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석 Nov 16. 2021

삶의 문은 닫히고 열린다

담담하게 먼저 닫을 수 있는 용기

내가 머물고 있는 방에는 많은 문이 있다. 정확히 몇 개인지는 셀 수 없다. 단지 여러 개의 문이 내 앞에도, 뒤에도 존재한다. 어떤 문은 열려 있고 어떤 문은 닫혀 있는데, 내 앞에 있는 문들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등 뒤에는 아직 닫히지 않은 문 밖으로 내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어떤 길은 둘레길처럼 양 옆으로 나무와 바위가 듬성듬성 자리하고 있는 반면 다른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그 중에는 실제로 걸어온 길도 있고, 내가 선택했다면 지나왔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아서 겪어보지 못했던 길도 있다.


요즘 벌이는 일들은 대부분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지닌다. 등 뒤에 열려 있는 문들을 닫는 것. 나는 요즘 내가 지나온 문을 하나하나 닫고 있다. 미련이든 후회든 아쉬움이든, 그 모든 감정이 적당히 버무려진 그 무엇이든, 내 뒤에 남기지 않기 위해서이다. 문이 열린 채로 내버려두지 않기 위함이다. 하나라도 열려 있다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내 손으로 직접 닫아야 한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꽝 하고 닫아버리기에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아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부드럽게 닫는 중이다. 다시는 열어보지 않도록.




오랫동안 지난 삶의 선택들을 돌아보며 회한에 잠겨 있었다. 그 모든 순간에 그 모든 결정을 내렸던 자신을 탓하며,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나도 모르는 새 어깨에 얹어진 책임의 무게에 짓눌려 지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처음에는 아등바등 살 길을 찾아보려 애쓰다 언젠가부터는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러다 최근 두어 달 정도, 내면의 무언가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변화의 계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날이 좋은 어느 날 문을 열고 나서면 기대치 않았던 선물상자가 놓여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삶의 새로운 모멘텀을 '스스로' 찾아나설 준비가 되어간다고 느낀다. 어쩌면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야만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정면으로 겪어내야만 했던 번뇌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여러 경로로 삶의 낚싯대를 드리웠다. 마음에 남아 있던 일들을 모조리 실행에 옮겼다. 이달 들어 한숨 돌리고 있는데 10월 말까지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일단 데드라인이 많았다. 오랜만에 자기소개서라는 것을 써보았다.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가 생겼지만, 그래서 어떤 길로 갈 것인지, 그 길 위에는 무엇이 있을지, 그 무언가는 내가 원하는 것인지, 그 길로 진정 가고 싶기는 한 것인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어지러운 자아를 품은 채 쓰는 자기소개서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글이라 할 만 하다. 옛 기억을 소환해 가며 꾸역꾸역 쓰고 검토하고 고치고를 반복하였다. 브런치에 글 하나 올리면서도 뚝딱 해내지 못하고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나인데, 딱히 팔리기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어딘가에 나를 팔아야 할 것만 같은 마음에 작성하는 제품설명서는 정말 고역이었다.


하나의 자기소개서를 완성하면 또 다른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다. 이번에는 연구계획서도 딸려 있다. 며칠만에 써내기 녹록하지 않았으나 어쨌든 제출했다. 그 다음에는 면접도 있었고, 필기시험도 있었다. 어찌어찌 다 치러내기는 했지만, 솔직히 준비를 제대로 하지도 않았다. 부족한 시간이란 구색 좋은 핑계일 따름, 나는 여기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그냥 최소한의 수준으로 적당히 준비해서 적당히 '때웠다'.


그 사이사이에는 틈틈이 브런치에 글 몇 개를 썼다. 애초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는 응모할 생각이 없었다. 지난 반 년 간 써온 글들에 어떤 일관성이나 통일성을 부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출간이나 응모를 염두에 두었다면 특정 주제를 택하여 일관된 매거진을 만들었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럴까 생각도 해봤고 아이디어가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한 가지 주제의 글을 꾸준히 써나갈 의욕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내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썼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갈대인지라 내 마음 가는 곳 나도 몰라서, 밑져야 본전인데 어떻게든 하나 엮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다만 힘들긴 했다. 어쨌든 책이랍시고 내놓는 건데 한 권의 텍스트를 관통하는 메세지가 있어야 했고, 모든 글들은 그 주제에 맞게 적절한 위치에 자리를 잡아야 했다.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었다. 세상의 많은 작가와 편집자 분들에게 리스펙을 보낸다.


