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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디터 Feb 13. 2021

당신의 마음속 장국영은 누구인가요?_찬실이는 복도 많지

꿈은 돌아오는 거야.

*영화에 대한 다소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일은 일주일에 두 번만 하려고요. 저 바빠요. 인제 할 거 많아요.

영화 속에서 잔잔한 울림을 주는 수많은 대사 중에서 저 문장이 왜 유독 기억에 남는지. 저 말을 한 사람은 찬실(강말금), 직업은 영화 PD다. 영화를 사랑하고, 새로 들어가는 작품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건만 같이 일하는 영화감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는다. 그의 인생에 생기는 다소 어이없는 변수들 때문에 무언가 빠진 채로 삶을 살아나가던 찬실은 하얀 러닝셔츠의 장국영(김영민)을 만나 삶의 방향을 조금 바꾸게 된다. 그럼 장국영은 누구냐. 귀신이다. 그런데 그냥 단순한 귀신은 아니다. 장국영은 찬실이 가장 사랑하는 것이 형상화된 것이기 하고, 찬실의 내면의 자아이기도 하고, 삶의 갈림길에 서서 쉬이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이는 착한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스틸컷

이 작품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직도 알지 못해 매일을 고민하는 지금의 나에게 너무 필요한 영화였다. 찬실의 말처럼 나 역시 좋아하는 일이 스스로를 채워줄 거라고 생각했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나름 일을 하고 있는데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늘 마음이 무거웠었다. 어쩌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런 고민들을 지울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한번뿐인 내 인생이니까, 고민과 생각을 멈출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사랑하는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되새기고 격려하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 과정 속에서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면 버리는 것도 큰 나아감일 테다. 버리고 깨끗해진 공간 속에는 또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테니까. 그건 어쩌면 오로지 그날그날의 하고 싶은 일만 생각한다는 영화 속 주인집 할머니(윤여정)의 모토와도 맞닿아있다.


영화 스틸컷

아주 소소하고 잔잔한 영화인데 최고의 시퀀스로 꼽고 싶은 장면이 생각보다 많았다. 장국영이 찬실을 격려하는 포옹을 건네는 장면. 한글이 서툰 할머니가 맞춤법을 틀리게 적은 시의 의미를 들으며 펑펑 우는 장면. 그중에서도 깜깜한 밤에 다른 이들의 걸음을 비춰 주기 위해 한 발짝 뒤에 전등을 들고 있던 찬실이, 그 자체로 빛이 된 것 같은 영화의 엔딩이 좋았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작품 꼭 같이하자고 말하는 좋은 동료들이 곁에 남아있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일단 저렇게 찬실의 삶을 우주에서도 열렬히 응원하는 장국영이 있는걸. 그리고 그런 장국영을 오래오래 기억한다고 말하는 찬실 본인이 있으니 말이다.


영화 속 장국영 스틸컷

인비저블 해야 할 존재를 장국영으로 표현해 영화를 한층 더 생기 있게 만든 연출에 감탄했고, 나도 나의 장국영이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나타난다면 장국영의 모습은 아닐 텐데 어떤 모습이려나. 지금으로써는 찬실이처럼 가장 사랑하는 것을 꼽을 수도, 사랑하는 것을 주저 없이 사랑한다 말할 수도 없는 탓에 어떤 형체로 나타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게다가 막상 나타나면 무서워서 도망칠 가능성도 있고.


그래서, 복도 많은 찬실이의 삶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직접 영화를 보며 확인해야 한다. 아직 사랑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면 자신만의 장국영을 찾기를. 사랑하는 일이 있는데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주저 없이 사랑해보고 위로받기를. 나와 찬실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가슴속에 품어 봤을 장국영들을 나도 오래오래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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