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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May 03. 2022

놀이공원의 추억들, 그리고… 고맙고 그리운 동생 ‘T’

벌써 8년 전

어릴 적 운동회 전날 밤 풍경은 늘 잠 못 이뤘던 기억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달리기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리 힘을 빌려 달렸고, 줄다리기도 그랬다. 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양파링을 혀로 날름거리며 먼저 먹으려 애를 쓸 때도, 밀가루 가득 덮인 쟁반에 얼굴을 박고 사탕을 먼저 쟁취하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하여튼, 자진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응원뿐이었던 것 같은데 그마저도 소심한 태도로 일관했었다. 왜냐하면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분명, 애들 맞았는데… ㅋㅋ) 그래도 늘 먹던 급식이 아닌 시켜 먹는 도시락이나 치킨 같은 메뉴가 그득하고, 무엇보다 친구들과 쉼 없이 떠들어도 제재하지 않는 자유가 잠 못 이룸의 이유였지 않았나 싶다.



어디 운동회뿐이겠나.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날에 한 번, 또 단풍이 붉게 물드는 서늘한 가을 녘에 한 번. 일 년에 두 번 떠나는 소풍 때도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 집과 학교를 오가기만 하는 반복되는 일상에 한 줄기 일탈… 소풍은 내게 늘 그랬다. 장소는 꿈과 환상의 나라 에버랜드.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놀이기구를 탈 수 없다는 것. 놀이공원의 꽃은 곧 놀이기구인 것을… 마치, 갓 쪄낸 따뜻한 호빵에 팥이나 여타 고명이 없이 먹는 것과 다르지 않을 터… 그런 슴슴한 빵 반죽을 무슨 맛으로 먹겠는가. 놀이기구를 타지 못한 이유는 놀이공원 직원의 만류 때문이었다. 그것도 다름 아니라 안전상의 이유로 말이다. 만류했던 직원의 마음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의 상황이 발생해서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면 책임은 고스란히 직원이 져야 할 수도 있으니. 그러나 보호자 동승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건 좀 너무한 처사 아니었나 싶다. 방침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나. 어린 녀석이 일목요연하게 따질 수도 없을뿐더러 또 애초에 그럴 만한 담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원치는 않았지만 놀이기구는 물 건너갔으니 반드시 최악을 면해야만 했다. 때문에 나를 비롯한 일당(?) 몇몇은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같이 달달한 거나 실컷 먹고, 오락실 가서 돈이나 실컷 쓰자고… 그런데 그렇게 호기롭게 간 오락실 내부는 나 같은 휠체어 라이더들이 부대를 이뤄 장시간 자리 잡고 앉아 게임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인파도 인파거니와 공간도 그다지 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락실은 먼저 자리 잡은 보행이 가능한 친구들만의 유토피아가 됐다. 이쯤 되면, 에버랜드가 싫어질 만한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학교의 봄 소풍 코스는 이듬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변함없이 에버랜드였다. ㅠㅠ (참고로, 소풍은 전교생이 다 같이 움직였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간단히 정리된다. 첫째, 거리가 가깝고 둘째, 휠체어 접근성이 좋다는 이유였다. 한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선생님들도 “이젠 다른 곳 좀 가자.”는 학생들의 요구를 모르시는 바 아니었을 터. 지금이야 ‘오죽하면 그러셨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느 순간엔가는 묻지 않아도 이미 정해진 상황이라 그대로 따르기 여러 번… 한 번은 날 포함한 우리 반 애들 전체가 선생님과 담판을 지었다.



(반장) “쌤! 소풍 관련해서 드릴 말씀 있어요.”

(선생님) “어. 그래, 얘기해 봐.”



(반장) “올해도 에버랜드지요?”

(선생님) “맞아, 잘 알고 있네.” [엷은 미소]



(친구 1) “다른 데 좀 가요! 지겨워요. 놀이기구도 안 태워 주고, 오락실도 애들 대부분이 못 가고 그러면 왜 가요?”

(선생님) “어쩔 수 없어, 다른 데가 마땅치가 않아. 그래서 선생님들끼리 이미 정했고 스쿨버스 기사님도 알고 계셔.”



(친구 2) “맨날 똑같아요. 쌤들이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누굴 위해서 가요?”



그날은 웬일인지 저항이 거셌다.



(선생님) [웃음] “오케이, 오케이. 말이나 들어보자. 그래서 너희들은 어디 가고 싶은데?”

(친구 3) “동물원은 가기 싫고, 롯데월드 가요.” (지금 생각하면, 그거나 그거나 ㅎㅎ)



(선생님) “롯데월드? 야, 너희들 아까 놀이기구 못 탄다고 뭐라 하지 않았니? 어차피 거기 가면 똑같을 텐데.”

