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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레이아데스 Sep 28. 2023

보름달 속의 어머니

커다란 용 한 마리가 엄마 품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친척 중 누군가가 말했다. ‘잔망스럽게 팔월 보름에 딸아이가 태어났다’라고. 보름달과 함께 심란했던 엄마는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부장제가 당연하던 시절, 스물네 살 엄마는 한동안 마음이 아팠다.

 

지금으로 치면 극성스러운 엄마였다. 세상의 어머니들처럼 금이야 옥이야 나를 키웠다. 당신의 옷보다 비싼 옷을 입혔고 귀한 음식은 자식이 먼저였다. 그리고 드물었던 사립유치원과 초등학교로 나를 보냈다. 그 당시 지원했던 초등학교는 추첨해서 입학 여부를 결정했다. 당일 오전, 상자 속에서 글자가 적힌 공 하나를 고르고 오후까지 발표를 기다렸다. 내가 뽑은 것은 ‘에’라는 글자였다. 엄마는 현수막에 그 글자가 들어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날 오후, 3층 건물에서 현수막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폴로 11호는 달나라로, 귀여운 아들딸들은 OO에’ 아! 문장 마지막에 내가 뽑은 글자가 있었다. 합격이었다. 지금 나에게는 아련한 기억이 되었지만, 그날 달에 대한 엄마의 생각은 또 어땠을까.


아침에 생일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9남매 중 4번째였던 아버지는 명절이면 가족과 함께 늘 큰댁으로 갔다. 추석은 큰 집안 행사 중의 하나였다. 어린 소녀는 부모님과 함께 친척 집을 다니다 집에 와서야 쌀밥과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다. 공부가 중요해진 학창 시절 때는 집안에서 TV를 보거나 공부하면서 가족들이 오기를 고대했다. 어떤 때는 밤늦도록 홀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늦을지언정 엄마는 단 한 번도 생일상을 빠트리지 않았다. 늦게라도 미역국을 끓였다. 추석은 늘 그랬다.

태풍 매미가 온 나라를 혼란 속에 몰아넣은 추석 다음 날, 엄마 집이 물에 잠기어 가재도구를 못 쓰게 되었어도 네 생일이 지나서 다행이라 하셨다. 그렇게 추석에 태어난 딸이 평생 생일 미역국을 못 먹을까 봐 노심초사하셨다.

추석이 생일인 이유로 좋은 점도 있었다.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친척은 잘 없었다. 친구도 직장동료도 어쩌다 알게 된 그날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조카 중 한 명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축하 카드를 보내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아폴로 11호 달 착륙 기념일인 7월 21일에 나는 아들을 낳았다. 달을 보고 마음 편치 않았던 그 엄마와는 달리 딸은 인류 역사상 위대한 날에 자식이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몹시 흥분했었다. 좋든 싫든 달로 이어지는 삶이 신비하기만 했다.


아들의 생일을 기념하면서 미역국을 끓이는 엄마의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번도 빠짐없었던 나의 생일상은 엄마 본인에게 주는 위로의 밥상이었다. 팔월 보름에 딸을 낳고서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을 엄마. 엄마 자신을 격려할 시간은 늘 추석 저녁이었다. 자식이 태어났기에 당연히 기쁜 날이었지만 엄마로서는 10개월 동안의 어려움과 산고를 견디고 자식을 품에 안은 가장 감격스러운 바로 그날이었다. 나 역시 아들을 낳고 처음 품에 안던 그때를 생각하면 찡한 코끝과 함께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Mother(어머니).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기쁨으로, 그리고 추억으로,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세상의 어머니에게 각자 감사한다.


60년, 이 삶을 주신 어머니, 당신께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 소사 노래의 한 구절, Gracias a la vida que me ha dado tanto(나에게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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