가 되기로 결심했었다. 이렇게 써도 된다면 '한국의 1세대 오타쿠'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별로 명예롭지는 않지만.


오타쿠가 된 개인적 사연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한일 문화교류'라는 케케묵은 이슈를 끄집어 내야 한다.  '일본대중문화개방'은 1998년에 이루어졌는데(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998년 10월부터 2004년 1월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나라가 일본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얼마나 조심스러웠는지 짐작 가능한 대목이며 당시 청소년들이 일본 문화를 진심으로 동경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전에는 <드래곤볼> <슬램덩크> 등 소수의 OVA 애니메이션을 제외하고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포함, 대부분의 작품을 국내에서 정식으로 볼 수 없었다.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편> 국내 관객 215만 명, <너의 이름은> 국내 관객 379만 명'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내에서 흥행하고 있는 지금과 그때를 비교하고 있자면 내가 역사의 이쪽과 저쪽에 걸쳐있는 존재라는 실감이 든다(이런 실감이 드는 경우가 또 있는데 위에서 언급한 '일본 문화에 대한 동경'이 소위 MZ세대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을 때이다. 한국 젊은 세대의 문화적 자긍심은 어느 때보다 높지 않을까. 그 시작이 바로 욘사마...아니, 일본대중문화개방인 셈이다).


'오타쿠'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1998년 발간된 책 『아니메를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황의웅 저, 시공사 펴냄)에서였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아주 많이 거슬러 올라가면 정말 오타쿠처럼 보일 것 같기에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도록 한다). 


나는 만화책을(부모님 몰래) 즐겨보는 중학생이었다. 당시에는 도서대여점이 학교 주위에 2~3개 정도 있었고 300원이면 단행본 한 권을 3일 동안 대여할 수 있어서 만화책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방과 후 땡볕의 운동장에서 쓰러질 때까지 농구를 하고 정문 앞 슈퍼마켓에서 이름마저 시원한 쿨피스를 산 뒤 친구들과 털레털레 도서대여점으로 가 (부모님 몰래)만화책을 빌리는 게 삭막한 '전사의 후예'들의 시대에 살던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만화책은 단지 나에게 '명랑, 코믹, 유머, 액션'의 공급원에 불과했는데 한 문제작을 만난 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내 안의 잠재된 오타쿠 기질을 깨우며 강렬한 에피파니를 경험하게 해 준 작품은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이 에피파니는 사실 한 신문 기사를 보고 경험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데 그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에반게리온은) 인류를 공격해오는 사도에 맞서 14세 청소년들이 「에반겔리온」이라는 인조인간을 타고 싸운다는 설정이다. 흔한 소재지만 전개는 전혀 다르다. 「정의의 용사」가 돼야 할 주인공은 전투를 두려워하는 평범하고 무기력한 소년이다. 사령관인 아버지에게 떼밀려 전장에 나서면서도 주인공은 『도망가면 안돼, 도망가면 안돼』하고 수없이 뇌까린다. 가이낙스 측은 「에반겔리온」이 「삶」자체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서로 다른 삶의 자체를 가진 소년소녀들의 대응방식을 보여주려 했다는 설명이다(1997.6.24.<조선일보>) '


'뭐? 만화영화가 '삶' 을 상징한다고?'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오락용 콘텐츠인 만화영화가 '삶'을 상징할 수 있다는 것은 중학생인 나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때부터 내가 즐겨보던 만화영화들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위 기사의 영향을 받아 국어 수업 시간에 '에반게리온의 소년, 소녀들은 기성세대에 의해 강제로 경쟁사회로 뛰어들지만 그 기성세대에게 인정 받기 위해 도망치지도 못한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제출했다. 처음으로 포장지를 벗겨내고 이야기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일본 만화에 대해 글을 썼다고 꾸중하는 대신 경탄하며 칭찬해주신 국어선생님 덕분이기도 하다. 감사의 의미로 여전히 선생님의 성함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참 재미있었다. 더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었다. 더 많은 애니메이션 지식을 습득하고 싶었다. 어린이들의 전유물 속에 숨겨놓은 어른들의 진심을 더 많이 발견해내고 싶었다(무엇보다 더 많은 굿즈를 갖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오타쿠가 된다.


'에반게리온'을 평가하는 것은 워낙 많은 의견들이 분분하기 때문에(특히나 캐릭터 디자이너 사다모토 요시유키의 망언 이후로 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딱 한마디만 보태자면 지금처럼 한일 문화가 완전 개방된 시대였다면 '에반게리온'의 국내 반향이 그 정도로 크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는 금기를 동경하기 때문에). 하지만 개인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에반게리온'의 존재를 알게 된 이후로 내 세계에서 '만화영화'는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애니메이터'라는 꿈이 싹트게 되었고 나는 그 꿈을 품고 지하철 5호선에 올라 광화문역에 내린 뒤 교보문고의 예술 코너로 가서 『아니메를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 를 사게 되었다(내가 이 책을 사러 간건지 가서 고른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인테리어와 이 책이 꽂혀 있던 서가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앨범-성장 편'에 잘 간직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타카하타 이사오, 오토모 가츠히로, 오시이 마모루, 안노 히데아키, 카와지리 요시아키, 데자키 오사무 등 당시 재패니메이션을 이끌던 7명의 애니메이션 감독을 소개한 이 책에서 나는 '오타쿠'라는 단어를 처음 봤고 그때는 단순히 '애니메이션에 깊이 심취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 정도로만 받아들였다(이 지점에서 그 내용을 발췌해 인용해야 하지만 책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습니다. 찾게 되면 추가하겠습니다). 문제는 그 '애니메이션'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오타쿠들이 얼마나 '깊이 심취' 했는지를 당시의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는 데 있다. '진짜 오타쿠'는 중학생(아니 한국인)의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는 수준었으며 당시 국내에서 쓰인 '오타쿠' 개념과 지금의 '오타쿠' 개념은 큰 차이가 있다. 당시에는 어떤 분야의 전문가 이상으로 전문가인 사람(?) 정도로 오타쿠가 이해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시 고백하자면 나는 오타쿠였지만 오타쿠가 아니었다(이 부분을 꼭 기억해주시길).


아무튼 20여년 후에 그 단어가 어떻게 사용될지도 모르는 채 중학생인 나는 그저 방구석에 앉아 '그럼, 오타쿠라는 것이 되어볼까나' 라고 오타쿠처럼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아니, 좋아하는 것이 꿈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 요즘 듣고 있는 음악 : 부럽지가 않어(장기하)

- 요즘 마시고 있는 것 : 트레비 탄산수 레몬향

- 요즘 읽고 있는 것 : 에 우니부스 플루람(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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