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안녕하세요. OO씨 댁이죠.”
“네, 맞는데요. 누구세요?”
“저... 윤상 아시죠? 저는 윤상 친구 OO라고 합니다. OO씨 이신가요?”
요것 봐라. 나한테 이런 장난을 친다 이거지. 피식 코웃음을 치며 나는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런데요?”
“아, 네. 윤상이 저한테 전해주라고 부탁한 말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푸훗. 아~그러시구나아~. 뭔데요?”
“네, 실은 이번에 윤상이 !#$!%&!*#$!&%”
“네? 뭐라고요? 누구라고요?!!??!!”
나에게는 동갑짜리 사촌 동생이 하나 있다. 동갑인데 왜 동생이냐고? 나중에 커서 성인이 되고 각자 결혼을 하게 되면 족보가 꼬인다며, 어릴 때부터 나를 꼭 누나라고 부르도록 어른들께서 교육시키셨다. 착하고 순진했던 이 녀석은 동갑인 걸 잊고 그저 날 누나로 생각하며 자랐고, 초등학교 3학년 때 내가 그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로 전학을 간 이후에야 약간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내 친구가 걔 친구고, 걔 친구가 내 친구인데 자기만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게 좀 이상하기도 했겠지. 하지만 워낙 어린 시절부터 그리 여기며 살아왔던 터라, 간혹 학교에서 마주치면 (다행히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었다.) “야! OO야!!” 하고는 도망가 버리곤 했는데, 그 정도는 애교로 보고 나도 적당히 모른 척해 주었다.
그때만 해도 꼬꼬마였던 그 녀석을 나 역시 당연히 동생처럼 여겼고, 간혹 같이 놀다가 싸움이 나는 날엔 키와 힘과 깡다구로 그 녀석을 제압하곤 했다. (어느 순간 그 아이가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 시기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때부터 우리는 전혀 싸울 일 없이 꽤 친하게 지냈다. 안 그랬음 얻어맞았을 뻔. 휴~)
어느 날엔 복도에서 날 보더니 쪼르르 달려와 “누나! O반의 OO가 누나 좋아한대!!” 라며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만 퍼져있던 소문을 누설하고 도망가기도 했고, 한 번은 여러 반이 섞여서 하던 특별활동 시간에 둘이 앉아 엄마들 얘기를 하고 있으니 옆에서 듣던 친구가 “너네 엄마랑 얘네 엄마랑 친해?” 라고 물어서 깔깔 웃었던 기억도 난다.
어쨌거나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살면서 거의 형제처럼 자주 만나며 지냈고, 위의 두 오빠들이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수준 차이 난다며 잘 안 놀아줘서 둘 사이가 더 돈독해지기도 했다. (오빠 둘이 나 같으면 누나라고 안 불러, 라며 사악한 기운으로 그 아이를 부추겼으나, 다행히 그 녀석은 넘어가지 않았다.) 허구한 날 넷이 모여 함께 지내는데 다들 남자라 난 집에 앉아 인형놀이를 해본 기억이 전혀 없다. 들개처럼 쏘다니는 무리에 끼여 있다 보니 어느 순간 새침하던 내 성격도 다 사라져 버렸고, 그 덕분에 이후 자라면서 만난 남자사람친구들과의 관계도 대부분 꽤 좋았다. 더불어 그런 연유로 여성여성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에게는 인기가 없었지만, 뭐 어쩔 수도 없는 일이었다.
중학교는 각기 다른 곳으로 배정을 받았는데 마침 나랑 가장 친한 친구 Y가 그 아이와 같은 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다 보니 동생은 내 절친이 같은 학교에 있다는 것 정도, 그리고 Y는 내 사촌이 자기와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대충의 인상착의만 파악하고 있는 정도라고 할까.
한날은 Y네 집에 가서 놀다가 심심하던 차에 장난기가 발동했다.
우리 장난 전화 걸어볼까?
좋아!!
