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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두부 Jan 14. 2021

7. 수의사 가라사대, 처방사료와 물을 먹이거라

고양이 일기 7. 초기 만성신부전 투병 입문기




나아는 사막 출신이라 물을 싫어혀~!!



갑작스럽게 나는 고양이 다이어트보다 고양이 만성신부전 관리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제안한 만성신부전 초기 관리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수의사의 제안 (1) 처방사료를 통한 식이관리


 병원에서는 비싼 신부전 처방사료를 안겨주었고 나는 집에 오자마자 소분해놓은 기존 사료를 모두 버렸다. 사료 자체의 결함은 아닐 수도 있다. 수의사는 큰 기업에서 판매하는 사료는 회전율이 활발하여 잘 소진되는데 이런 유명하지 않은 사료는 수입 과정에서 방치되어 변질하기도 한다고 그랬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제야 판매를 기다리며 온도, 습도, 벌레, 쥐 등을 완벽하게 고려하지 않은 창고에서 방치되고 있는 사료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건사료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하던 나답게 나는 처방사료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이제는 만성신부전 초기 단계에 단백질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온 상태이다. 사실 신장질환을 앓는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단백질 제한 단독'의 연구는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거의 없다. 그동안은 쥐를 대상으로 했거나 단백질 제한과 인 제한을 엄밀하게 구분하지 않고 동시에 진행한 연구 뿐이었다. 참고1)


 단백질 제한은 비유엔(BUN) 수치가 상승하기 시작하는 말기 단계에서나 의미 있는 처치에 가깝다. 초기 만성신부전 식이관리의 핵심은 단백질보다 '인'이다. 인(Phosphorus)은 뼈에도 세포에도 혈액에도 몸 속에 흔하게 있는 미네랄이지만, 섭취된 인을 신장이 제때 배출하지 못 하면 고인산혈증 등 대사 장애가 발생하기 쉽다. 몸 속에 많아진 인은 칼슘과 결합하여 석회화를 유발하여 주요 장기의 기능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된다.


 종합하면 신장 기능이 떨어지는 몸에는 반드시 인이 일정 비율 이하로 유지되도록 인의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하지만 단백질을 미리부터 제한하게 되면 체중감소, 빈혈, 저알부민혈증과 같은 다른 문제가 생기기 쉽다. 참고 2) 가뜩이나 체력이 부족하고 피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신부전 고양이에게 단백질 제한은 근육을 부족하게 만들고 질환과 싸울 체력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 처방사료는 인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단백질을 제한하라는 구식 케어방법도 함께 따르고 있는 제품이었다.


(참고1 : <Canine and Feline Nutrition, 2011년 개정> 코스믹라테님 블로그에서 일부 번역, 32챕터 만성신부전

참고2 : <임상가를 위한 소동물 신장학 진단과 치료지침, 2013 개정, 현창백> 3장 신부전증의 치료제와 식이요법)



 그렇게 강제로 단백질 비중을 낮추기 위해 저급 탄수화물 원료를 다량으로 넣었고, 높은 탄수화물 비중으로 높은 칼로리를 자랑했다. 당시 내가 찾아먹이던 낮은 칼로리 일반사료에 비해 킬로그램 당 약 1000kcal나 칼로리가 높았으니 말 다 한 셈이다. 탄수화물 비중은 길냥이 사료에서나 볼 법 한 40.2%라는 높은 비율이었다. 수의영양학 전문가인 왕태미 수의사님은 저서 <반려동물 영양학>에서 고양이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탄수화물 비율이 36% 이하인 식이를 공급해야 한다고 적기도 하셨단 말이다.


 고양이는 사람처럼 침샘에서 탄수화물을 소화하는 효소인 아밀라아제, 아니 아밀레이스가 분비되는 것도 아니며 체내에서 생산되는 아밀레이스도 개에 비해 약 1/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양이는 탄수화물 소화하기도 어렵다지, 혈당조절 능력도 부족하대지, 단백질을 피하자고 탄수화물을 먹이면 또 다른 병을 만나는 게 당연해 보였다. 아밀레이스를 독일식 발음인 아밀라아제라고 적으면 노땅이라는 함정을 방금 살짝 피했다. (^^)


 결정적으로 이 모든 걸 종합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제법 비쌌다. 동물병원 판매가로 킬로그램 당 가격이 이만원을 훌쩍 넘었으니까. 당시 이만원을 넘는 사료는 오리젠을 비롯한 일부 '금사료' 뿐이었다.



