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자작나무에 오리온자리가 걸렸다. 시리우스도 나무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서둘러 내 별을 찾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플레이아데스. 맨눈에 뿌옇게 보이는 이 성단을 쌍안경으로 보면 정말 경이롭다. 마치 이 별들과 내가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어디 내 별만 그런가. 깊어져 가는 가을, 밤하늘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별과 자작나무, 그리고 나.
일곱 살 때쯤 여름으로 기억한다.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가족이 시골로 갔다. 좁은 방 몇 개로는 모든 친척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별자리를 들려준다는 사촌 오빠의 말에 솔깃해 어린이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두 누웠다. 그날 밤,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견우직녀의 이야기와 간혹 떨어지던 별똥별은 어린 소녀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리고 풀벌레 소리와 함께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수많은 별을 덮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마도 별을 동경하는 마음은 그때부터였으리라.
여고에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개 천체 관측회를 연 적이 있다.
"새앰∼ 보여요, 토성이 보여요!"
망원경을 바라보던 한 학생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 수능 만점 받을 거 같아요."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학생들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 밤 9시 너머 시작된 관측회는 자정이 되어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기분이 너무 좋다며 학교 옥상을 마구 뛰어다니던 아이, 소리 지르던 아이. 그녀들은 망원경에서 직접 본 행성이나 별들이 잊히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기뻐하던 그녀들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에는 어린 학생들과 이 느낌을 공유할 수 있을까? 사실 의문도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학생들이야말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을 제대로 볼 줄 알며 그 무엇이든 깊이 느끼는 법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신기하다며 연신 탄성을 자아내고 심지어 오늘 일을 시로 써 보겠다던 친구도 있었다. 마지막 남은 몇몇 학생들과 정리를 하고 내려오는데 하얀 손에 커피를 가지고 온 학생이 “선생님, 추우시죠?” 하는 한 마디에 눈물이 핑 돌았다. 별을 좋아하던 그 소녀는 어느덧 교사가 되었고 그날 피곤한 몸과는 달리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의미의 천체가 있다. B-612. 어린 왕자의 고향이라고 알려진 소행성이다. ‘What is essential is invisible to the eye.’라는 문장은 보이는 것이 중요한 이 시대에 살아가면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나를 매번 일깨워 주기도 한다.
그리고 밤하늘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계절마다 다양한 신화의 주인공들이 되살아난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하늘 끝 어디선가 새로운 별이 태어나며 또 가장 화려한 모습을 하고 죽어 가는 별도 있다. 바로 우리의 삶, 우리의 모습 또한 저 밤하늘에 있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는 것.
그것은 어쩜 바쁘고 힘든 밤하늘 어느 별에 살고 있을 어린 왕자를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분절된 시간 속에서 숨겨진 보석을 찾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책에서처럼 ‘모든 어른은 한때 아이였다. 그들 중 몇 명만이 그것을 기억한다.’를 되뇌며 순수함을 지키려고 애썼던 것 같다. 되돌아보니 그건 온전히 맑은 영혼의 학생들로부터 받은 그 마음 덕분이었다.
가을이 쌓이는 창가, 잠 못 드는 나를 보며 별들이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