지금은 가족들이 모두 개인 휴대폰을 하나씩 갖고 있으니 집 전화를 쓸 일이 없어 아예 집전화가 없는 가정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집 전화번호 하나를 온 가족이 공유해야 했고, 그나마도 전화기가 거실에 딱 한 대만 있는 경우도 많았다. 다행히 Y네 집엔 전화기가 두 대였다. 이런 경우 한 사람이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른 다음 (다행히 난 다이얼을 돌리는 세대는 아니다. 완전 옛날 사람은 아님.) 신호가 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는 순간 다른 한 사람이 다른 기기의 수화기를 들면 셋이 통화가 가능했다. 이때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둘이 동시에 들고 시작하면 전화가 걸리지 않고, 전화받는 쪽보다 늦게 들면 그쪽이 알아차리게 되므로, 순발력 있게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장난 전화라는 게 사실 뭐 별것도 없다. 어느 학교 다니는 누구를 아느냐, 그 친구가 네 번호를 알려줘서 걸어봤다, 나랑 친구로 지내지 않을래? 라거나, 너 어느 학교 다니지 않느냐, 그 학교에 누가 너한테 관심이 있다던데 혹시 아느냐, 라는 따위의 유치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이고 상대의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면서 소리 죽여 웃다가 끊어버리는 게 그 장난질의 시시하지만 깨알같이 재미있는 마무리였다.
그날 우리는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서 내 사촌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위에 언급했던 것과 비슷한 시답잖은 소리를 늘어놓으며 동생의 반응을 살폈다. 당연히 나는 수화기를 들고 듣고만 있었고, Y는 본인이 아닌척하면서 몇 반의 누구를 아느냐 어쩌냐 하면서 아무 여자이름이나 늘어놓고 있는데, 어쩔 줄 몰라하며 듣고 있던 동생이 문득 “전 아는 여자는 우리 누나밖에 없는데요.” 라고 답하는 것이 아닌가. 놀랍기도 하고 아직은 순진한 동생이 귀엽기도 해서, 그리고 웃음을 참지 못하겠어서 별안간 전화를 끊어버리고 Y와 나는 한참을 신나게 웃어젖혔다. 한동안 그 일을 가지고 동생을 놀려댔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물론 그 녀석이 계속 그렇게 착하고 귀여웠던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남자가 되어 있더군.)
그 귀엽고 순진했던
내 사촌동생의 이름이 바로
‘O윤상’ 이다.
이런 장난전화를 한지 한참이 지나서 나는 윤상 친구라는 사람의 전화를 받았고, 그 녀석이 뒤늦은 복수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요 녀석, 심심하다고 누나를 팔았다 이거지! 라는 생각부터 했다는 거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하다. 윤상? 내 동생 그 윤상이 말고?
전화 속 남자는 갑자기 당황하는 나를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아마도 왜 한 박자 늦게 놀라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당연하지! 나는 그 ‘윤상’이 나의 그 ‘가수 윤상씨’ 일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으니까.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윤상씨를 좋아했던 건. 데뷔 초 약간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던 신승훈과 윤상 중 조금 더 대중에게 인기 있었던 것은 신승훈이었지만 나는 처음부터 윤상씨가 좋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윤상씨를 윤상씨라 불렀다. 연예인이나 유명한 사람은 그저 친구인 듯 이름만 찍찍 불러대는 게 일반적이지만 윤상씨 만은 절대로 그렇게 부를 수가 없었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감미로운 목소리,
그리고 약간 눈을 가리는 정도의 긴 머리.
무엇보다 마음을 울리는 그의 노래들.
그 윤상씨의 친구라는 사람이 전한 메시지는 간단했다. 군대에서 동료로 지내던 윤상이 이번에 다른 근무지로 이동을 하게 되었고, 이제는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을 수가 없으니 그만 보내라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전해 달라며 내 전화번호를 건넸다는 거다.
아!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잠시 얼음! 이 되어 전화기 앞에 서 있었다.
