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트 '페트라르카의 소네트 123번'
이탈리아의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 1304~1374)는 평생 '라우라'라는 이름의여인에게 사로잡힌 삶을 살았다. 그는 20대 초반 라우라와 사랑에 빠졌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이후 그의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단테, 보카치오와 함께 이탈리아 르네상스 3대 시인으로 꼽히는 페트라르카는 서정시집 '칸초니에레'에서 라우라와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중 하나인 소네트(14행시) 123번의 가사는 이렇다.
나는 보았지, 지상에서 천사의 자태를, 세상에 유일한 천상의 아름다움도. 이런 기억은 기쁘면서 괴로우니, 이는 내가 본 모든 것은 꿈이요, 그림자이며, 연기같기 때문이라네.
이후 500여년 뒤 이 시는 한 편의 아름다운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19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가 1839년 칸초니에레에 담긴 300여편이 넘는 소네트 중 세 편을 테너를 위한 성악곡으로 만든 것. 리스트는 20여년 뒤 이 작품을 피아노 곡으로 개작해 피아노 작품집 '순례의 해'에 수록해 발표했다. 전 3권, 26곡으로 이루어진 순례의 해는 △첫 번째 해, 스위스 △두 번째 해, 이탈리아 △세 번째 해로 구성됐다.
리스트는 페트라르카의 시에 담긴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건반 위에 탁월하게 펼쳐냈다. 페트라르카는 사랑을 위해 죽기를 열망했다. 이보다 더 낭만적일 수 없는 주제를 리스트는 몽환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선율로 노래한다. 꿈결같은 분위기는 쇼팽의 야상곡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지만 사용되는 화성과 피아노의 음형을 살펴보면 쇼팽의 작법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멜로디는 달콤하지만 화성과 조성의 변화는 대담하고 변화무쌍하다. 리스트 특유의 화음을 펼쳐내는 음형 속에 형성되는 소리의 질감은 따뜻하면서도 울림이 깊다. 곡은 점차 격정적으로 치닫다가 이내 독백하듯 조용히 마무리하는데, 마치 고통마저도 사랑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체념의 정서가 읽힌다. 리스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사랑의 꿈 3번'과 여러 면에서 결이 비슷한 작품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B84MQeqco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