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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두부 Dec 08. 2020

4. 고양이 살찌우는게 제일 쉬웠어요

고양이 일기 4 건사료만 철저하게 예습, 복습하면 쪄요





길어지고 있는 파이




 파이와 스프가 자라면서 많은 일이 있었다. 둘 다 여아인 줄 알고 입양했더니 동물병원에서 남아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남아는 중성화를 제때 하지 못 하고 발정이 먼저 오면 스프레이가 습관이 된다는 이야기에 겁을 집어먹어 무게가 차자마자 빠르게 불임 수술을 하기도 했다. 고양이는 비 온 뒤 죽순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다. 지난번 오래된 병원 기록을 뒤지다 5개월 무렵일 때 2.6-2.8kg가 된 것을 발견했으니 둘 다 덩치가 작은 고양이는 아니었다.



 스프가 드러누운 노트북이 힘없이 벌어지며 뽀각 했을 때는 역시 저렴한 한성 노트북이라 약하다고 생각했다. 나눔받은 캣폴이 점점 휘다가 쓰러졌을 때에도 저렴한 캣폴이라 작은 고양이 우다다도 못 견딘다고 생각했다. 옆구리살이 슬그머니 생기기 시작했을 땐 잘 먹어서 원시주머니가 생기고 있는 거라고 믿었다. 이 정도 살집은 인터넷에서 보이는 고양이마다 다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가 날 밟고 지나갈 때 얽 소리가 나는 건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고양이를 완전 돼지로 만들었다며 욕하는 댓글을 받았을 때는 익명 사이트라 어쩔 수 없이 받는 악플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두살이 넘었을 때부터는 가는 병원마다 수의사가 이젠 고양이 체중관리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고양이 뱃살을 너무나 귀여워하고 웃으면서 가볍게 말해서 그런지 별로 심각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파이와 스프는 2018년 6월 20일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만성신부전 1-2기 진단을 받았고 처방사료를 퍼먹으며 2019년 1월 15일 최대 체중을 달성한다. (파이 9.99kg, 스프 8.8kg)




최대 체중 시절..................




 2016년 미국 반려동물비만방지협회(APOP)는 미국 고양이 중 약 60%가 비만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의 다른 동물병원에서는 2006년에 비해 2016년의 고양이 비만 비율이 169%나 증가했다고 말했다. 참고1) 가파른 상승 속도로 보았을 때 글을 쓰고 있는 2020년에는 고양이 비만율이 훨씬 올랐으면 올랐지 줄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집 고양이도, 남의 집 고양이도, 인스타 추천 동영상에 뜨는 고양이도, 트위터에 도는 웃긴 고양이 움짤도, 틱톡에서 유명한 고양이 스타도 대부분 살이 쪘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고양이가 살이 쪄서 웃길 수록 더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왕크니까 왕귀엽다고 외쳤고 이렇게 뱃살이 많을 거면 고양이로 태어날 걸 그랬다는 밈이 돌았다. 예전엔 고양이가 너무 살쪄 보이게 나온 사진은 혼자 찔려서 눈치보며 인터넷에 올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오히려 살찐 사진이 더 인기를 끌어 당황한 적도 많다. 


참고 1) 매일경제 "뚱냥이 아무리 귀여워도"…반려동물 비만 위험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7/07/441069/



 고양이가 어쩌다가 이렇게 살이 쪘을까? 그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1. 건사료 2. 건사료 3. 건사료




그저 눙물만 흐르는 사진



 고양이 체중의 최대 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시판 건사료다. 건사료는 살이 찔 수 밖에 없는 음식이다. 수분이 70-80%인 습식에 비해 수분이 10% 이하인 퓨어한 영양성분 덩어리니까 그렇다. 똑같이 한입을 먹어도 칼로리가 훨씬 높다.


 탄수화물도 다른 형태의 식사보다 많이 들어간다. 저렴한 사료에는 육류보다 곡류가 싸니까 당연히 탄수화물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고, 고급 사료에도 사료의 형태를 잡기 위해 일정비율 이상의 탄수화물이 들어간다. 습식에 겔화제를 넣듯 건사료에는 탄수화물을 필수로 집어넣어야 모양이 잡힌다.



