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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Mar 29. 2022

싱건지

세밑한파가 매섭다.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또 한 해를 생각해 볼 때 마음이 갑갑해지곤 한다. 세상살이가 녹녹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지수가 있다면 먹어가는 나이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퍼센티지가 아닐까. 마음이 답답해지면 몸도 무겁고 뭘 먹어도 쉽게 소화가 되지를 않는다. 이럴 때 생각이 간절한 하나가 있다. ‘싱건지’  

   

싱건지는 ‘싱거운 김치’라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다. 표준말로는 동치미라 한다. 어릴 적부터 싱건지라 들으며 먹었기 때문에 동치미라하면 왠지 그 맛이 살지 않는다. 싱건지를 만드는 법은 통무에 소금물을 부어서 담근다. 이때 생강·파·청각·풋고추를 묶어서 넣는다. 통배추 또는 맑게 거른 육수나 찹쌀 끓인 것을 넣기도 한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내린 눈이 얼어 바싹거리는 소리를 낼 때 땅에 묻은 독의 뚜껑을 연다. 시금한 내음이 올라오고 입에 침이 고인다. 바가지로 휘휘 저어 떠서 일단 한입 마신다. 탄산의 톡 쏘는 맛, 생강의 향긋한 맛, 청각의 비릿한 맛, 배추의 들큼한 맛, 무의 아릿한 맛에 겨울의 찌릿한 맛까지. 시린 손마디를 호호 불어가며 함박에 건더기와 멀국을 퍼 담는다. 솜이불을 펴 뜨뜻하게 데워놓은 아랫목에서 밤고구마를 베어 물고 김을 허허 불어내다 물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그릇을 집어 들이키는 그 청량한 맛이란!   

  

핸드폰을 들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대뜸 “싱건지 담았어요?”라고 물어본다. “잘 익었다. 얼른 와서 퍼가라!”라고 하신다. 어느새 답답한 가슴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이 든다. 싱건지, 네가 있어 이 팍팍한 날들도 기껍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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