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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두부 Jan 25. 2021

8. 고양이 음수량을 증진한다는 달콤한 마케팅

고양이 일기 8. 그리고 나는 다시 지갑을 닫았다




정수기 물을 마시는 어린 파이


 

 첫째. 일단 고양이 정수기와 물그릇 액세서리를 사볼까?


 전문가와 시장이 불어넣은 공포를 마케팅으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고양이 보호자는 음수량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당연히 물은 중요하고 어느 정도 경각심과 관심을 가질 필요도 있지만, 그렇게 돈을 쓸 가치가 있는 제품은 얼마나 많았을까?


 우리가 고민하는 동안 2017년 모 정수기 크라우드 펀딩에 1억 원이 넘는 액수가 모인 것을 신호탄으로 이듬해 나온 다른 정수기 크라우드 펀딩에는 4억이 넘는 돈이 모였다. 인스타그램에 고양이를 올린다면 중간중간 음수량을 강조하는 광고를 네댓 개는 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에는 고양이 정수기라는 제품이 해외 기업 몇 군데에서 판매하는 게 전부였지만 고양이 박람회마다 새로 나온 고양이 정수기를 들고 나왔다는 부스가 늘기 시작했다. 십만 원을 가뿐하게 넘는 정수기와 주기적으로 들어가는 몇만 원의 필터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특수하게 제작되었다고 소개하는 모 업체의 예쁜 유리 물그릇을 5만 원 넘게 주고 사면되었다.


 고양이는 흐르는 물을 신선한 물이라고 인식하니, 모터로 쉼 없이 물을 돌려 고양이가 물을 자주 먹도록 유도하는 것이 고양이 정수기 원리다. 파이가 어렸을 적 변기 물에 종종 관심을 가지길래 도자기 정수기를 장만해줬었다.


 어렸을 때부터 기본으로 사용하다 보니 고여 있는 물에 비해 특별히 자발적 음수량이 많이 늘어나는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언제나 우리 집 배경음악으로 물 흐르는 소리가 깔렸고 나는 거슬리는 모터 소리를 뒤로하며 남들은 일부러 백색소음 기계를 장만하기까지 한다고 애써 잠을 청했다. 제발 우리 고양이 안 아프고 물 많이 먹게 해 주세요, 정화수를 떠 놓고 빌듯 무의미해 보이는 물그릇을 씻고 물을 갈아주었다.


삼 개월 고양이 버릇 여든까지 간다



 고양이 정수기뿐인가? 고양이 물그릇과 물그릇에 넣어주는 각종 액세서리도 곳곳에서 팔리고 있다. 물그릇 안에 넣는 용도, 혹은 물 위에 동실동실 띄우는 용도의 장난감을 사서 나만의 물그릇을 꾸몄다. (요즘 대세 물꾸♥) 고양이 취향을 찾겠다며 높은 그릇, 낮은 그릇, 유리그릇, 도자기 그릇, 장소까지 달리 하며 여기저기 물그릇을 놓았다. 로봇 물고기를 넣어주는 사람도 있지만 먹는 물에 굳이 건전지 제품을 넣는 모험을 하고 싶진 않았다.


 열심히 돈을 들인 덕분에 어딜 봐도 물그릇이 찍히는 집에 살았지만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 횟수는 아주 미미했다. 파이나 스프가 혹시라도 물그릇 근처로 가면 나 때문에 놀라서 물을 안 마시고 가버릴까 봐 숨을 죽이고 모든 행동을 멈추며 지켜봤다. 물을 마시면 조용히 내적 비명을 지르며 기뻐하고 물을 마시지 않고 가버리면 서글퍼하길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양이 커뮤니티에 충격적인 사실이 돌았다. 번역된 전문가 글을 요약하면 이랬다. 고양이는 1초에 혓바닥을 4번이나 내리찍어 물을 마신다고 한다. 그렇게 한 번에 혀에 딸려오는 물은 약 0.1mL, 해서 고양이는 초당 0.4mL의 물 마신다. 참고1) 당시 수의사가 요구한 파이의 음수량(450mL)을 자발적 음수로 채운다면... 무려 18.7시간 동안 물을 마셔야 했다.