 그레인프리라며 각종 곡물을 빼고 고기 비율을 높인 듯한 건사료가 쏟아지고 있지만 그건 단지 곡물 대신 다른 탄수화물 원료가 들어갔다는 의미이다. 그나마도 '그레인(쌀, 옥수수 등)' 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감자, 타피오카 등 혈당 지수(GI 지수)를 멱살잡고 짤짤 흔드는 대체 탄수화물을 슬쩍 집어넣는다.


 혈당 지수가 뭐냐고? 섭취한 탄수화물이 소화되어 혈당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속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소화가 잘 되는 고탄수화물(단당류, 백미, 감자 등)일수록 혈액 속으로 들어가는 속도가 빨라 혈당 지수가 높다. 고양이는 탄수화물 대사 과정이 다른 동물에 비해 특이한 편이다. 자세한 원리는 이과 출신 전문가가 잘 정리해두었을 테고, 단순하게 요약하자면 고양이는 혈당이 올랐을 때 이를 적절하게 조절할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동물이다.



 건사료를 자율급식하면 만성적으로 고혈당이 유지되기 쉽고 이는 비만으로 가는 급행열차나 다름없다. 지방만 축적되는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이 혹사당하고 수시로 허기를 느껴 자꾸 탄수화물을 찾게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알 것이다. 탄수화물이 얼마나 중독적인지. 또한 부족한 수분으로 만성 탈수에 시달리는 동안 목마름을 허기로 착각하여 괜히 밥을 더 먹게 만들기도 한다.


 도긴개긴이어도 감자가 듬뿍 들어간 그레인프리 사료를 먹이느니 현미가 조금만 들어간 건사료가 차라리 나을 정도이다. 감자(탄수화물)는 우리 파이와 스프 살을 만들어준 일등공신 중 하나다. ^^ㅗ 다른 하나는 나! 




 참고로 건사료에서 탄수화물 함량 표기는 AAFCO 기준에서도, 법적으로도 의무가 아니다. 고양이는 탄수화물을 챙겨먹을 필요가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란다. 탄수화물 함량을 체크해서 먹이고 싶은 사람은 각종 성분함량을 더하고 빼서 탄수화물 비중 추정치를 구하는 노가다를 거치고 있다.


 남들이 해놓은 노가다를 대신 골라 먹으려면 'PFC비율'을 검색해보면 된다. PFC비율은 단백질 : 지방 : 탄수화물 순으로 전체 열량에서 각각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한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무조건 탄수화물 비율이 낮을 수록 좋다. 건사료를 먹이고 있다면 앞으로 사료 선택 전에 탄수화물 비율을 실제로 계산해보길 권한다. 높은 비율에 깜짝 놀랄 테니까.


 자연에서 고양이가 섭취하는 탄수화물 비율은 약 2-5% 이하라고 한다. 사냥감 내장 안에 소화가 덜 되어 남아있는 곡류 등을 섭취하는 게 전부라는데, 건사료는? 20% 이하면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 저렴한 사료는 40%를 넘기도 한다.




'고양이 사료'로 검색해서 나온 첫 번째 제품. 100에서 다른 성분 비율을 더한 것을 뻰 22%가 탄수화물 비율 추정치이다.




 이렇게 살이 찌기 쉽고 적합한 식이가 아닌데 왜들 그렇게 건사료를 먹일까. 자긴 고양이 주인이 아니라 '캔따개'라며 엄살을 부리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고양이 캔을 따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봉투에 담긴 건사료만이 신뢰와 현대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시리얼 광고처럼 아홉 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이 함께 들어 현대 기술과 영양학이 꽃피워낸 완벽한 발명품이라도 되는 양 엉터리 수제간식 레시피마다 건사료를 갈고 으깨는 부분이 나오곤 한다. 건사료는 봉지를 개봉하는 순간부터 산패되기 시작하며 보존제를 충분히 넣었어도 수분과 만나면 내용물이 분리되고 상하기 쉽다. 세균 가득한 손으로 주물럭댄 사료가루 반죽를 보관했다 먹여서 배탈이 나기도 한다.


 오프라인 용품점이나 동물병원 용품 코너에도 각종 건사료 봉투만 빼곡하다. 캔사료는 마이너해 보이고 용품점 구석에나 있으니 자취생이 반찬으로 때울법한 불량식품처럼 느껴지고도 남는다. 자연식이나 캔식 접근성이 낮아지면서 습식을 하면 불안하고 건사료를 토핑으로 얹어주면 어쩐지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영양학적 균형을 이룰 것 같다는 착각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건사료는 영양제가 아니고 그냥 농축된 음식일 뿐이다. 


