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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Nov 04. 2022

강박과 유연을 오가는 모닝 페이지

아티스트 웨이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 페이지를 오늘은 브런치에 써보려고 한다. 모험이다. 생각의 흐름이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공개되는 글을 쓴다는 자각은 내 무의식의 생각들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지만 실험해보기로 했다. 오픈된 글이 주는 긴장감은 나를 더 긴장하게 할까. 자유롭게 할까. 내게 더 몰입하게 할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할까. 


눈을 감고 내 내면의 소리에 집중한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 모래사장, 바다의 고요함. 모든 것이 수평으로 줄이 맞추어져 있다. 모래 위 파도 위 바다 수평선 위 하늘이 네모상자 안에 칸을 나누어 반듯하게 가로선을 그린 것처럼 그렇게. 파도란 흔들리기 마련이고, 바닷물은 밀려들어왔다 밀려나가기 마련이고 모래는 살짝만 건드려도 음푹 파이게 마련인데 나는 고집스럽게 같은 비율과 반듯한 선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구나.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추구한다. 일상의 패턴, 반복적인 생각, 늘 가던 길, 즐겨 먹는 음식, 주로 만나는 사람들, 고정급여와 지출, 물건의 제 위치. 그 안정을 지키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하는 행동들이 있다. 요리를 한 후에는 싱크대의 물기를 닦고 고무장갑을 제 위치에 걸어 놓아야 일을 마친 기분이 든다거나, 업무를 마치면 사용했던 펜을 가지런히 꽂아 두어야 오늘의 일을 다 한 거 같거나. 아주 사소한 것을 생각해볼까. 책을 펼치면 가운데를 가볍게 손바닥으로 꾹 누르는 행동, 밥을 담아 튀어나온 밥풀을 주걱으로 토닥토닥 눌러주는 행동, 전화를 하면서 노트에 네모 또는 세모를 그리고 칸을 나누어 빠져나가기 않도록 색칠하는 행동. 그다지 강박적인 행동이라고 생각지 못했는데 나도 모르는 행동들이 생각난다. 


나는 물건이 꼭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거나 현관문을 들어서면 신발을 가지런히 놓아야 하는 그런 정리를 잘하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물건이 흐트러져있어야 편하고, 신발이 뒤집어져있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완벽주의나 강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쓰다 보니 어느 특정 부분에 내가 가두어 놓는 틀이 있구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그 긴장감을 스스로 만드는 것 같다. 네모 도화지에 가로 선들을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의 영역을 정하는 걸까. 가로선을 팽팽하게 당기고, 이 사람은 이만큼의 비율을, 이 사람은 이 만큼의 위치로. 그곳에서 삐져나가거나 흔들려 가로선이 구부러지면 다시 줄을 당겨 직선을 만들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걸까. 그런데 사람 관계라는 게 그렇게 되던가 말이다. 


첫째 딸은 치과 시간을 못 지켜서 다시 약속을 잡아야 하고, 둘째 아들은 갑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애써 정리해 놓은 주방에 라면 가루를 흩어놓고, 셋째 아들은 놀이터에서 그네를 기다렸는데 양보해주지 않았다며 대성통곡을 하고, 남편은 늦는다고 해서 대충 저녁을 때운 날 배고프다며 밥을 달라고 한다. 누군가에게 베푼 배려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오고, 틈 없이 짜 놓은 일정에 갑자기 급한 일이라며 짜증 나는 부탁을 해온다. 이 모든 상황들은 사실 거의 매 순간 일어나는 것 같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한. 


유연한 관계를 맺고 싶다. 자극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사람이고 싶다. 바다가 밀려오며 때리는 파도에 까르르 웃으며 도망 다니고, 밟을 때마다 발가락 사이로 까글하게 들어오는 모래는 다 놀고 나면 툭툭 털어버리고, 태양이 강하면 손을 가리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비가 오면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팽팽한 곡선이 아니라 서로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교차된 곡선들을 즐기며 살 수 있다면. 


사실 나는 놀고 싶은 거구나. 즐기고 싶은 거구나. 긴장된 어깨를 풀고 웃고 싶은 거구나. 

 

내 마음을 알았다. 오늘은 그 단단해진 고삐를 풀고, 자극이 오는 대로 그 흐름을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며 즐겨봐야겠다. 긴장하며 보내기엔 아까운 오늘이다. 오늘 날씨는 적당히 쌀쌀하고, 하늘은 파랗다. 그리고 가족들과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니까.


 



매일 마음을 돌보는 글을 씁니다. 긴장을 유독 많이 타는 사람이라 글로 숨을 쉽니다. 때로는 생각을 깊이 들이마시고 때로는 글로 깊이 내쉬면서 긴장되어 있던 생각을 유연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오늘 모닝 페이지는 공개로 써 봤는데요. 글을 정돈하려고 집중하게 되고요. 생각을 더 빨리 정리하게 되네요. 뭐라도 써야 하니까요. 이 또한 강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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