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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Jun 22. 2022

우리들의 열다섯 색 무지개

tvN 주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tvN 토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포스터. 출처 = tvN 공식 홈페이지. Copyright (C) CJ ENM All Rights Reserved.



Spoiler Alert!

스포일러 주의



지난겨울은 참 느긋했다. 내 기준일지는 몰라도 5월까지의 아침은 한기가 제법 많이 스며들었으니… 그게 코로나로 인한 마음의 정체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른 날들과 달리 올해는 벚꽃을 포함한 모든 봄꽃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저 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뭐, 그래도 괜찮다. 평소에도 집 밖으로 나와 햇살 아래 직접 앉아 있지 않으면 꽃 구경은 그다지 관심 있는 편이 아니니까. 꽃이란 모름지기,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며 함께 호흡하는 아름다운 벗이자 더불어 내게 향기를 선물해 주는 존재인데, 그러지 못했으니 올해 핀 꽃들은 다 무효다. ㅡ.ㅡ



여러 봄 꽃들이 피고 질 동안에도, 겨울의 흔적은 봄의 흔적 앞에서 늘 껄떡댔다. 이 추위가 지나야 코로나가 끝날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서 한기 서린 공기가 물러서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불과 며칠 전부터 진정한 겨울의 끝을 발견하곤 즐거워했다. 물론 여름은 여름대로 숨이 막힐 듯한 더위와 하염없이 흐르는 땀 때문에 끈끈해서 답답해하겠지만, 그것 또한 괜찮다. 여름이니까.



바로 얼마 전… 그러니까 그토록 바라던 겨울의 입김 머금은 봄날이 저문 여름날에, 난 우연히 한 편의 드라마를 보게 됐다. <청춘기록> 이후 아주 오랜만에 만난 드라마다. 그 드라마는 다름 아닌 <우리들의 블루스>. 공교롭게도 같은 방송사인 tvN의 토일 드라마다. 실제 방송 회차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지만, 사정상 TV 앞에 앉지 못할 때를 제외하면, 2~3일 만에 정주행을 마친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하는 보석과도 같은 드라마였다. 흔히 인생을 한없이 낮춰 부를 때 바람 잘 날 없는 난리 블루스라고 하는데 (나만 그런가…) 땀이 흐르는 여름날에 끈끈한 블루스 음악과도 같은 열 다섯 막의 인생이 펼쳐졌다.



한수와 은희, 영옥과 정준, 영주와 현, 동석과 선아, 인권과 호식, 미란, 영희, 춘희 삼춘과 은기, 옥동 삼춘의 삶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네 인생에는 경중 따위는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한 명 한 명의 숨결이 정말 디테일해서 이전 에피소드를 망각하기 미안할 정도랄까. 게다가 세상에! 거듭되면 될수록 더 커다란 난관이 펼쳐진다.



한수(배우 차승원 씨)와 은희(배우 이정은 씨)의 경우, 은희는 지난날 첫사랑이었던 한수가 이전보다 더 멋있어진 모습으로 돌아와, 학창 시절처럼 가슴이 벅찬데 한수는 프로골퍼인 딸아이의 뒷바라지하기 바쁘다. 더 이상 돈 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자 끝내는 웬만한 부자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재력을 가진 은희의 돈을 바라고 억지 접근하는 상황.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영주(배우 노윤서 씨)와 현(배우 배현성 씨)은 제주도의… 아니, 인권과 호식의 영원한 자랑 거리인 두 사람이다. 그들의 부친인 인권과 호식은 섬 안에서 모르면 바보일 정도로 평생 앙숙인데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사랑을 이어가다 결국엔 금단의 영역까지 넘어 버린다 한편으론 아쉽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다.



동석(배우 이병헌 씨)과 선아(배우 신민아 씨). 표현이 서투르던 두 사람. 어린 시절 느낀 서로에 대한 감정은 괜한 측은지심이나 동정 같은 게 아니었다. 사랑이란 두 음절로 정의되는 명확한 감정이 둘 사이엔 이미 존재했다. 둘의 마음과는 달리 그들은 늘 어긋났고, 마치 평생 닿지 못할 상하행선의 기차와 같다. 그러나 만날 사람은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는 유명한 옛 격언처럼 둘은 재회하게 된다. 그 과정 역시 이해되지 않을 리 만무하다.



인권(배우 박지환 씨)과 호식(배우 최영준 씨). 마치 만나지 말아야 하는 두 마리 맹수가 조우해서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 거리는 이유를 비로소 알 수 있다. 인권의 말을 들으면 인권이 안쓰럽고, 호식의 말을 들으면 호식이 안쓰럽다. 과연 두 사람의 질긴 악연이 끝날까 싶다가도, 보는 내내 인지상정은 발휘된다.



미란(가수 겸 배우 엄정화 씨)과 은희는 우정의 끝판왕들이다. “의리!”, “의리!”를 일관되게 외치는 것은 꼭 배우 김보성 씨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또 때로는 유치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원래 어릴 적부터 유지된 우정이란 게 다 그렇지 않을까. 자매와도 같아 보이는 두 인물의 우정이 부러워 한껏 몰입된다.



