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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oniist Jul 07. 2022

무라카미의 숲

처음 접한 하루키의 작품은 『상실의 시대』였다. 2005년 쯤에 읽었는데 표지부터 낡은 이 소설은 노골적인 일부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인상 깊지 않았다(노골적인 장면들은 매우 노골적이라는 점에서 인상 깊었다). 너무 유명한 작품이었기에 실망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1990년대의 독자들에게는 이 소설이 충격적일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취향보다 유행이 우선이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류를 '봄날의 곰만큼 좋다'는 표현을 이해하는 부류와 이해하지 못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같은 맥락에서 문학 독자는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태엽 감는 새』3권 어디갔니

독서 이력을 꾸준히 기록해 놓지는 않기 때문에 그 다음에 읽었던 작품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태엽 감는 새』였을 수도 있고 『색채가 없는 다자키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였을 수도 있다.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많이 읽었으니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중요한 건 내가 가장 많이 읽은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것이다(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계속 글을 쓰고 있다면 꽤 볼만한 접전이 펼쳐지고 있을텐데 너무 아쉽다). 


이 작가가 갖고 있는 매력들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고 또 그 매력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담은 책도 여러 권 판매 중이다. 그것들을 꼽아보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긴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해온 일이니까 나는 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그 매력들을 종합해보는 표현을 고민해 봤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결국 '따라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러닝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재즈를 듣고 소확행들로 하루를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올림픽주경기장에 모아놓고 설문조사를 시작해보자(전화나 온라인으로 진행해도 되지만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니까). 문항은 다음과 같다.


Q. 그냥 사는 것도 지치는데 왜 더 지치게 만드는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Q. 아이돌 전성시대에 왜 재즈를 듣게 되었습니까?

Q. 삶이라는 대흉은 대길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왜 소확행 같은 걸 추구하게 되었습니까?


무더기로 쌓인 답안지를 하나하나 확인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 때문에' 라는 대답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낀 채 러닝으로 올림픽주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들은 러닝 중에도 석양을 바라보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인종, 언어, 나이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70이 넘은 이 노작가의 삶을 젊은 사람들이 여전히 따라하고 싶어한다(나도 여전히 그렇다).

글을 표절 당하는 작가는 많지만 삶을 표절 당하는 작가는 드물다(무라카미는 별로 원치 않을게 뻔하기 때문에 당한다는 표현이 맞다). 

무라카미가 갖는 독특한 위치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내가 읽은 『태엽 감는 새』는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네 권짜리 장편이었다. 분량도 많고 내용도 난해해서 긴 시간을 들여 끈기 있게 읽어야 했는데 4권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서 나는 잠시 멍해졌다.

"가족을 지키라는 그 흔한 말을 하기 위해서 이 긴 이야기를 썼단 말야?"

무라카미의 글은 메시지보다 분위기를 즐겨야한다는 걸 알게된 뒤에 그렇게 멍해지는 일은 줄어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이 말하고자하는 바는(그런게 있다면) 같다고 생각한다. 식상한 것들을 잘 해내고 잘 지키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닮고 싶어하는 이유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듣고 먹고 마시고 운동하고 읽고 쓰는 이 흔한 일들을 잘 해내는 그의 삶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무탈한 듯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들을 하는지 자주 잊곤 한다. 어떻게든 일상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단단함은 파도 많은 삶을 살아낸 사람들의 비범함과 충분히 견줄만하다. 그리고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 역시 전자의 삶이다. 


'다다다'를 홍보하면서 관심사를 지정할 때 내용과 관계 없이 꼭 넣는 키워드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무라카미 하루키'다. 나처럼 무라카미라는 숲을 천천히 산책하길 좋아하는 분들과 접점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69번째 에피소드는 '봄날의 곰'을 가지고 에피소드를 만들었는데 지금까지의 에피소드 중 반응이 가장 좋았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신이나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나니 팔로워 수도 많이 늘었다. 앞으로도 무라카미 하루키 관련 에피소드는 종종 선보일 예정이다. 무엇보다 만드는 내가 재밌으니까.        


 -요즘 듣는 음악 : 없음                    

- 요즘 마시는 것 : 커피 리브레의 '울서울서울서'                      

- 요즘 읽는 것 : DEATH 죽음이란 무엇인가(샐리 케이건), 펑쯔카이 만화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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