현미, 옥수수 글루텐박, 닭, 돈지, 통밀, 분쇄정맥, 밀 글루텐, 닭간향료. 완두콩단백. (kg당 23333원)



 그래도 우리 고양이는 아팠고 주치의 격인 수의사는 처방사료를 권유했다. 병원에서 쥐여주는데 전문가의 말을 거역하고 내 가치관을 따를 용기는 없었다. 실제로 급여 중이던 사료가 문제인게 맞았는지 처방사료로 바꾸자 마자 SDMA 27까지 치솟았던 스프의 수치가 몇개월 뒤 12까지 크게 감소하긴 했다. 처방사료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수치 개선 하나만 믿고 먹이기에는 이런 찜찜한 부분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동시에 이걸 발견하지 못 하고 여전히 그 사료를 먹였다면 더 심각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파이와 스프 둘 다 수치가 나아진 것은 사실이니 처방사료 욕을 슬그머니 관두고 듬뿍듬뿍 퍼주기 시작했다. 조금씩 빠지는 시늉이라도 하던 고양이 체중은 순식간에 1-2kg가 추가로 더 불어났다.


 그렇게 반년 정도가 지나자 수의사는 자기가 근래 진료했던 고양이 중 가장! 일등으로! 큰 고양이라며 파이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야생성이 강한 사바나캣도 진료하는 서울 강남구 한복판의 고양이 전문병원이었는데도 손에 꼽히게 크다고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도 웃으시니까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또 남탓하기)




  수의사의 제안 (2) kg당 50mL 이상의 음수량 확보


  수십년간 건사료의 안전성과 유용함을 역설하던 수의사들이 어느샌가 우유 없는 생 시리얼, 물 없는 전투식량 등의 비유를 들어가며 물을 하루에 몇백mL 이상 마시게 하라고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 양은 kg당 25mL에서 70mL로 변동 폭이 꽤 크지만 아무튼 많았다. 고양이 신장 건강을 위해서도, 방광에 있는 슬러지를 위해서도, 어딘가에 생긴 결석을 위해서도, 변비를 위해서도 좌우지간 각종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물을 많이 마시게 하라고 했다. 수분이 10% 안팎인 건사료 회사는 부족한 수분을 보호자 몫으로 돌리며 면피용으로 라벨 뒤에 문장을 넣어두었다. '충분한 양의 물과 함께 급여하세요.'


 곳곳에서 이 가루를 타서 먹이라고, 이 엑기스를 희석해 먹이라고, 이 우유를 먹이라고, 이 육수를 먹이라며 너도나도 음수량 증진을 돕는 물건을 팔고 있었다. 어떻게든 고양이 입안으로 물을 넣으려고 용을 쓰는 이 유행의 가장 큰 한계점은, 아무도 건사료를 내려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여전히 건사료를 먹이고 있었다




 위 문단에서 수의사들이 요구하는 고양이 필수 음수량이 kg당 25~70mL 라는 언급을 했다. 대강 평균을 냈는지, 당시 내가 다니던 병원의 수의사는 kg당 50mL는 마시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이는 대략 9kg, 스프는 8kg였으니 둘이 각각 하루에 마셔야 하는 양이 450mL, 400mL인 셈이다. 스틱간식에 물을 한강으로 타서 먹여도 한 번에 40mL 정도를 먹게 하는 게 한계였다. 한가득 탔다고 생각해도 실제로 용량을 재어보며 넣으면 턱없이 부족한 양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공주사기를 구해 강제급수를 시작했다.


 (나중에 또 언급하겠지만 고양이 체중 kg당 음수량을 계산하는 방법은 파이와 스프처럼 비만이거나 체구가 큰 고양이에게는 필요 음수량이 과대 해석될 여지가 있다. <Fluid, Electrolyte, and Acid–base Disorders in Small Animal Practice(2011년 출판, 코스믹라테님이 블로그에서 일부 번역)>에서는 섭취 칼로리와 동일한 양의 물을 먹이면 충분하다고 제안한다. 1kcal당 물 1ml. 혹시 몰라 미리 적어둔다.)



 나의 시행착오를 쓰는 일기인 만큼 강수(강제급수)에 대해 적지만 역시 강수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주사기에 맹물을 담아 고양이 입안에 강제로 넣어 물을 마시게 한다? 고양이를 기르지 않는 분도 전쟁 같은 상황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가 굉장히 너그럽고, 고양이와 보호자가 서로를 잘 이해하고 합이 잘 맞아야만 가능한 것이 강수고, 그마저도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강수이다.



 지금부터 역지사지의 정신을 살려 내 입안에 나보다 대여섯배는 큰 괴생명체가 나타나 물을 먹여준다며 물을 입안에 한가득 쏘아준다고 상상해본다.


 나는 겁에 질려서 도망가려고 애를 쓸 것이다. 이 와중에 서로가 다칠 위험도 컸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주사기 꼭지에 연약한 입안이 찔려 아프기도 한다. 힘이 꽤 차이가 나는 데다 내가 신뢰하는 괴생명체이니(?) 죽자 살자 싸우진 않고 이젠 그만 조금 봐주고 체념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 녀석,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걸 깜빡했다. 떡을 찧어도 번갈아 가면서 찧고 손으로 다듬고 찧고 다듬어야 하는데 내가 숨 쉴 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물을 마구 밀어 넣는다. 리듬이 깨지고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운데 신호를 줄 방법이 없다. 내가 정말 위험한 순간에도 괴생명체에게 의사를 전달할 방식이 없다.