그러고 나니 짜잔, 10월이 끝나버렸다.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의 대부분은 무언가는 '쓰는' 과정이었다. 대충 떠오르는 대로 자판을 두드리고, 예전 자료에서 쓸 만한 텍스트를 가져오고, 초안을 쓰고, 읽어보고, 고치고, 다시 검토하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의 반복이었다. 확실히 마감시한이 있으면 조금 더 피곤하긴 하다. 그것도 여러 개의 데드라인을 연속으로 마주하고 나니 정신적 데미지가 상당하였다.


어쩌면 원하지도 않는 곳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지원서, 자기소개서, 연구계획서를 쓰는 노력과 시간을 들이고 원서 제출에 따르는 전형료도 상당히 많이 지불했지만, 결과가 나올 때마다 신나게 떨어지는 중이다. 그런데 큰 타격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소개서랍시고 열심히 썼지만 (자기소개서만큼은 최선을 다해 썼다) 그 중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지난 두어 달 동안 내가 '썼던' 것들 중 그나마 즐거웠던 작업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었지만, 솔직히 여기에도 한참 쓰다 보면 이렇게 글을 하나 둘씩 발행하는 게 당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돈이 되기를 하나, 조회수가 폭발하기를 하나, 책을 엮어내기만 하면 누가 공모전에서 대상이라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처음에는 아예 시작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서. 그러나 매우 이상하게도, 내는 족족 떨어지면서도 이러한 모든 과정이 다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지난 몇 달 동안 해온 일련의 행동은 내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자, 하나하나 모두 밟아서 확인하고 지나가야만 하는 디딤돌이다. 당연히 피하고 싶고 쉽게 가고 싶다. 그러나 피해갈 수는 없다.




문을 하나씩 닫으며 무심하게 앞을 돌아보았을 때, 정면의 문 하나가 빼꼼 열려 있는 게 보였다. 등 뒤의 문들만큼이나 많은 문이 내 앞에도 놓여있었지만 그 모두가 오랫동안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조심스레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문 틈으로 빛이 새어들어오기 시작했다.


문을 닫아야 새로운 문이 열린다는 말은 정말 맞는 것 같다. 정확히는 문을 닫아야'만' 새로운 문이 열린다. 그런데 이게 참 실천하기 어렵다. 문을 닫으면 그 방에 영영 고립될 것만 같아서다. 문을 닫아버려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데, 새로운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쩌지? 언젠가 열리긴 열리는 걸까?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그 두려움에 자꾸 뒤에 남은 문을 쳐다본다.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나 닫아야 한다. 닫아야만 한다.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서는 움켜쥔 손을 먼저 놓아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우리는 그 한 줌을 잃을까 두려워, 혹은 새로 잡게 될 무언가 역시 별 볼 일 없을까봐, 내가 놓아버린 것보다 덜 좋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손을 펴기는 커녕 더 세차게 부여잡는다. 꽉 움켜쥐고 조금도 놓치기 싫어한다. 그러나 손이 비어 있는 바로 그 상태를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힌 방에서의 시간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닫으면 열린다. 그러나 열릴 것을 기대하고 닫아서는 안 된다. 그냥 닫아도 괜찮아서 닫아야 한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닫자, 그래도 될 것 같아, 라는 담담한 마음으로 닫을 때 문 역시 가볍게 닫힌다. 그러는 사이에 반대편이 열려 있다. 내가 열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빼꼼 하고 열려 있는 문. 정말 신기하다. 그 자체도 신기하지만 더 놀라운 건 문이 열리고 닫히는 상태와 방으로 새어들어오는 빛까지 모두 완벽하게 머릿속에 구현된다는 것이다. 어떤 거부감 없이 명확하게 떠오르는 심상이 정말 신기하다.


이 문 건너에는 무엇이 있을까. 문을 활짝 열어보았지만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셔 앞을 가늠할 수 없다. 잘 닦인 길이 펼쳐져 있을까, 아니면 막다른 절벽 끝에 서게 될까. 며칠 전까지 나의 심상은 문 앞에서 머뭇거리며 멈추어 있었다. 다른 문이 열리기를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 문 밖으로 힘차게 나서는 게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탁 트인 하늘과 산과 바다, 그리고 절벽 끝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아, 역시 막다른 길인가.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내가 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충만했다. 이유 따위는 알 수 없다. 그냥 그럴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실제로 날고 있었다.


실제 나의 일상에 달라진 점이라곤 단 하나도 없다. 그러니 변화의 근거도 없다. 이러한 심상이 미래의 그 무엇도 담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내적 변화가 극히 자연스럽고도 선명해서 내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이런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에나 어울릴 법한 내면의 이야기를 왜 여기에 이렇게 풀어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치만 뭐 어때,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데 집중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왜 쓰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