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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08. 2024

시든 꽃은 버리고, 달콤한 체리를 샀다

Comes and goes

꽃 선물을 받을 때면 받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가장 싱그럽고 아름다운 순간에 활짝 핀 꽃들의 모습을 보며 향기로운 꽃내음과 나를 생각하며 건네준 그 사람의 마음을 느낄 때면 영화 장면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기도 하다.


그만큼 꽃을 선물하고 받는 것은 오직 그 한순간을 소중히 기억되게 할 수 있는 특별함이자

꽃이 시들면서 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모습은 그 강렬한 순간으로부터 흘러가는 시간을 나타내기도 한다.


싱그러운 꽃다발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꽃병에 꽂아, 정성스럽게 영양분과 햇살을 쬐어주며 어떻게든 본래의 모습을 유지시키고 싶어 하는 것은 다들 공감하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미 말라버린 잎에 아무리 물을 주어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영원하길 바라는 행복한 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Comes and goes
다 comes and goes
오고 가는 계절에도
난 몰랐었어
다 믿었었어

꽃잎 - g0nny (거니)


떨구어지는 꽃들의 고개를 보며 마음 한편에 느껴지는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아, 이렇게 정성 들여도 결국.. 시들고야 말았구나."


얼마 전 집의 대청소를 하면서 마르다 못해 비틀어져버린 꽃들을 깨끗하게 화병에서 비워내면서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탁, 하고 나온 말이었다.


화병을 치우고 깨끗해진 탁상과 함께 점점 깔끔해지는 집을 보면서 오랜만에 상쾌한 주말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전에 불면증으로 고생할 때 사뒀던 체리즙이 생각나서 비워진 탁상 위에 올려두었다.

체리는 일 중의 다이아몬드라 불리는 만큼 수면 개선에도 좋고 항산화 효과가 있어서 피로해소와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효능에 반해 대량으로 구매 후 평소에 바쁘고 귀찮다는 이유로 안 먹어버릇하다 보니 재고가 쌓여있었다.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체리즙을 잔뜩 사두었으면서 거의 안 먹었다니, 괜히 나 자신에게 미안해졌다.

시들어가는 인연에는 그렇게 정성을 쏟았으면서, 정작 내 삶에는 집중하지 못했다는 반증처럼 느껴졌다.


깨끗해진 집을 뒤로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바깥으로 나오며 동네 한 바퀴도 겸사겸사 돌아주었다.

차가운 바람이 볼을 스쳤고 모공이 수축되는 느낌과 함께 정신이 점점 맑아져 갔다.


"이제 정말 겨울이구나, 꽃이 살 수 없는 계절이었네."


꽃이 시든 이유는 내가 정성이 부족했던 탓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시간의 현상이었음을. 아무리 붙잡아도 결국에는 바뀌는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지나간다는 것을 추운 겨울 공기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짧은 산책 후에 집으로 돌아와 체리즙 하나를 먹었다.


깨끗하게 치운 화병처럼 지나간 시간들은 시들어가는 식물과 함께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주고 현재의 나의 삶에 달콤하고 싱그러운 체리 한 입을 주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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