아! 착한 윤상씨! 내가 받지도 못할 편지를 계속 보낼까 저어되어 친히 친구에게 이런 부탁을 하셨구나. 다정도 하셔라. (이왕이면 직접 전화해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도 연예인이니 일반인에게 막 전화하고 그러는 건 좀 그랬겠지? 라는 등의 생각은 한참 후 정신을 차린 후에야 하기 시작했다.)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마침 저녁때가 되어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계시던 엄마에게 달려가 정신없이 이 상황을 설명한 후 내 방으로 들어가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동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윤상씨는 ‘이별의 그늘’ 로 데뷔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 인기가 가히 아이돌 급이었다. 이어 발매한 2집(Part1, Part2) 때까지는 그래도 그 명성을 어느 정도 유지해가는 듯싶었다. 그러나 군대에 다녀온 이후 발매하는 앨범들은 뭐랄까, 대중들이 듣기 좋은 곡은 몇 년 했으니 이제 됐고, 앞으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 할 거야, 라는 듯 한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신해철과 노댄스로 잠시 활동하던 시기 빼고는 대중들로부터 서서히 잊혀지기 시작했고, 팬이라 자처하는 나조차 그의 음반 전체를 사랑하기는 좀 힘들었다. 나 같은 평범한 귀로 듣기엔 좀 난해한 곡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상씨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으므로 그저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가수라고 생각하며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중3 2학기쯤이었던가. 새로 바뀐 짝꿍은 아담한 체구에 바가지 머리를 한 조용한 친구였다. 아무래도 난 조용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으므로 한 한기가 지나도록 몇 번 말을 섞어본 적도 없는 아이였으나, 짝꿍이 되어 얘기를 나누다 보니 보기보다 말도 잘하고 재미도 있는 친구라 우린 금방 가까워졌다. 한 날은 그 친구가 너 윤상 좋아해? 라고 문득 물었다. 뭐 내가 가진 소지품 여기저기에 윤상씨의 흔적이 있었겠지.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덕질은 그의 음반을 구매하여 닳도록 듣고, 그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정도로만 하던 나는 그나마 윤상씨에 대해 특별히 더 했던 한 가지가 각종 잡지에 나온 사진을 오려서 갖고 있는 것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 룰라, 김건모 등이 가요계를 잡아먹고 있던 시절이라 윤상씨처럼 정적인 가수는 내 또래에선 별 인기가 없었고, 연예잡지를 보고 있는 친구에게 윤상씨의 사진을 요구하면 대부분 두말없이 잘라가는 것을 허락하곤 했다.
“응, 그런데 왜?”
“그 사람 우리 아빠가 있는 부대에 있다.”
“뭐어어어어어라고?!!”
그 친구의 아빠는 직업 군인이셨고, 아빠가 근무하고 계시는 곳에서 윤상씨가 군 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날부터 나는 그 친구를 볶아대기 시작했다. 제발 부대 주소 좀 알려달라고. 팬레터 같은 거 써봐야 산더미처럼 쌓인 그것들 중에 하나일 거고, 그걸 바쁜 연예인이 일일이 찾아 읽지 않을 것이 빤하니 나는 쓰지 않겠어, 라는 생각을 하던 현실주의자에게 초현실적인 기회가 다가왔으니 그걸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글쎄.... 그래도 되나? 라며 곤란해하는 친구를 조르고 달래고 협박(?)했다. 모르는 군인 아저씨한테도 위문편지를 쓰고, 그 아저씨는 또 그게 누군지도 모르고 읽으면서 위로를 받는다던데, 자기 팬이 보낸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식의 논리로 매달렸을 것이다. 며칠에 걸쳐 나에게 시달리던 친구는 드디어 항복하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얻어낸 군대 주소로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성팬들이라도 군복무지 주소까지는 알지 못할 거야, 이 편지는 윤상씨에게 오는 ‘엄청나게 많지는 않은’ 편지 중의 하나일 거고, 분명 윤상씨는 내 편지를 읽을 수 있을 거야, 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해가 바뀌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도 나는 꾸준히 편지를 썼다. 그런데 과연 나는 윤상씨에게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걸까? 음악이 너무 좋아요, 멋있어요, 하고 나면 쓸 말이 없을 것 같은데 거의 1년 가까이 팬레터 쓰기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주소도 남기고 전화번호도 적었었나 보다. 흐흣.) 하지만 내 편지를 무탈하게 받고 계실 거라는 확신만은 있었고,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신 윤상씨를 나는 더 좋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윤상씨를 처음 좋아하게 된 것은 ‘이별의 그늘’ 때문이었지만, 이후로도 계속 좋아하게 된 것은 ‘가려진 시간 사이로’ 때문이었다. 전주만 들어도 윤상씨 곡인 줄 딱 알아버리겠는 윤상 특유의 느낌을 가진 멜로디도 물론 좋았지만,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예쁜 가사가 그 시절의 내 마음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겠지. 어쩌다 보니 Part1, Part2라는 이름으로 두 번에 나눠 발매된 2집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다. ‘가려진 시간 사이로’는 그중 Part1에 실린 곡이고. 얼마 전 종영한 <싱어게인>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한 여자 가수가 경연 곡으로 Part1에 담겨있는 곡 중 하나인 ‘넌 쉽게 말했지만’을 선곡해 왔는데, 윤상씨의 곡이라는 것을 알자마자 함께 시청하던 남편이 딱 나를 쳐다봤다. 알아? 하는 표정으로. 훗, 하고 웃어주었다. 당연하지!
