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Sep 27. 2022

어느 독자에게 보낸 답장

<그냥 살아만 있어> 독자에게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함을 정리하다가 어느 제목에 멈추었어요.


"독자입니다."


첫 책을 출간하고 메일로는 처음 받아보는 편지였어요. 감동이었습니다. 메일로 보낸다는 건 제 메일 주소를 찾는 수고를 하고, 낯선 사람에게 보내는 친밀한 글에 대한 부담을 안고 용기를 내신 글일 테니까요. 메일을 다 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와 비슷했던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방황했던 시간들. 처음 용기 내어 쓴 글에 썼다 지우고 읽고 또 읽었을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을 마음. 책을 읽으며 또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울었을까 싶어 찾아가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글쓰기는 굴 까는 칼로 가장 연한 속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 우리는 과거를 들추며 밑바닥까지 훑어 흙탕물을 일으킨다. -내가 글이 된다면 -

덮어두었던 상처를 꺼내고 말이나 글로 하는 행위는 굴 까는 칼로 가장 연한 속살을 에는 듯한 고통이 따른다는 말을 이해합니다. 애써 잔잔해진 물에 밑바닥을 긁어 흙탕물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그 끝없는 고통의 상처는 실체도 없이 모든 감각에 그대로 남아 자신을 괴롭힙니다. 참 외롭고 힘든 싸움이에요. 벗어나고 싶고, 꺼내고 싶어요. 그 충동이 내 삶을 멈추게 하면 무기력이 찾아옵니다. 


독자님이 "외롭고 마음이 너무 아파 이유를 모르고 헤매던 시기에 위로를 받았다."는 말에 상처를 글로 써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진실된 글쓰기는 외롭던 세상에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는 일이에요. 내 마음을 다 안다고 돌봐주는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 난 마음을 돌보면서 내 마음도 함께 치료하고 있었어요. 


진실된 글쓰기로 저는 많은 친구를 만나고 있어요. 진짜 마음을 내보이는 친구들이요. 차가웠던 마음에 온기가 돌고 있습니다.


-----Original Message-----


From: 독자
To: <youme7802@naver.com>
Sent: 2022-07-26 (화) 13:06:19
Subject: 독자입니다~
 

안녕하세요.


7월 7일.

그날도 어김없이 딸아이 동화책을 빌리고 우연히 일반도서 신착코너에서 조금은 직설적이라 느껴졌던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라는 책을 들어 훑어보다 나도 모르게 후루룩 읽혀서 바로 대출을 했죠.

집으로 와 차근히 읽다가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초반에는 읽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읽고 멈춘 자리에서 다시 이어 읽지 못한 날이 많았죠.

대부분 이 책의 독자분들은 사춘기 딸과의 힘겨움에 공감하며 읽으셨겠죠? 그런데 저는 이 책에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예민한 엄마와 죽음을 생각하며 자살을 시도했던 사춘기 딸의 삶을 모두 만나게 됐어요.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 책가방에 게보린이 없으면 불안했을 정도로 심했던 나의 두통도 우울증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중략) 독자님의 어릴 적 상처 이야기


하연이가 엄마의 어릴 적 아픈 모습을 토닥여주는 그림을 보고는 눈물을 왈칵 쏟았어요. 정말 가능하다면 저도 제 어린 시절의 모습을 찾아가 돌봐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운 적이 참 많거든요. 나중에  제 딸과도 이런 이야기 나눌 시간이 올까요?^^


외롭고 마음이 너무 아파 이유를 모르고 헤매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나 너무 감사했어요. 위로도 받았고요.

태어나 이런 얘기도 남에게는 처음으로 털어놔 봅니다.

가족에게도 해보지 못한 이야기들 이였어요.

책을 읽고 작가님께 이런 편지도 처음입니다.

수십 번을 읽고 또 읽어보기만 하며 이제야 용기 내서 보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세요!




독자님.

안녕하세요. 이유미예요.

독자님 메일을 오늘에야 봤어요. 더운 날 보내셨는데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답을 하네요.

답장이 너무 늦어 죄송해요. 

먼저 이렇게 책을 읽고 메일까지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감동입니다.


글을 읽는 동안 마음이 아리고 눈물이 났어요.

저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겪으시고, 많이 힘들 시간들에

우울증이 심하셨을 텐데 잘 버티시고 엄마가 되시고 살아가고 있으시니 너무 잘하셨어요.


저도 그때는 모르고 혼자 악으로 버텼던 거 같아요. 

잘 지낸다고 생각하다가도 이유모를 우울과 감정의 기복, 무기력이 반복되었어요.

그런 제가 참 한심하고, 사는 건 너무 힘겨운데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으니 속으로 곪아 갔던 거 같아요.

힘듦을 참아내는데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니, 주변에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힘들다고 하는 저를 한심하게 보는 것 같았고요.

우울증인 저를 사랑하지 못했었던 것 같아요.


독자님도 자책하지 마셨으면 해요. 

그 힘든 시간을 잘 버티고 있으시잖아요. 조금 더 편안해지시길. 자신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시길 부탁드려요.

자신에게도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고,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부모님을 꼭 사랑할 필요 없어요.

저도 그래요. 사랑도 감정이고 느낌이라 억지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저에게 아픈 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은 그 자체로 위대하고 강하다고 생각해요.


이제 어린 독자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돌봐주는 작업을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아프고 외롭고 슬펐던, 당연히 사랑받고 자랐어야 할 독자님의 소중한 어린아이를 안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길고 긴 싸움이 될지 몰라요.

불에 덴 상처처럼 화끈거리고, 아려서 차라리 다시 덮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용기를 갖고, 어린 독자님과 함께 있어주세요. 

방황했던 나를 이해한다고, 그럴 수 있다고, 살려고 그런 거니까 네 마음 다 안다고 말해주세요.

아무도 돌봐주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가장 잘 아는 자신은 할 수 있어요.


하연이의 일을 겪고 가장 크게 깨달은 건

과거의 상처 때문에 아이와의 행복한 현재를 포기할 뻔했다는 거였어요.

사랑하는 자녀와 더 행복하시길.


독자님의 과거는 아프고 힘들었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으시고

앞으로는 좋은 일이 더 많고 행복하실 거예요. 반드시.


감사합니다.

독자님의 글이 저에게도 큰 용기가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2022.9.27.

이유미 드림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매거진의 이전글 새롭게 하소서 이유미 -촬영부터 방송까지 감사의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