 '우리 고양이는 알아서 물을 잘 마셔요'가 실은 충분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게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자연적인 증발량을 전혀 계산하지 않고 물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모두가 자발적 음수를 유도하기 위한 각종 지출을 생각하며 통장 잔고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아. 내가 방금 울 때 흐른 눈물의 양이나 우리 고양이가 잠깐 찍어 먹은 물의 양이나 또이또이하겠구나. 10년 전에 그걸 알았으면 좀 더 쩌렁쩌렁하게 알려주지. 비싼 돈 주고 산다는 자연기화식 가습기를 열심히 늘어놓은 셈 쳐야 하나.


참고 1) 10년 전 로만 스토커(Roman Stocker) 남교수를 중심으로 매사추세츠 공대에서 고양이가 물을 마시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여 그 결과를 사이언스지에 올렸다. 해당 링크는 연구 결과를 정리한 기사이다.

"Domestic cats get about 0.1 milliliter of liquid per lap, they found. At 4 laps per second, that's nearly 5 teaspoons (24 ml) a minute.)"

https://www.livescience.com/8924-study-reveals-physics-cats-drink.html



살찐 스프가 10초 동안 물 4mL를 마시고 있다



  둘째. 그러면 간식을 통해 음수량을 늘려볼까?


  모 업체의 동결건조 트릿이 유행하자 너도나도 박람회에 동결건조 전문 업체를 차려 부스를 내던 시절을 넘어 요즘은 액상형 간식(스틱에 넣어 짜먹이는 간식)이 절대다수가 되었다. 고양이를 잘 모르는 사람조차 츄르라는 단어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의도적인 유료 바이럴과 자발적인 무급노동 바이럴이 한데 묶여 고양이 하면 사료보다도 츄르를 먼저 외치게 만들었고 이는 수많은 국산 액상형 간식 양산으로 이어졌다. 얼마 전 오프라인 용품점에 갔다가 주식 코너보다 더 많고 화려한 간식 코너를 보고 아연실색한 적도 있다. 고양이 집에 놀러 오는 사람도 항상 츄르를 사들고 왔다. 몸에 좋은 것도 아닌데.


 건사료를 먹이면서 중간중간 자극적인 츄르가 아니라 성분이 좋은(^^) 국산 간식을 챙겨주면 멋진 '집사', 이 간식을 그냥 주지 않고 물을 타서 먹이면 더 멋진 집사, 고양이 기호성도 챙기기 위해 간식을 가운데에 짜 놓고 섬처럼 주변에 물을 둘러 먹이면 멋진데 센스도 넘치는 집사, 같은 식으로 레벨업이라도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간식 업체들은 바이럴 광고마다 '음수량'이라는 키워드를 지령처럼 넣기 시작했다. 기껏 동결건조로 말려놓은 트릿 간식에 물을 적셔서 먹이라는 가이드를 넣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최신 간식 트렌드가 탄생한다. 음수량을 위한 간식!


간식 창고를 습격하는 검은 궁두니



 나도 당시에는 간식을 조금씩 사며 물을 챙겨주었다. 역시 그냥 희석해서는 잘 먹지 않았고 섬처럼 둘러줘야 그나마 물을 좀 더 많이 마시게 할 수 있었다. 너무 맹탕이면 먹지 않고 엄한 간식만 버리게 되니 고양이와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하며 간식에 물을 탔다.


 그런데 아무리 희석해서 먹인다고 해도 간식은 간식이다. 물을 타서 연해졌더라도 간식 하나를 다 먹었으면 간식 하나의 나트륨을 얌얌 먹은 것이다. 불필요한 성분을 과하게 섭취하지 않고 입맛을 버리기 전에 간식 급여 가이드를 적당히 따를 필요가 있었다.


 간식은 섭취 칼로리의 25% 이상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꼭 저런 기준을 정확하게 계산해보지 않아도 당연히 정해진 기준치를 맞춰서 연구된 주식보다는 적게 먹여야 한다. 간식은 기호성을 위해서 적당한 염분과 조미료를 첨가하였고, 많이 먹이면 인과 퓨린 등을 제한해야 하는 만성신부전 고양이 식이 관리에 방해가 된다.