대중적인 인기몰이는 하지 못했지만, 음악계에선 꽤 이름난 뮤지션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윤상씨는 문득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 활동 소식도 듣지 못하는 데다 나 역시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터라 잠시 윤상씨를 잊고 있던 어느 날 그가 돌아올 거라는 소식을 들었고, 그에 즈음해서 발표된 새 앨범도 구매했고, 곧 열릴 콘서트에 관한 정보도 얻었다. 주변에서 굳이 콘서트까지 갈 만큼 윤상씨를 좋아하는 동행을 찾기는 쉽지 않았으므로, 가장 마음이 너그럽고 성격이 평온한 친구를 꼬셨다. 덕후가 아닌 이상 그다지 재미가 없는 콘서트가 될 것 같고, 그렇다면 욕먹을게 빤하니까. 웬만하면 욕 안 하는 친구로다가.
그러나 그런 걱정은 모두 기우였다.
죄다 잔잔하기만 한 노래로 어떻게 콘서트의 기승전결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하는 나의 촌스러운 염려는 그를 사랑하는 뮤지션들이 다 해결해주었다. 유희열, 이적, 김동률, 조원선 등 엄청난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참가해 주었고, 윤상씨와 더불어 멋진 음악들을 선물해주고 갔다. 무슨 음악방송 보는 줄. 그곳에서 난 또 한 번 윤상씨라는 뮤지션에게 감명받았다. 윤상씨는 음악가들이 존경하는 음악가라고, 본인 스스로도 대단한 명성을 자랑하는 그 유희열, 이적, 김동률 등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좋아해 온 내 가수가 이렇게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라니, 어쩐지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윤상씨와의 작은 추억, 그리고 그에 대한 팬심을 이야기하느라 짧게 밖에 언급하지 못한 이 글의 제목 ‘가려진 시간 사이로’에 대해 잠깐 얘기하고 이 글을 마쳐야겠다.
첫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멀게 느껴질 나이가 되었을 무렵, 우연히 연락이 닿은 첫사랑이었던 사람은 윤상씨를 ‘윤상형’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첫사랑에게서 느껴지는 동지애라니! 풋, 하고 웃어버렸다. 왜냐고 물으니 나 때문이라고 한다. 어릴 적 내가 좋아하는 가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나와 같은 이유로) ‘가려진 시간 사이로’를 들을 때마다 내 생각이 났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본인도 계속 듣다 보니 좋아져 버렸다고.
음악이 가진 힘과 그 생명력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음악을 창작해내는 예술가라는 사람들은 그 창작의 시간만큼은 잠시 인간 세계에서 빠져나갔다 돌아오는 것 같고, 그런 일들을 누구보다 잘해내고 있는 윤상씨가 새삼 존경스럽다. 그리고 그런 그를 오랫동안 아끼고 있는 나도 자랑스럽다. 윤상씨의 음악들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