 결국 나는 사레들려 눈물이 나도록 기침을 한다. 사레만 들리면 다행인데 어느 날부터 나는 평소에도 기침이 자꾸 나오기 시작하고 숨을 쉬는 게 힘들어진다. 어딘가에 염증이 생겼는지 열이 펄펄 끓어 어지러워 움직이기도 힘들어진다. 목소리도 달라지고 좋아하는 밥도 안 먹으며 웅크리고 겨우 숨을 쉬고 있는 나를 괴생명체가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안겨서 병원에 갔더니 괴생명체가 폐렴에 걸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린다...... 라는 짧은 단편 소설 배드엔딩이 완성되었다.



이게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일이니?



 파이와 스프는 몇 번 강조했지만 굉장히 너그러운 고양이다. 강수를 해도 적당한 수준이면 봐주며 마셔주었고 나를 많이 미워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여러 가지 단점이 무서워 강수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진행되었다. 



 강수의 위험성 첫 번째는 당연히 흡인성 폐렴(오연성 폐렴)이다. 고양이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식도와 기도가 연결되어 있다. 물이나 음식물이 식도로 마저 넘어가게끔 기도에 덮개가 달려 있는데, 보호자와 합이 안 맞아 물을 강제로 마시게 되면 덮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물이 기도로 넘어가기도 한다. 해당 부위가 이물질로 감염되면 급성으로 염증이 번질 수도 있다.


 폐렴에는 보통 고열과 호흡곤란이 동반되므로 제때 병원에 가서 원인을 밝혀내지 못 한다면 생명이 매우 위험해진다. 따라서 강수는 천천히, 고양이 상태를 면밀하게 관찰하며 깨끗한 물로 진행해야 한다. 가끔 고양이가 맹물에는 반항이 크다며 간식을 물에 개어 강수를 시도한다는 보호자를 보면 아찔하다. 그러지 말아달라고 댓글을 달기도 했는데 보셨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는 한 번에 물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물을 지나치게 많이 마시면 몸 속에 있는 나트륨 농도가 낮아져 저나트륨혈증이 발생한다. 약하게는 두통, 구토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심하면 정신 이상, 발작, 기절, 사망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질환이다. 고양이도 인간과 정확히 동일한지, 위험한 물의 양이 어디까지인지는 못 찾았지만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단숨에 수분을 늘리면 몸 속 전해질 농도가 변화하고 항상성을 잃으니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강수는 아주 조금씩 여러 번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 이상적이다. 여기서 더 무서운 부분은 우리는 지금 하루에 몇백mL의 물을 마시라는 요구를 받고 목표치를 무리하게 설정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먹여야 하는 물은 한참 많으니 마음이 급하고, 고양이와 하루에 열 번을 넘도록 지겹게 싸워서 투병을 하면 사람이 지친다. 슬그머니 한 번에 투여하는 물의 양이 늘어가는 미래가 뻔했다.



 그 외에 고양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고양이가 다치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그다치 추천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강수하는 방법은 생략하려고 한다. 당시 나는 한 번에 약 10-15mL 정도씩 하루에 3-4번 정도 강제급수를 시도했다. 한 번에 이것보다 더 많이 마시게 하기엔 고양이 건강이 불안했고, 횟수를 더 늘리자니 사람이 번거롭고 힘들었다. 고양이가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물을 강제로 마신다고 해도 하루에 30~60mL를 마시게 하는 게 고작이었다. 환묘 카페에는 하루에 열 번 넘게 강수를 나누어 하는 사람도 제법 있어 참 대단한 분들이라고 생각했다.



파이가 얼마나 너그러운 고양이냐면요
굉장히 너그러워요 (부비부비적)



 종합해 볼까? 건사료로 섭취하는 수분은 없다고 치고, 하루 한 번 간식으로 최대 40mL 정도 마시고, 강제급수로 60mL 정도 뻥튀기해도 수의사가 요구하는 물을 반의반만 겨우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쯤만 마셔도 고양이가 자발적으로 물을 마시는 것이 크게 줄어들어 그것도 없다고 쳐야했다. 


 수의사는 물을 마시게 하라고 했지만 어떻게 하라고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제는 인터넷에서 제안하는 음수량 증진 방법을 찾아 돌아다닐 차례였다. 지갑을 한번 열어보자!



 오늘의 요약 : 수의사는 처방사료와 물을 먹이라고 하셨어(X2) 야이야이야~ 그런데 방법을 몰라~ 지갑도 열고~ 눈물도 흘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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