 업체에서도 되도록 하루 1포(스틱) 이하로 먹이라고 권하기도 한다. 1포로 먹일 수 있는 물의 양은 아무리 많아도 50mL 안팎이었다.


 간식으로 필요 음수량을 다 채우려면 고양이가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야 했다. 지난 글에서 인용한 <반려동물 영양학(왕태미 수의사)>에서도 육수로 음수량을 채우는 것은 다른 미네랄(인, 퓨린)도 함께 섭취하기 때문에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 점이 눈에 띄었다.


모든 간식을 한강물로 급여하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고양이라 다행이야> 카페에서도 누군가 그랬다. (삭제되었는지 글을 못 찾았다..) 주식을 생산할 수준도 안 되는 업체가 만든 간식을 주식보다 더 비싸게 주고 먹이고 싶냐고.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상식적으로 영양학적 균형이 잘 이루어진 주식을 법적 기준에 맞춰 생산하려면 간식보다 몇 배의 연구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간식에는 따로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영양학적 기준(AAFCO 영양 기준 등)이 있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간식은 최신 유행에 맞추어 우후죽순 생산될 수 있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국산 건사료 시장은 이미 몇 번의 실수로 많은 고양이를 아프게 만들었고, 이를 언급하는 보호자와 소송전도 불사하는 '볼드모트 업체'들로 신뢰도를 대폭 잃은 상태였다.


 모 사료를 연구소에 분석 의뢰하며 특정 성분이 미달되어 많은 고양이가 죽거나 병이 생겼다는 문제를 제기한 보호자가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오르고, 100장이 넘는 다른 보호자의 탄원서가 모여 무혐의 판정을 받아낸 것이 불과 2017년이다.


 그나마 국산 건사료는 있어도 국산 주식 캔(습식사료)은? 당장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기는 한가? 그런 시장에서 생산되는 간식과 간식 캔 또한 주식과 주식 캔보다 덜 신뢰해야 정상이었다. 당장 본인조차도 한약을 챙겨 먹지 않고 아프면 한의원이 아닌 일반 병원에 가면서 한의사가 만들었다는 간식에는 쉽게 지갑을 열고 있었다.


 기술력을 생각하자 끝없이 가격을 올리며 삐까뻔쩍해지는 국산 간식 신상품을 봐도 이제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았다. 나한테 간식을 팔고 싶으면 더 제대로 증명해 봐, 하고. 지금도 고양이가 먹는 주식과 영양제 퀄리티를 높이는 것보다 간식에 먼저 열광하고 간식에 더 많은 금액을 지출하는 분이 계신다면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매일 먹는 밥과 어쩌다가 먹는 간식 중 어느 것에 더 신경 써서 지출해야 할까?



물론 그래도 간식은 마시쩡



 자 그러면 이제 정리해서 음수량 서브웨이 주문 좀 할게요. 하루 기본 음수량은 체중 1kg당 50mL는 넘게 주시고, 자발 음수와 건사료로 섭취하는 수분은 거의 없으니까 그냥 다 빼주세요. 간식은 과하지 않게 한 줄만 뿌려주시고요.


 수의사가 요구한 음수량 늘리기는 참 까다로운 퀘스트였다. 인터넷에서 제시하는 방법을 모조리 사용해도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오히려 과도하게 책정된 양을 따라가고 채워야만 한다는 생각에 고양이를 더 붙잡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기까지 했다. 반려묘를 기르는 수의사도 실제로 이렇게 물을 요구량에 맞게 주고 있는지, 준다면 어떻게 주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더는 음수량을 증진해준다는 아이템을 봐도 지갑이 열리지 않았고 양손 가득 건사료를 꼭 쥐고 있는 손에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 건사료를 인제 그만 놓아야만 한다.




오늘의 한 줄 요약 : 건사료가 주식인 한 그 어떤 상품에 지출을 해도 음수량 요구치를 따라가기 버겁습니다. (그리고 또 말하자면 그 음수량 요구치는 과대 해석된 부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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