 만화에서도 쥐는 치즈를 먹고, 토끼는 당근을 먹고,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고양이는 건사료를 먹는다고 했단 말이다. (음?) 고양이는 씹는 것을 좋아해서 바삭한 건사료를 좋아한다는 설도 얼핏 본 것 같다. (자연에선 곤충 마니아였을까?) 하지만 진짜 솔직하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본다. 사람이 편하고 가격이 싸서 자꾸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건사료는 편하다. 1930년대 P사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건사료를 처음 만들어낸 이후 반려동물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익스트루전 사료를 만드는 방법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각종 원료를 고온에서 익히고 한데 갈아 균일한 분말로 만든다, 분말을 증기로 쪄내 고압으로 방출한다, 겉에 기호성을 위한 기름을 코팅하고 고온으로 익히는 동안 사라진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첨가물을 바른다, 오랜 기간 상하지 않고 견딜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보존제도 적당히 더한다.


 역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모든 원료를 원래 형태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고온/고압을 사용하여 균일하게 만들어 놓는다는 부분이다. 우리는 건사료에 쓰인 고기가 어떤 상태였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다. 고기 상태를 떠나 고기 외에 다른 것이 얼마나 들어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 건사료 라벨에 나오는 각종 부산물(~밀meal, ~분, ~분말, 건조~ 등) 표기를 읽는 방법은 이제 반려동물 보호자 사이에선 상식이다. 내가 굳이 시간 들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얼마 전 모 습식사료에서 파리 번데기 이물질이 나와 떠들썩했지만 건사료였으면 번데기가 고온에서 구워지고 가루가 되어 그저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되고 아무도 몰랐을게 분명하다. 물론 해당 습식을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도 안 먹이고 있으니까. 




 건사료와 부산물의 관계가 금시초문이라면 2011년에 출판된 <개.고양이 사료의 진실(책공장 더불어)>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거나 <개와 고양이의 사료에 관한 진실(Pet Fooled, 2016)> 다큐멘터리를 어디선가 구해서 보면 된다. 인디 다큐라 정식으로 한국에서 볼 방법은 없고 여러모로 귀찮아서 나도 읽거나 보지 않았지만 많은 추천을 받는 작품이다.

 당장 2019년 대한민국에서 사료에 안락사 약물이 검출되었다며 떠들썩하게 기사가 난 적도 있다. 참고 2) 건사료 속 탄수화물만 걱정해야 하는 줄 알았더니 안락사된 유기동물 사체를 비롯해 인간 음식으로 판매할 수 없는 동물 부산물(깃털, 부리, 발톱 등)이 건사료에 숨어 들어간다는 문제 제기가 수십 년째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었다.

참고 2) 개, 고양이 사료의 불편한 진실 [한국일보]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1911041509014667 




 만드는 사람 뿐일까? 건사료를 유통하고 판매하는 사람에게도 편하고 보관하고 먹이는 사람에게도 편하다. 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품을 어떻게 거절할까. 습사료에 비해 보관, 급여가 간편하기도 하지만 가격까지 저렴하다. 2020년 오픈서베이에서 진행한 반려동물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건식 사료를 급여한다고 응답한 그룹의 월 평균 사료 지출 비용은 6.0만원, 습식 사료를 급여한다고 응답한 그룹의 지출 비용은 10.4만원이다. 참고 3)


참고 3) [2020 트렌드리포트 반려동물편] 반려동물 보호자들의 소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https://www.healingnlife.com/news/articleView.html?idxno=383



 이제 곧 2021년인데 일부 수의사의 주장대로 건사료가 특별히 '역사가 길고 안정적이라서' 먹이는 게 아니라 '싸고 편해서' 먹이는 거라고 인정할 때도 되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바보가 아니다. 우리는 건사료 업체별로 일어난 리콜 사례와 각종 사고를 너무 많이 봤다.




하지만 사료로 꼭꼭 다져진 10kg 고양이




 왜 싸고 편하다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하는지 배우고 공부하니 그제야 고양이 살을 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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