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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EOFTEARS May 15. 2024

있는 그대로

Photo by Fadi Xd on Unsplash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아마 작년 가을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을 것 같다. 그날은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또 그 전날에도 만만찮은 양의 비가 내린 후여서 조금은 놀랐다. 아니, 사실 놀랐다기보다는 그만 좀 내렸으면 했었다.



이런 바람을 보이지 않는 분께서도 듣고 계셨을까.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는 어느새 시나브로 가늘어지더니 그 후에는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비록 시침은 이미 햇살과는 동떨어지게 멀리 가버려 어둠이 짙어졌고, 한두 개의 가로등 빛이 참으로 귀하게 느껴질 그때에도 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늘이 맑게 개였다는 것을…



무슨 대단한 센서 같은 것이 탑재됐을 리 만무했던 존재가, 깊은 어둠 속에서 창문 틈으로 보이는 귀한 가로등 빛만으로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 원인은 다름 아니라 ‘공기의 냄새’ 때문이었다. 황사니, 미세니, 초미세니 하는 사람의 호흡을 방해하는 훼방꾼들의 놀음에서 벗어나, 정돈되고 한없이 깨끗한 냄새가 바람에 실렸다. 그러다 무의식의 숨을 하나 둘 더할 즈음에는 나무가 흔들려 풀 냄새도 일어났다. 실로 오랜만에 그런 향을 맡았다. 해보진 않았지만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에 갓 뜯은 청결한 필터를 끼고 작동시킨 뒤 코를 박아도 그런 클린함은 맛보기 힘들 거다. 무엇 하나 섞임 없이 순수하게 정화된 공기의 냄새와, 이리저리 휘적대며 흔들리는 나뭇잎의 냄새가 만나니 그야말로 환상이었고,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향이어서 아무도 들리지 않게 허밍을 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달큰’했다.



그때 느낀 감정이 나쁘지 않아(솔직하게 지독히도 좋았으면서) 혹여 망각에게 재차 패배 선언을 하게 될까 싶어 키보드를 두드리려 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오롯이 느꼈던 그 달큰함만 써내려 가기엔 무리였고, 집중할 수도 없었다. 해서 순전히 내 기억에만 의존하기로 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그 기억은 나 자신도 알고 있었고, 읽으시는 당신도 짐작하시듯 얼마 지나지 않아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었다. 물론 그 소량의 뼈대만 가지고도 글을 쓸 순 있었지만, 그날 당시 충만했던 촉촉함과 비교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많이 달라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흔적이 떠오르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선명했나 보다.



그런데, 시일이 한참 지난 시점인 오늘 구태어 기억을 더듬어 이 이야기를 공개하는 이유는, ‘꾸미지 않음’‘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대한 한 줌의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앞서서 적지 않게 서술한 내용들을 가만히 보면, 각종 미사여구들이 있다. 읽는 이에 따라서는 ‘이 사람은 대체 뭔가’라고 생각할 만큼 오글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죄송하다. 어쩌면 본인 기준으로 글에다가 이처럼 조미료를 많이 첨가할 만큼 좋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서, 이와는 정반대인 ‘우리 엄마’의 모습과 살짝 맞대어 보았다.



우리 엄마는 꾸밈없으신 분이다. 눈치는 최고봉에, 타인 높여주는 일에는 달인이지만 그래도 자신의 성정에 담아서 대입해 봤을 때 아닌 걸 맞다고 하시는 분이 아니다. 또 대한민국과 지구촌 전체를 통틀어 현존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인내심이 뛰어난 분이다. 게다가 긍휼은 또 얼마나 많으신지 세상만사의 짐을 홀로 다 지라고 해도 마다치 않을 분이다. 구라 하나 넣지 않은 진심이다.



고집쟁이에, 불순종을 일삼는 등 속깨나 썩인 자식을 아무런 원망 없이 키워낸 놀라운 분이다. 내 캐릭터는 참으로 짙어서 이 또한 거짓이 아니다. 더불어서 나는 남들이 들으면 한없는 한숨의 연기를 자욱하게 뿜어낼 중증의 성인 장애인 아들이다.



모든 어머니는 대단하다고 세상에서는 이야기 한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우리 엄마는 다르다. 남들 같으면 진즉에 졸업하고도 남았을 소대변 뒤처리에, 먹이고, 입히고, 일일이 열거하기에 입만 아픈 갖가지 케어까지… 내가 호흡하며 감정을 흡수하고,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이유가 보이지 않으시는 그분께 전적으로 달려 있긴 하지만 그다음 공은 부모님께 돌려야 마땅하다. 하물며, 지독히도 좋았던 그날의 달큰했던 순간을 맘 속 깊이 담아둘 수 있었던 것 역시 엄마의 희생과 헌신이 전제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 명의 작가로 이름을 떨쳐보고자 하는 욕심에, 꾸미지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족함을 가리려 갖가지 단어로 치장할 때 우리 엄마는 현실의 나, 꾸미지 않은 나, 있는 그대로의 나를 용납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 그런 엄마의 숨소리를 듣고, 말씨를 들으며, 행동 하나하나를 보고, 손수 지어주신 밥을 먹으며 살아간다.



이런 엄마라면 만인에게 자랑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한다는 말로도 한없이 부족한… 그래서 가슴 한켠에 늘 모래알처럼 깔깔하고 나아가서는 헛헛하기까지 한 이 죄스러운 마음을 달래면서 조심스럽게 조금씩이나마 표현해 드리고자 이 글을 쓴다.



8일은 어버이날

12일은 머더스 데이

그리고 오늘은 스승의 날



최고의 부모이자

놀라운 스승이신 엄마 그리고 아버지 사랑합니다.


 


Photo by Fadi Xd on Unsplash

본문 이미지는 “Unsplash”에서 인용하였으며 “cc0 Licence”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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