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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Jun 17. 2022

떠난 직장 동료를 애도하고 기억하며

얼마 전에 부고 메시지를 받았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 동료의 부고였다. 그가 회사를 옮기고 얼마 동안 연락이 뜸했다. 연락을 보내도 간단한 문자 답신만 왔다. 새로운 일터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그랬거니 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는 사십 대 중반으로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참 밝고 재주 많은 친구였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해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이직 결정이었다. 이제 살림 좀 피겠구나 했는데 들려 온 건 안타까운 소식이라니….


그와 내가 함께 일했던 부서는 인원이 서너 명이어서 거의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일 뿐 아니라 개인사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눴다. 주중에는 매일 점심도 같이 먹고 퇴근 후에 거리낌 없이 어울린 시간이 거의 십 년이 다 되었다. 함께한 시간이 가족보다 더 많았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던 동료였다.

     

퇴근 후에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빈소에 놓인 그의 사진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영정을 향해 엎드린 채 탄식이 나왔다. 두 번의 절을 마치고 상주를 바라보니 아이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무거운 목인사를 마치고 맞은편의 제수씨를 향했다. 이미 얼마만큼 울어서인지 소리 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제수씨의 손을 꼭 붙잡는데 그렁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개를 들고 눈을 껌뻑이며 빈소를 나왔다.


화장실에서 비통한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오다 깜짝 놀랐다. 그가 다시 살아서 돌아다니는 듯했다. 자세히 보니 그의 형이었다. 그는 평소에 형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는데 이제 그 형 혼자 남아 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챙기고 있었다. 문득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서 본단 말인가. 두건 쓰고 도포 입고 가서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네.’라는 시구가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후 나는 며칠 동안 멍한 상태에 있었다. 이전에 받은 부고들은 연로한 어르신들의 부음이 대부분이었고 그러려니 했다. 장례식장에서도 호상입네 해서 가슴이 뭉클한 적도 드물었다. 하지만 나보다 젊고 절친한 동료의 슬픈 소식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제 죽음이 나와는 동떨어진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라 가까운 사람이나 자신에 닥치는 사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핸드폰 사진을 뒤져보니 사무실에 망중한을 즐기는 그의 사진이 나온다.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가 버린 그가 야속하면서도 그립다. 언젠가는 상처가 서서히 아물 듯 그의 빈자리도 메워지겠지. 하지만 세월이 그 흉터 자국마저 없애지 못하는 것처럼, 그가 남긴 상흔은 내 마음에 남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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