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2.
책을 읽다가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한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카프카는 '책은 도끼다'라고 했는데 이 기분은 도끼보다는 방망이로 한 대 얻어맞은 것과 더 비슷하다. 책은 빠따, 아니 방망이다) 개인적으로는 독서에서 얻는 소중한 기쁨 중 하나이다. 이 얼얼함은 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좋은 책과 좋은 내 상태(잠을 푹 잤다거나, 무언가에 쫓기지 않는다거나 등)가 만났을 때, 아주 드물게 찾아온다. 가끔은 책이 아닌 다른 매체의 글에서 이 방망이를 맞을 때도 있다. 의외성 때문인지 이때의 충격이 더 강하다. 가장 최근 경험한 두 번의 얼얼함도 모두 책이 아닌 곳에서 읽은 글이다.
새로운 음악이 나오면 꾸준히 따라 듣는 가수가 몇 명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장기하다. 다른 사람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나 역시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최근 그가 작사, 작곡하고 비비가 부른 <밤양갱>을 알게 되었다. 뮤직비디오 및 이 음악에서 파생된 각종 콘텐츠를 보면서 나는 우선 비비라는 가수에 놀랐다(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놀란 것과 같은 이유로). 그리고 아래의 앨범 소개 글을 읽다가 예의 그 방망이로 세게 얻어맞았다(이건 아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이유로).
'진수성찬을 차려주는 게 사랑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노나먹었던 양갱이 하나가 더 생각나더라.
우리 했던 사랑이 초라한 게 아니라 양갱이가 완전 대단한 걸지도 몰라.'
(출처 : 멜론)
2024년 상반기 현재, 워낙 많은 인기를 얻고 있어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밤양갱>은 그 소재에 대한 해석도 많이 소개되고 있다. '소소하지만 충실한 사랑'에 대한 메타포로 밤양갱을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듯하며 나 역시 지금은 그 부분에 공감한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방망이로 얻어맞고 회복의 시간이 지난 뒤 이런저런 해석들을 읽은 다음이다. 방망이로 맞은 직후, 얼얼해진 머릿속에서 마치 잔잔한 호수면의 낚시찌처럼 솟아오른 문장은 이거였다.
'어떤 밤양갱은 사랑을 이긴다.'
그러니까 나의 <밤양갱>은 사랑을 이긴 밤양갱의 노래다.
사람들은 사랑, 행복, 꿈, 성공 등 추상적인 것들에 높은 가치를 매기고 그것을 좇도록 자신을 추동하지만 어디까지나 개념에 불과한 이것들을 달성하거나 손으로 잡는 것은 결국에 불가능한 일이다(이상은은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고 노래했다). 사실 이들의 권위는 갈수록 높아져서 이들에 대한 의심조차 부당한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반대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질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실체들은 흔하다는 이유로 점점 아래로 밀려나고 있다(<밤양갱>이 나오기 전까지 밤양갱의 존재를 의식한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할 수 없는 것들은 추앙받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도외시된다. 이런 구조에서 허무함, 허탈감, 무기력함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실존적인 존재를 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박대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위의 앨범 소개에서도 나왔듯이 '사랑이 초라한 게 아니'다. 사랑은 여전히 대단하다. 그런데 양갱이가 완전 대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자주 잊거나 영원히 알지 못한다. 지금 해야 하는 건 양갱이와 사랑을 비슷한 위치에 놓아두는 일이다. 양갱이가 사랑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결핍에 무너졌을 때 다른 것으로 보완할 수 있다. 허무주의를 문 앞에서 돌려보낼 수 있다.
그 일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맞은 다른 방망이(시간상으로는 이 방망이가 먼저였다)를 (한 번 맞아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영화배우 탕웨이가 2014년에 잡지 <더블유 코리아>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질문들 중 하나는 '일상 중에서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이 있는가?' 였고 그녀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나는 이것 또한 '행복을 이긴 감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어머니께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개강 전 태용(배우자인 김태용 감독)과 함께 방문해서 학비를 치르고 기숙사를 살폈다. “이제 갈 거예요”라고 인사했더니 “그래, 난 괜찮다”라며 씩씩하게 배웅을 하셨다. 그렇게 이별을 한 뒤 우리 둘은 내 예전 스승님 댁으로 향했다. 거기서 정말 달고 맛있는 감을 네 알 얻은 거다. 태용과 나누어 먹고도 두 개가 남았는데 마침 하나는 예쁘게 붉었고, 나머지 하나에는 아직 푸른빛이 돌았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다. 익은 건 바로 드시고 덜 익은 건 뒀다 천천히 맛보시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두유와 도시락을 준비해서 차를 몰고 다시 어머니를 찾아갔다. “아니, 왜 또 왔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뻐하셨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급하고 어수선해 보이셨다. 처음으로 수업을 받는 날이라 지각하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여느 때와 달리 마치 어린 소녀 같았다. 음식을 받아 들고 학교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이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떠나가는 건 내 쪽이었고 어머니는 뒤에 남아 배웅하는 입장이셨는데 그날 서로의 자리가 뒤바뀌었으니까. “엄마, 안녕!” 인사를 하는데 글쎄, 돌아보지도 않으시더라.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멈춰 세울 겨를도 없이 사라지셨다. 믿을 수가 없었다. 뒤돌아보지도 않으시다니! 그날 차를 타고 오는 길이 어쩐지 너무 행복했다. 딸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낸 기분이었다. 행복 그 이상의 감정 같았다.
(출처 : 더블유 코리아 -오브제의 뮤즈 탕웨이 https://www.wkorea.com/2014/10/22/%EC%98%A4%EB%B8%8C%EC%A0%9C%EC%9D%98-%EB%AE%A4%EC%A6%88-%ED%83%95%EC%9B%A8%EC%9D%B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