춘희 삼춘(배우 고두심 씨)과 은기(배우 기소유 어린이) 편을 보고 있노라면, 돌아가신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뵙는 듯하다. 똑소리 나는 손녀인 은기를 귀여워하시는 것이나 밥을 먹지 않겠다는 무적의 으름장에 맞서(?) 훈육하는 춘희 삼춘을 보고 있으면 할머니들과 얘기 나누고 싶다. 지금은 그 어떤 잔소리도 달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 이런 생각에 잠기다 보면 200% 공감된다. 특히, 100개의 달이 은기 앞에 나타나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하다 못해 뻐근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옥동 삼춘(배우 김혜자 씨). 어떤 면에선 아까 맹수라고 표현했던 인권과 호식보다 200배는 더 독하고 매서운 동석을 아들로 둔 분. 그도 그럴 것이 동석은 날카로운 치아를 어머니에게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동석만 못된 자식으로 몰아세우는 건 억지다. 그리고 옥동 삼춘은 과거엔 매정했을지 몰라도 현재는 참된 어머니의 모습이다. 옥동 삼춘의 자식을 향한 무한 헌신을 보면서 다시금 사랑하는 어머니께 감사드렸다. ㅠ.ㅠ



tvN 토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완전체 안녕 포스터. 출처 = tvN 공식 홈페이지. Copyright (C) CJ ENM All Rights Reserved.



그리고 끝끝내 내가 언급하지 않았던 영옥(배우 한지민 씨)과 영희(캐리커처 작가 겸 배우 정은혜 씨).



짐작하고 계셨던 독자들도 있겠지만, 사실 오늘 내가 이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도 바로 이들 때문이다. 다른 인물들에게도 저마다가 지고 있는 인생의 짐과 고단함이 존재했다. 또한 고유의 색도 있겠다. 만일, 앞서 말한 열 두 명 생애의 색이 빨주노초파남보, 그리고 그 이외 다른 진한 어떤 색이라면, 영옥과 그의 언니 영희는 각각 블랙과 그레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님의 손길을 일찍 벗어나, 홀로 장애를 가진 쌍둥이 언니를 돌봐야 하는 막막함은 필시, 블랙 그 자체였을 것이고, 사랑하는 동생과 떨어져 살아야 했던 영희의 마음은 늘 비가 내리는 그레이였을 테니까.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녹록지 않다. 많은 것, 아니…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살아야 함은 물론이요, 그것도 모자라 언제나 밝게 지내야 사람들은 호감을 갖는다. 그저 내 몫이려니 여기며 살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꽤나 자주 겪게 되는데, 그걸 또 의연하게 넘겨야만 한다. 그래서 외로운 것이다. 그 외로움을 오롯이 가슴 한켠에 묻고 사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눈물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극 중에서 당사자들만이 알 수 있는 감정선을 정말 잘 그려내서 놀라웠다.



장애인 당사자로 사는 것 또한 녹록지 않다. 앞서 언급한 가족들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당사자로서 겪는 애로사항들이 더 뚜렷하다고 해서 또 그것들과 동행한다고 해서 일일이 토로한다면, 그건 도리가 아니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 받았으면 마땅히 베풀어야 하는 인지상정의 영역을 하지 못하는 자체도 안타까운데 거기서 더 나아가, “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가족과 지인 모두의 입을 통해 앞다퉈 듣게 될 때면, 그게 얼마큼이나 가슴을 뜨겁게 하는지… 과연 사람들은 알까. 주고 또 줘도 모자란 정성 앞에서 그런 위로는 진심으로 감사하긴 하지만, 만족도 되지 못하고 안도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차치하고서라도 가족 지인 할 것 없이 내 모자람을 용납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처할 때까지는 또 얼마나 아팠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서걱거린다. (…)



추가로, 영희의 독백과도 같은 그림의 제목인, ‘영옥, 영희 없는 고독을 좋아하다.’라는 문구는 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끔이나마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젠장! 이 드라마가 내 속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발달장애인과 지체장애인의 삶은 그다지 차이가 많지 않다.



마지막으로, 블랙의 영옥과 그레이의 영희를 한껏 품은 든든한 선장, 정준(배우 김우빈 씨)의 마인드 컬러는 생각건대 화이트이리라. 화이트는 어떤 색이 있어도 다 깨끗하게 바꿔주기 때문이다. 정준이 영옥에게 했던 다짐을 되새겨 본다. 정준의 이 다짐은 이성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해 전해야 할 메시지가 아닐까. 절대 떠나지 않고 끝까지 영희와 영옥을 사랑하겠다는 단호함이 귀감이 된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인생이 주는 풍성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팀 전원에게 이 말로써 감사의 인사를 대신 전하려 한다.



“열다섯 색 무지개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이 드라마, 하영 착해마씸….”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해보고 싶던  가지

1. 생수병에 든 물을 만족할 때까지 콸콸 들이켜고 시크하게 병뚜껑 닫기

2. 차 안에서 양치하기

3. 맘 속에 깊이 자리한 충만한 오지랖을 한달음에 달려가 부려보기 

4. 사랑하는 사람들 꽉 안아주기 :)



2022.06.21 씀

2022.06.22 발행




본문 이미지는 tvN 토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메인 포스터 완전체 안녕 포스터이며 출처 tvN 공식 홈페이지이고 저작권 CJ ENM 있음 밝힙니다. 더불어 해당 글을 향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더라도 본문에 실린 이미지를 사용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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