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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Aug 29. 2022

나쁜 아빠

착한 아빠 콤플렉스

너 이렇게 말 안 들을 거야! 시간 없다고 몇 번이나 말해!


오늘 아침도 아이들과 웃는 얼굴로 행복한 어느 학부모처럼 아이들을 등원시키겠다는 나의 다짐은 30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일어나서 한 시도 쉬지 않고 딴청을 피우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첫 째 아들과, 아침 눈을 뜨기 전부터 짜증에 입꼬리가 저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결국 아빠가 먼저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 버렸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식탁 의자에 앉아 터져 버린 둘째 딸을 보며 결국엔 또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후회할 게 뻔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이 나온 큰 소리에 아이들은 또 바짝 얼어붙었다. 그래도 눈칫밥 잔뜩 먹은 표정과는 다르게 몸을 베베 꼬며 자기 머릿속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는 아들과 울며 불며 자기 말만 하고 있는 둘째를 보며 오늘은 정말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한다. 그래 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식탁을 몇 번 탁탁 쳐 보거나 무섭게 눈을 떠 보는 것 유치원 하원하고 가기로 한 아이스크림 가게를 안 가겠다고 협박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딱히 없다. 아이들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느낌이 들면 들 수록 협박의 강도와 목소리는 커지고 내 기분은 점점 더 바닥으로 치닫지만, 상황이 나아지는 데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년에 초등학교를 갈 첫째를 생각하면 밥상머리에서 장난치고 웃고 춤추을 추느라 등원 시간이 늦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다. 둘째 딸은 벌써부터 빡빡해진 일정에 억울하겠지만, 아이 둘을 한 번에 등원시켜야 하는 나로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유치원이야 등원 시간이 정해져 있더라도 조금 늦는 것이 용인되어서 지금 당장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면 아침에 정해진 식사를 마치고 양치와 세수를 한 후에 옷을 갈아입은 다음 준비물을 챙겨 정해진 등교 시간까지 등교하는 것을 지금부터 제 시간 내에 해 내지 못하면 아침에 해야 하는 것들 중 몇 가지는 빼먹어야 할 판이다. 안 그래도 두 아이 모두 살이 잘 찌지 않아 고민인데, 아침까지 굶겨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침 식사를 제 양껏 제시간에 마치지 못하는 것은 여간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아침은 나의 이런 마음도 몰라주고 자기들 주장만 하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서운하고 답답하기 그지없어 더더욱 기분이 좋지가 않다. 오늘 아침은 한 번도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지 않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일관했다. 


"밥 먹었으면 들어가서 양치해."

"양치 다 했으면 장난치지 말고 아빠 바로 불러 세수하게."

"거실 가서 로션 바르고 옷 꺼내 놓은 거 입어. 노래 부르지 말고, 춤추지 말고!"

"마스크 쓰고 신발장 가서 신발 신어. 오늘은 킥보드 안 타고 걸어갈 거야."


아이들이 중간중간 쭈뼛거리며 곁을 달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지만, 절대로 오늘은 용납하고 싶지 않다. 


'지들도 아빠 기분이 어떤지 한번 알아야지 다신 안 그러지.'


5분도 채 안 걸리는 등원 길에 어색하게 웃음도 지어 보내고, 우스꽝스러운 춤도 일부러 더 춰 보지만 절대 웃어줄 기분이 아니다. 그저 퉁명스럽게 다그칠 뿐이다.


"그만하고 얼른 걸어. 이미 늦었잖아."


우리 아이들 말고도 지각하는 아이들은 더러 있다. 저 집은 저렇게 늦게 가는데도 엄마 아빠 표정이 괜찮은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유심히 아이들 부모의 얼굴을 쳐다본다. 얼른 가자고 아이를 보채긴 하지만 한 없이 아이들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걸 보니 엄마가 성격이 좋으신가 보다. 아니면 아이들이 말을 잘 듣나 보다. 아이들 등원 길에 만난 한 아빠와 세 엄마 모두 얼굴이 밝았다. 한숨이 푹 쉬어졌다. 그래도 오늘은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는 않다. 아빠도 그만큼 힘들다고.


아이들을 유치원 앞에서 가방을 메어 들여보내고 씩씩거리는 모습으로 들어가려는데, 첫 째가 들어가다 말고 서서 손을 흔들어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입구에서 손 흔든 적은 없는데? 갑자기 왜? 그리고 인사를 하더니 말없이 스윽 들어간다. 어깨가 좀 처져 있나? 첫 째는 유치원 입구에서 2층 계단을 올라가면서 틈새로 굳이 얼굴을 빼꼼 내밀어 아빠를 찾고는 다시 손을 흔든다. 두 번이나? 흔드는 손에 내 눈과 마음도 흔들리는 것 같다. 한 숨이 절로 나오는데, 그 숨 끝이 저리다. 다 내쉰 숨 끝에 무엇인가 더 묻어 나오는 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돌려 둘째 반 창문 너머로 둘째가 보인다. 나를 보고 방방 뛰며 선생님을 붙잡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를 만들며 다시 방방 뛰고 그 작은 손가락들을 꼼지락거리며 하트를 만들어 날린다. 오래 처다 볼 수가 없었다. 얼른 하트 인사를 대충 해 주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번엔 숨을 들이쉬는대도 가슴이 저릿하다. 내 쉬는 호흡과 들이쉬는 호흡 끝이 불편하다. 숨을 크게 쉬자 그 저릿한 느낌도 커져버렸다. 고개를 푹 숙이자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으휴... 나만 나쁜 놈이지 그래. 나만... 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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