[확신에 찬 웃음] (나) “똑같을 거 각오하고 가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가 오간 끝에 결국 우린 에버랜드 대신 롯데월드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고 해도 생각보다 롯데월드는 에버랜드와 구조적으로 많이 달랐다. 해서 이전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았으며, 그런 다른 구조 덕분에 오히려 더 불편하기만 했다. 그래도 원대로 되어서 기분만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론 다시 에버랜드 행이었다. 가끔 서울대공원이나 민속촌도 끼어 있었다. 참 이상하고 신기했던 건, 똑같다고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소풍 전야에 잠 못 이루는 건 늘 똑같았다는 것. 아무튼, 놀이공원 행은 그렇게 조금 쓸쓸한… 아니, 씁쓸한 추억으로 남을 뻔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8년 전 오늘은, 놀이공원이 원래 이렇게나 재미있는 곳이었음을 처음 알게 해 준 날이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지만 감히 말하건대, ‘놀이공원의 새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간이었다. 브런치를 통해서도 자주 언급한 적 있는 동생인 T와의 동행이었다. 집에서 기흥까지는 일반 지하철로, 기흥에서부터는 경전철로 갈아 타 에버랜드까지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나와 동행하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아예 놀이기구를 함께 탈 요량이었다고 했다. 비록, 그와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나 동생의 보행 양이 꽤나 많았으므로 도착하자마자 함께 콜라를 들이켰다. 그는, 내게 콜라를 들이켤 또 한 번의 핑곗거리를 선사한 셈이다. 예전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 참 좋았다. 그는 언제나처럼 이동 동선부터 따졌다. 많은 인파 속에 혹여 자신의 부주의로 사고라도 나면 안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보행과 휠체어의 이동 경로는 많이 다르다. 그렇게 이동할 경로를 잠정적으로 확정 짓고, 그는 바로 이어서 화장실 위치도 탐색했다. 참 배려가 많은 친구 아닌가. :) 그렇게 화장실 위치 탐색까지 마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하게 된 에버랜드는 학교에서 소풍 가던 시절과는 다르게 여러모로 탈바꿈해 있었다. 처음 보는 놀이기구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구관이 명관이라고 롤러코스터와 바이킹 같은 레전드(?) 놀이기구들은 건재했지만.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놀이기구들 사이로 마치 무술가가 도장깨기 하듯, 여러 개 최대한 많이 타보고자 했지만 학교 때나 그때나 비슷했다. 또 갖가지 견제와 만류가 우릴 뒤덮었다. 그러나 우린 포기할 수 없었다. 첫 번째 놀이기구는 아마존 익스프레스. 학교 때 엄마와 함께 탔던 몇 안 되는 놀이기구였다. 젖을 만한 물건들은 모두 동생이 챙긴 뒤 나를 태웠다. 그리고 내 옆에 그가 앉았다. 언제나처럼 흥겨운 리듬과 춤이 이 놀이기구의 백미라는 생각이다. 물이 튈 때마다 생각보다 튀는 정도가 심해서 나중엔 다 포기하고 어린아이처럼 웃었던 기억이다.



두 번째, 수많은 놀이기구들 가운데 가장 타 보고 싶었던 범퍼카. 평생의 한(恨)을 이날 풀었다. 그간 단 한 번도 범퍼카를 타지 못했던 걸 알고 있던 동생은, 두 번이나 탈 수 있도록 도와줬다. 원래는 각자 다른 차에 올라서 서로만 공략(ㅋ)하려 했는데 아쉽게도 그건 무위로 돌아갔다. 코로나가 사그라지면 다시 한번 그와, 또 어머니와 실컷 범퍼카를 타보련다. 세 번째, 고르고 골라 탄 놀이기구인 ‘관람차… 차포 다 떼고 나니 남은 건 별로 없었다. 회전목마는 서로의 합의하에 타지 않기로 했다. ㅋㅋ



꽤나 천천히 올라가던 관람차는 하늘 구경하기 딱 좋았다. 관람차 타면서 두 사람 공히 꺼낸 말, “이건 여친이랑 같이 타야 하는 건데 ㅋㅋㅋㅋ.” 



하나도 타지 못하던 놀이기구를 세 개씩이나! 티어스, 용 됐다! 관람차를 탄 후 실외 공연과 퍼레이드도 함께 감상했다. 퍼레이드는 꽤나 볼 만했다. 그리고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찰나, T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진 하나를 찍어주었다.


  

퍼레이드 관람 중. 사진 상으로는 인파가 잘 보이지 않는다. Copyright 2014. Love.of.Tears. & T.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이 사진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몇 안 되는 사진 중 하나다. 본디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카메라가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 하여튼, 당시를 떠올리면 참 알찼던 쉼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매일 달고 사는 걱정도 다 날려 보냈다. 오늘 이렇게 새삼스레 다시금 추억의 페이지를 연 이유는 다 페이스북 덕분이다. 요즘은, 코로나 이전에 그나마 가끔이라도 활동했던… 마스크 없이 일상을 지낸 그 시간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여전히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시기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코로나의 계절이 지고 재차 활동의 계절이 필 것이다. 그때까지 감사한 추억을 되새기기 위해 졸필이지만 글을 올린다. 독자 분들께 다소 유치해 보이실지라도 양해해 주시기를 당부드리면서…



이런 추억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T! 사랑한다 동생아. 보고 싶다.



2022.05.03 씀

2022.05.04 수정




Photo by Aaron Burden on Unsplash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Photo by T 

Copyright 2014. Love.of.Tears. & T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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